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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산책]
“도인의 찻 자리 이보다 좋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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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2019 년 7 월 [통권 제7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54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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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 문학평론가

 

시·서·화·차에 뛰어나 4절이라 불렸던 초의선사(1786~1866)는 15세에 나주 운흥사의 벽봉민성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19세 때 해남 대흥사로 가는 도중 영암 월출산에 올라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고 일순간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20세 되던 해에 대흥사 완호윤우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초의艸衣라는 법호를 받았다. 스승이 초의라는 법호를 내린 것은 그의 귀기어린 천재성과 번득이는 재주를 완곡하게 감추어 주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초의선사

 

 

초의의 ‘선다일여禪茶一如’ 사상이 꽃피운 곳은 대흥사 뒤쪽 일지암一枝庵이다. 선사는 이곳에서 홀로 40여 년 동안 은거하며 차와 더불어 지관止觀에 전념하였다. ‘일지’는 『장자』 ‘소요유편’에 있는 ‘뱁새가 깊은 숲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때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다[초료소어심림불과일지鷦鷯巢於深林不過一枝]’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무엇보다도 초의는 일지암에서 홍현주(정조의 사위)의 요청으로 『동다송』을 저술하였다. 여기에서 차의 기원과 차나무의 생김새, 차의 효능과 제다법, 우리 차, 즉 동차東茶의 우수성을 노래하고 있다. 다음은 『동다송』의 첫 구절이다. 

 

후황이 아름다운 나무를 귤 덕과 짝 지우니 후황가수배귤덕后皇嘉樹配橘德

명을 받아 자리 옮기지 않고 남녘땅에 자라네 수명불천생남국受命不遷生南國

촘촘한 잎은 눈 속에서도 겨우내 푸르고 밀엽투산관동청密葉鬪霰貫冬靑

명월은 누가 나누어 작은 샘에 떨어졌나? 소화탁상발추영素花濯霜發秋榮 

 

선사는 남국의 아름다운 나무 차나무의 생육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우선 화려함과 후덕함의 대명사 후황의 상서로운 기운으로 차나무가 태어났음을 표현하고 있다. 즉, 제아무리 밭에 좋은 종자를 뿌려도 밭이 후덕하지 못하고 자연의 이치를 모르면 생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명을 받아 아름다운 성품의 나무를 인연으로 맺어주니 차나무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불천不遷의 모습으로 남국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아울러 선사는 촘촘한 잎은 겨울의 눈발에도 떨어지지 않아 늘 푸르고, 서리를 맞아 생명이 다하나 했더니 가을에도 흰 꽃으로 그 영화로움을 잃지 않는 차나무의 모습을 예찬하고 있다.

 

초의는 “다도란 신神, 체體, 건健, 영靈을 함께 얻는 것”임을 강조한다. ‘차는 물의 신[정신精神]이고, 물은 차의 몸[체體]’이라 한 사실에서 보듯, 차와 물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래서 선사는 참되고 묘한 차 맛은 물과 차가 잘 어우러져야 함을 강조하고, 비록 체와 신이 온전하더라도 중정을 잃을까봐 염려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 현미함 묘하여 말하기 어려우니 중유현미묘난현中有玄微妙難顯

참되고 묘한 맛은 물과 차가 잘 어우러져야 하네 진정막교체신분眞精莫敎體神分

물과 차가 잘 어우러져도 중정을 잃을까 두려워 체신수전유공과體神雖全猶恐過

중정은 건과 영이 함께하는 것에 있네. 중정불과건영병中正不過健靈倂

 

차 맛의 현묘함은 말하기 어렵지만 진정한 차 맛은 물과 차의 절묘한 조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사는 물과 차가 잘 어우러져도 중정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중정은 다신茶神의 건전, 수성水性의 신령을 아우름에 있기 때문이다. 즉 체體와 신身이 서로 어우러지면, 건健과 영靈을 함께 얻기 때문이다. 여기에 초의의 ‘중정’의 다도 정신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의는 진정한 다도에 이르는 과정을 이렇게 묘출하고 있다. 

 

차 따기는 묘를 다하고 만들기는 정성을 다하며 

채진기묘 조진기정採盡其妙 造盡其精

물은 진수를 얻고 달이기는 중정을 얻어야 하며 

수득기진 포득기중水得其眞 泡得其中

체와 신이 서로 화합하고 건영이 함께해야 한다. 

체여신상화 건여영상병體與神相和 健與靈相倂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 이루어진 것이다. 

지차이다도진의至此而茶道盡矣

 

초의의 ‘중정의 묘’는 다도의 진수가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 준다. 즉, 이른 아침에 찻잎을 딸 때는 현묘함을 다하고, 찻잎을 지극정성으로 법제해야 하며, 차를 우릴 때는 진수眞水를 얻어야 하고, 차를 달일 때 불의 세기는 그 중정中正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체體인 물과 신[정신精神]인 차가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함께 하게 되고, 이 경지에 이르면 다도를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를 마시며 신과 체를 조화롭게 하고 건과 영을 얻어 집착함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곧 무착바라밀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초의는 차를 준비하고 향유하는 전 과정을 통해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고 하였다.

