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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및 특별서평]
출가는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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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미  /  2019 년 7 월 [통권 제75호]  /     /  작성일20-06-26 14:22  /   조회5,36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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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미(마음서재 편집팀장)

 

<버려서 얻은 단 하나의 자유>

 

출가는 ‘위대한 포기’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인생의 참 자유를 찾으려는 용기 있는 결단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이자 불교계 신문사 기자로 오래 일한 유응오 작가의 『버려서 얻은 단 하나의 자유』(마음서재)는 ‘위대한 포기’를 선언한 우리 시대의 스님 23인의 출가기를 담고 있다. 속박의 굴레, 타성의 늪, 집착하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참 자유를 얻기 위해 부모형제마저 등지고 험난한 구도의 길을 떠난 스님들이 느끼고 깨닫고 돌이킨 마음들이 이 책에 진솔하게 녹아 있다.

 

 


 

 

유응오 작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스님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출가 사연과 수행담을 이 책에 담아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스님들의 곡절 많은 인생행로와 내밀한 출가기를 한 권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무척 반가운 책이다. 어디에서도 듣기 힘든 스님들의 절절한 출가기와 치열한 수행담이 마음을 울린다.

 

대표적으로 선시禪詩를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전한 오현 스님, 탱화로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만봉 스님, 범음과 범패로 불교음악의 맥을 이은 동희 스님은 불교예술의 향기를 전한다.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 온 스님들의 출가기는 드라마틱하다. 월서 스님은 지리산 공비소탕 작전에 참가했다가 인생의 고苦를 체감한 뒤 출가했고, 원경 스님은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아들로서 6․25전쟁 내내 빨치산을 따라다니다 불법에 귀의했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의 견인차 역할을 한 지선 스님과 청화 스님의 이야기는 불교의 시대적 역할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승과 학승, 그리고 외국인 스님 등을 통해 한국불교의 법맥과 선맥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스님들의 출가는 그 동기에 따라 인연출가와 발심출가로 나눠볼 수 있다. 인연출가는 자아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 불우한 집안 환경이나 기구한 운명 탓에 타인에 의해 처음 산문에 들게 되는 경우다. 일곱 살 때 절간의 소머슴으로 들어간 오현 스님, 5대 독자로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나 단명할 운명이라는 말에 여섯 살 때 절에 보내진 만봉 스님, 전쟁 통에 양친을 여의고 할머니 손에 이끌려 출가한 동희 스님 등이 인연출가한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발심출가는 욕망의 법칙에 따라 돌아가는 세간의 삶에 회의를 느껴 불제자로 살아가리라 다짐하고 출가한 경우다. 고교 시절 『육조단경』을 읽고는 스스로 보따리를 싸서 절에 들어간 금강 스님, 미국에서 숭산 스님의 강연을 듣고 삶의 나침반을 얻은 대봉 스님, 앞서 출가한 언니들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수행자가 되기로 결심한 일진 스님, 어떤 사상으로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출가한 종림 스님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산문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걸쳤다 해서 수행자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시련은 수행자라고 피해 가는 법이 없다. 절간의 소머슴으로 들어가 철부지 행자로 살았던 오현 스님은 이후 만행을 나섰다가 우연히 문둥이 부부를 만나고 그들과 다리 밑에서 한 철을 보낸 뒤 비로소 발심출가 한다. 또 유년 시절 문학과 산사를 동경했던 청화 스님은 출가하겠다는 일념으로 상경했다가 막상 행자생활에 회의가 들자 절을 나와 자살을 시도한다. 이때의 경험은 스물한 살에 다시 정식 출가하는 데 단단한 디딤돌이 된다. 어린 나이에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절에 맡겨지며 머리를 깎은 원경 스님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울분을 토하며 전국을 유랑하 다 기나긴 방황을 접고 스스로 절을 찾아가 정식으로 출가한다.

 

혼돈과 방황의 시간을 딛고 출가 수행자로 다시 서기까지 스님들이 보여준 파격과 기행에서 너무나 인간적인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이렇듯 23인의 스님이 제각각 걸어온 행적을 되짚어가며 삶에 대한 통찰과 깨달음을 전한다. 발심출가든 인연출가든 스님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다르지 않다. 고집스럽게 욕망에 집착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욕망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평온할 것인가?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23인의 스님은 크게 버림으로써 크게 얻었으며, 떨쳐버림으로써 새로이 피어난 이들이다. 모든 존재가 덧없이 흘러가는 세상에서 이제껏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허망함을 느낀다면,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영혼의 스승을 찾는다면, 이 책이 저마다 찾고 있는 답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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