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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산책]
맑은 바람이 태고에 불어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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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2019 년 5 월 [통권 제73호]  /     /  작성일20-06-20 16:31  /   조회4,90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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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 문학평론가

 

백운경한, 나옹혜근과 더불어 고려 말 삼대 화상으로 불리는 태고보우국사(1301~1382)는 한국불교조계종 중흥조이자 태고종 종조이다. 원나라 선불교의 거장 석옥청공(1272~1352)으로부터 임제 정맥을 계승한 국사는 원융부를 두어 구산원융 오교홍통九山圓融 五敎弘通을 주장하여 5교9산의 통합에 진력하였다.

 

 


 

13세 때 회암사 광지 선사에게로 출가했던 태고는 19세에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문의 종풍에 따라 ‘만법귀일’의 화두를 참구했다. 이후 그는 33세에 수행처를 감로사로 옮겨 7일간 불철주야 용맹정진을 하였다. 마지막 날 저녁 선정 삼매에 들었는데 푸른 옷을 입은 두 어린동자가 나타나 더운 물을 권하였는데, 이것을 받아 마셨더니 감로수였다. 그때 홀연히 깨달음 얻고 노래한 것이 「감로심甘露心」이다.

 

이 한 물건 얻을 것 없는 곳에서 일역부득처一亦不得處

집안의 돌 밟아 깨뜨렸네 답파가중석踏破家中石

돌아보니 깨뜨린 흔적도 없고 회간몰파적回看沒破跡 

본 사람마저 없어 고요하다. 간자역기적看者亦己寂

그대로 드러나 둥그런 그것 요료원타타了了圓陀陀

그윽하여 광명이 더욱 찬란하니 현현광삭삭玄玄光爍爍

부처와 조사, 산하대지를 불조여산하佛祖與山河

입 없으되 모두 삼켜 버렸네. 무구실탄각無口悉呑却

- 「감로심甘露心」

 

태고는 이 한 물건의 본체를 찾는 치열한 참구 끝에 고요 속에 생동하는 생명과 하나가 된 자신의 본래모습을 보았다. 즉 무시이래 지녀온 온갖 것, 생의 뿌리마저 뽑아서 죽여 버리니 본지풍광本地風光이 확연해졌던 것이다. 도의 깨침이란 도를 얻는 것이 아니라 ‘無’를 깨뜨림이었다. 깨져버린 집안의 돌이 흔적도 남아 있지도 않고, 그 자신마저도 없고 고요하다고 한 큰 깨달음의 자리에는 광명이 더욱 찬란하다. 부처도 조사도 산하대지 그 어느 것도 입을 대지 않고 삼켜버렸으니 세상이 본래와 같이 고요해진 것이다.

 

이후 태고는 1337년 가을 불각사에서 『원각경』을 읽다가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리면 그것을 부동(一切盡滅 名爲不動)”이라고 한 대목에서 다시 한 번 깨달음을 얻었다. 이어 그해 10월 그는 채홍철의 추천으로 송도의 전단원에서 겨울 안거를 맞아 정진한 끝에 이듬해 38세 되던 1월7일에 크게 깨달았다. 그 두 번째의 깨달음의 시가 다음의 「오도송悟道頌」이다.

 

조주 고불 늙은이가 조주고불로趙州古佛老

앉아서 천성의 길을 끊고 좌단천성로坐斷千聖路

취모검을 얼굴에 들이댔으나 취모적면제吹毛覿面提 

온몸에 빈틈이 없네 통신무공규通身無孔窺

여우와 토끼 자취를 감추더니 호토절잠종狐兎絶潛踪 

몸을 바꾸어 사자가 뛰쳐나오고 번신사자로翻身師子露 

철벽같은 관문 쳐부수니 타파뢰관후打破牢關後 

맑은 바람이 태고에 불어오네. 청풍취태고淸風吹太古 

- 「오도송悟道頌」

 

화두참구를 통하여 모든 분별과 망상, 태고 이래로 이어 온 생사의 문제를 몰록 한순간에 절단해버린 법열을 표현한 태고 시문학의 압권이다. 서릿발 같은 취모검으로 미혹을 타파하고 돈오의 경지에 들어가는 선심을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여우와 토끼가 자취를 감추고 사자의 위엄이 드러난 것은 눈앞에 어리는 사견을 취모검으로 자르듯이 단절한, 즉 이치를 헤아리는 알음알이의 경계를 뛰어 넘어야 사자와 같이 불조佛祖의 세계에 이를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마지막 구절 “철벽같은 관문 쳐부수니 맑은 바람이 태고에 불어오네”는 의정疑情이 뚫려 부서지고 활연 대오한 경지에서 느끼는 자신의 심경을 노래한 것이다. 태고는 현상에 집착하지 않고 걸림이 없는 원융무애의 깨달음에서 얻는 법열을 “맑은 바람”으로 상징하여 탕탕한 선적 아름다움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다분히 언외지미言外之味의 태고의 깊은 선적 사유가 투영되어 있다.

 

태고는 46세(1346)에 원나라 연도에 들어가, 이듬해 호주 하무산 천호암으로 임제의 18대 손인 석옥청공을 참문하고 「태고암가」를 보여드렸는데, 그 순간 석옥 선사는 태고가 명안 종사임을 알아보고 임제 정맥의 적자로 인가를 했다. 당시 76세의 석옥선사는 “이별할 때가 되어 「태고가」를 읊어보면 순박하고 두터우며, 그 글귀를 음미해 보면 한가롭고 맑았다. 이는 참으로 공겁空劫 이전의 소식(주1)을 얻은 것이다. 날카롭고 과장된 요즘의 글에 비할 바가 아니니 ‘태고’라는 이름이 헛되지 않았다.”라고 크게 찬탄하고 발문까지 써 주며 이렇게 화답하고서 의발을 전했다.