 

초의와 동갑이며 42년간의 ‘금란지교金蘭之交’로 지낸 추사 김정희는 초의가 선에 든 모습을 보며 지은 시 구절이 있다. “고요히 앉아 참선하는 곳(공간)에서는 차를 마시고 반나절이 지나도록 그 향기가 한결 같이 그윽하고, 허공처럼 순수하게 마음을 쓰는 때(시간)에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듯 진리에 어긋남이 없다[정좌처靜坐處 다반향초茶半香初 묘용시妙用時 수류화개水流花開]” 내용은 초의의 선다일여의 경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시공을 뛰어 넘은 차정신은 ‘모든 법이 둘이 아니며 선과 차도 한 경지[제법불이諸法不二 선다일여禪茶一如]라고 할 수 있다. 초의의 선과 차가 둘이 아니고 시와 선이 둘이 아닌 불이사상은 산골 물가에서 벗들과 차를 마시며 시흥을 즐기다 저녁예불시간을 잊었다는 시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새소리 듣다가 저녁 예불을 쉬었고 청조휴만참聽鳥休晩參 

옛 산골 물가에서 늦도록 노닐었네. 박유고간수薄遊古澗陲

아름다운 시구에 흥겨움 남기고 유흥뢰가구遺興賴佳句 

좋은 벗 만나 마음을 털어놓네. 상심회양지賞心會良知

바위 사이 흐르는 샘물소리 천명석란처泉鳴石亂處 

바람 속에 솔소리 함께 온다네. 송향풍래시松響風來時

차 마시고 조용히 흐르는 냇가에서 다파임유정茶罷臨流靜 

느긋한 생각에 돌아갈 때를 잊었네. 유연망환기悠然忘還期

 

어찌 선사께서 예불 시간을 잊을 수가 있을까? 분명 화자는 산골짜기 물가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시구로 시흥을 더하고, 좋은 벗 만나 흉금을 터놓고 법담을 즐겼을 터이다. 그리고 바위틈으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솔바람 소리 들으며 차를 마시고 나직이 흐르는 냇물을 보다보니 느긋한 생각에 돌아갈 때를 잊었다는 것이다. 잠시 자연의 무정설법을 들으며 깊은 차향에 취하여 저녁 예불 참석을 잊었다는 점에서 다선일여의 경지를 읽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초의에게는 조용한 곳을 찾아 가부좌 틀고 앉는 것만이 선이 아니었으며 현실의 일상생활과 선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할 수 있다.

 

고려시대 이규보는 ‘한 잔의 차는 곧 참선의 시작’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초의에게도 차와 선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차 한 잔을 마시는 데서도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고 하였던 것이다. 이는 차 안에 부처님의 진리[법法]와 명상[선禪]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의의 이러한 면모는 차를 마셔 ‘몸이 맑은 경지에 오르다[신상청경身上淸境]’에서 선명히 표출되고 있다. 

 

옥화 한잔 기울이니 겨드랑에 바람 일고 

일경옥화풍생액一傾玉花風生腋

몸은 가벼워져 벌써 맑은 경지에 올랐네 

신경기섭상청경身輕已涉上淸境

밝은 달은 촛불이 되고 또 벗이 되며 

명월위촉겸위우明月爲燭兼爲友

흰 구름은 자리 펴고 병풍을 치누나. 

백운포석인작병白雲鋪席因作屛 

 

현묘한 경지에 이를 수 있게 하는 맑은 차 한 잔을 마신 후의 선미禪味를 간결하고도 멋지게 담아내고 있다. 푸른 옥색 같기도 하고 연한 연두색 같기도 한 영롱한 옥화차 한 잔 들고나니 겨드랑이에 바람이 이는 듯하고, 몸은 한결 가벼워져 맑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사의 이러한 다선일여의 의미를 한결 극화해주는 것은 밝은 달과 흰 구름만을 유일한 벗으로 삼는 찻 자리이다. 

 

대숲 소리 솔바람 소리가 시원도 하여 죽뢰송도구소량 竹籟松濤俱蕭涼

맑고 차가운 기운 뼈와 가슴에 스미네. 청한영골심간성淸寒瑩骨心肝惺

흰 구름 밝은 달 두 손님만 허락하니 유허백운명월이우唯許白雲明月爲二友 

도인의 찻 자리 이보다 좋을 손가. 도인좌상차위승道人座上此爲勝 

 

‘대숲 소리 솔바람 소리’를 ‘찻물 끓는 소리’에 비유하고 있다. 시원한 대숲 소리와 솔바람소리 같은 차향의 맑고 차가운 기운이 뼈와 가슴에 스며든다는 선사이다. 여기에는 세외지심의 성성적적한 선사의 다선일여의 경지가 그대로 함축되어 있다. 한편, 초의는 차를 마시는 법도에서 손님이 많으면 시끄럽고, 시끄러우면 아취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 마시는 차를 신(神, 신비의 경지에 들고)이라 했고, 둘이 마시면 승(勝: 아주 좋다)이라 하였다. 그래서 번다함을 멀리하고 밝은 달과 흰 구름만을 벗 삼아 차를 마시는 자리는 곧 말을 끊고 생각을 끊은 자리, 즉 선경禪境에 노니는 도인의 찻 자리인 것이다. 이처럼 초의가 차나무를 가꾸고 차 맛을 즐기면서 ‘풀옷’ 법명에 걸맞은 무욕의 삶을 산 것은 바로 그가 추구하는 불이선不二禪의 세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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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전 국제포교사회 회장. 전 한국동서비교문학회 부회장, 저서로 <선시의이해와 마음치유>, <불교 설화와 마음치유>, ><숲 명상시의 이해와 마음치유>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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