 

이 암자가 먼저 있고서 비로소 세계가 있었으니, 

선유차암 방유세계先有此菴 方有世界 

세계가 무너질 때에도 이 암자는 무너지지 않으리 

세계괴시 차암불괴世界壞時 此菴不壞 

암자 속의 주인은 있고 없고가 없으니 

암중주인 무재부재菴中主人 無在不在 

달은 먼 허공을 비추고 바람은 온갖 소리를 내네. 

월조장공 풍생만뢰月照長空 風生萬籟 

- 「 원지정칠년元至正七年 정해팔월단일丁亥八月旦日 호주湖州 하무산霞霧山 석옥노납石屋老納 칠십육세서七十六歲書」

 

천하의 선객들을 제접하던 석옥 선사가 중국의 수많은 선객들을 제쳐두고 고려에서 와 보름 남짓 그와 함께 머문 태고에게 의발을 전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석옥 선사가 법담으로 “시간과 공간이 생기기 전에도 태고가 있었느냐?”고 태고에게 묻자, 태고가 “허공이 태고에서 나왔다.”고 답했다. 그러자 석옥 선사는 그의 법기를 알아보고 그에게 법을 전했던 것이다. ‘태고’는 시작을 알 수 없는 아득한 옛날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오늘의 존재 원인이다. 이러한 진리는 시공을 초월해서 일체 속에 있다. 따라서 석옥 선사는 시공을 초월한 ‘태고’라는 암자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결국 ‘태고’는 암자의 이름이 되었지만, 태고의 선풍을 담지한 절 이름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할 수 있다.

 

일찍이 구산선문을 하나로 통합하려고 노력했던 태고는 많은 수행자들이 하루 속히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누구보다 간절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때문에 찾아오는 수행자들에게 그 사람의 근기와 수행정도에 걸맞은 명호, 가령, 운산, 석계, 혹은 고송, 철우, 죽암 등의 명호시를 지어 주었다. 다음은 ‘운산’이라는 법호를 가진 자에게 지어준 명호시이다.

 

흰 구름 구름 속에 푸른 산 거듭되고 백운운리청산중白雲雲裏靑山重 

푸른 산 산 가운데 흰 구름도 많구나 청산산중백운다靑山山中白雲多 

해와 구름과 산은 오랫동안 친구 했는데 일여운산장작반日與雲山長作伴 

너희가 내 집이라 이 몸 편안 하구나. 안신무처불위가安身無處不爲家 

- 「운산雲山」

 

흰 구름과 푸른 산을 벗 삼아 살아가는 납자의 유유자적한 모습을 ‘운산’이라는 자연으로 투영하여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청정지심으로 객관 세계를 관조하고 있는 화자는 ‘운산’이라는 법호의 주인공이 백운과 청산의 모습처럼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아무런 걸림이 없는 이른바 부주심不住心, 무상심無常心의 선적 상징인 흰 구름은 때로는 청산과 어울려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출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흰 구름은 자연을 벗 삼아 일평생을 무심하게 살고자 했던 태고의 자연과 깨달음의 세계가 둘이 아닌 무심합도無心合道의 선적 표현으로 변주되고 있다.

 

선사들이 남긴 이승의 마지막 법문에는 일체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나 영원한 대자유의 삶을 사는 방법이 함축되어 있다. 그 입멸의 순간에 던지는 ‘깨달음의 노래’가 ‘임종게’이다. 여기에는 생사의 걸림이 없는 자유 자재함과 결코 미묘한 선의 세계가 담지되어 있다.

 

인간의 목숨은 물거품 같고 인생명약수포공人生命若水泡空

팔십 평생 봄날 꿈속 같았네 팔십여년춘몽중八十餘年春夢中

임종 맞아 가죽자루 놓으니 임종여금방피대臨終如今放皮帒 

붉은 해가 서산을 넘는구나. 일륜홍일하서봉一輪紅日下西峰 

- 「임종게臨終偈」 

 

태고 최후의 ‘맑고 텅 빔’의 선적 미학이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태고는 양산사(희양산 봉암사)에 머물며 중창불사를 크게 이룩한 후 가지산, 속리산 등으로 옮겨 수행을 하다 1382년 여름 다시 소설산으로 돌아와 잠시 머물다 법랍 69세, 세수 82세를 일기로 위의 「임종게」를 남기고 원적에 들었다. 돌이켜보면 치열한 수행과 거기에서 얻은 깨달음, 그 모든 것들을 하나의 ‘유의법有爲法’으로 본다면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아서 실체가 없는 꿈속의 일에 불과하다. 불교에서는 사라질 몸뚱이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여 흔히 육신을 피고름이 가득한 가죽 주머니에 비유한다. 육신과의 이별을 두고 태고는 자신의 죽음을 지는 해를 보는 것처럼 거리두기를 하며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는 일체에 걸림이 없는 생사를 벗어난 청정 자성의 적멸의 세계에 들어가는 선사의 탕탕 무애한 선적 사유가 번쩍인다. 이처럼 공과 색 또는 허와 실이라는 이항대립의 통합이 바로 선이 지향하는 깨침의 미학이다. 하여 세간만법 모두를 차별상 없이 그려내는 태고의 원융회통 깨달음의 법열이 시공을 초월하여 맑은 바람으로 태고에 불어오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주1)

아득한 옛적 공겁 때 제일 먼저 성불했다는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의 최초 진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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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전 국제포교사회 회장. 전 한국동서비교문학회 부회장, 저서로 <선시의이해와 마음치유>, <불교 설화와 마음치유>, ><숲 명상시의 이해와 마음치유>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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