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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함께 하는 인생이야기]
꼰대와 어른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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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  2019 년 7 월 [통권 제7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89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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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 불교 전문 작가

 

상대방에게 자기 생각을 옳다고 주장하며 강요하는 사람을 꼰대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꼰대노릇을 하는 어른들을 가장 싫어한다고 하는데, 나이 들다 보니 젊은이들이 보는 나는 어떨까 생각해 보곤 한다.

 
며칠 전 택시를 타고 나서의 일이다. 큰딸의 남자친구가 내가 보낸 ‘내 인생을 바꾼 108배’를 다 읽었다고 하기에, 반갑고 고마운 마음 반, 어떻게든 108배를 하게 하려는 마음 반으로 밥이나 먹자고 해서 만났다. 작은 딸까지 해서 네 사람이 저녁을 먹고 화기애애하게 2차까지 끝내고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큰딸의 남자 친구의 집도 우리와 같은 방향이고 해서 택시를 탔다. 네 사람이 자리에 앉자 기사 아저씨가 목적지를 물었고, 큰딸애가 ‘오빠, 오빠네 집으로 갔다가 우리 집으로 가면 되겠지?’ 하면서 아저씨에게 남자친구 집 주소를 가르쳐주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해 한강을 넘을 때쯤이었을까, 아저씨가 뒷좌석에 앉아있던 딸애에게 물었다.

 

“아가씨,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남자친구예요?”

“네”
“그럼 아까 오빠라고 부른 거지요? 아이구 나는 아빠라고 부르는 줄 알고, 뒤에 앉은 어머니가 한참 연하인 남자하고 사는 줄 알았지.”

애들은 웃었지만, 나는 좀 기분이 언짢았다. 아무리 그렇게 느꼈다고 하더라도 좀 지나치다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도 기사 아저씨는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남자친구를 부를 때 정확하게 발음을 하라고 조언까지 해주었다. 그때까지 우리 세 모녀는 남자친구를 오빠라고 부르는 호칭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아저씨의 의중을 알아채지 못했다(많은 어른들이 결혼 전이나 결혼을 해서도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에 못 마땅해 하니까). 택시를 타고 20여 분 쯤 지나 딸애의 남자 친구가 내리자, 기사 아저씨가 뜬금없이 또 말했다.

 

기사 아저씨의 ‘잔소리'


“그런데 아가씨,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저 남자 친구 점수를 주자면 말이지, 한 40점 정도라고 할까?” 

점입가경이었다. 나는 뒤에 앉아서 저 아저씨가 너무 앞서가는구나, 무슨 자격으로 남의 남자친구 점수까지 매기나 생각하고 있는데 딸애가 조용히 물었다.
“아저씨,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점수를 낮게 주셨어요?”
“다른 게 아니고 말이야, 어른 앞에서 저렇게 껌을 딱딱 씹다니 예의가 없어, 예의가.”

 

음식점에서 나온 뒤 큰딸애가 나눠준 껌을 모두 하나씩 입에 물고 오물거렸던 게 거슬린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차에 타자마자 자기 나이가 칠십이 넘었다는 이야기까지 한 터였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네 사람이 다 껌을 씹었다 해도 점수까지 매겨가며(그것도 아주 낮게)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게 뭐 있는가. 참 저 분도 딱하네, 속으로 생각하고 앉아 있는데 아저씨가 한 마디 더 얹었다.

“내가 칠십 넘게 살아보니 말이야, 저렇게 예의 없는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성공하기 어려워.”
“저녁 먹고 입가심하려고 껌을 씹은 거구요. 아이구 뭐, 아무 데서나 껌을 씹겠어요?”
딸애의 말에도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아니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어디서나 조심해야 돼.”
그런데, 참 미련하게도 나는 그렇게 말을 하는데도 기사 아저씨의 의중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참고로 다음 날에서야 알아챘다). 아저씨의 연설이 이어졌다.

 

“어저께 연인으로 보이는 두 젊은이가 내 차에 탔거든. 커피를 가지고 타길래 차에서 마시지 말라고 했지. 그랬더니 차에서 커피를 마시지 말라는 법이 있냐고 물어, 그래서 법으로 책정되어 있다고 했지. 그랬더니 알아보고 아니면 신고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하라고 했지. 내가 모범 운전자로 표창을 받은 사람이니까 제발 좀 신고하라고 했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아저씨의 말씀하는 모양이 좀 얄미웠는데, 그건 아마 어른이라는 이름 아래 가르치고 대접받으려는 속마음을 감추지 못해서였으리라. 아마 이런 일을 남에게 들었거나 어디 기사에서 읽었으면 젊은 애들이 버릇이 없어서 그렇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의 가르치려고 하는 꼰대 같은 태도를 보니, 젊은이들이 신고하겠다는 말이 나오겠다 싶었다. 지하철에서 노인이 앞에 서 있는데도 일어나 양보하지 않는다고 예의 없다느니 하면서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이 오갔다는 기사를 볼 때도 ‘쯧쯧, 나쁜 젊은이 같으니’라고 했던 터인데,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가르치려들고 대접받으려고 하는 모양은 참으로 꼴불견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나 많이 조금 더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살아보니 말이야, 이러면 발전이 있을 텐데, 성공할 텐데’ 하는 서두를 붙이면서 젊은이들을 질리게 했을까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차가 어느덧 집 앞에 멈추었고 차에서 내리면서 내가 한마디 했다.

 

“택시 안에서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는 법이 책정되었는지 몰랐네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 기사 아저씨가 못마땅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택시가 떠나자 큰딸애가 제 동생에게 말했다.
“어머, 우리가 말대꾸라도 했으면 큰일 날 분이야. 얼마 전에 젊은 사람이 기사 아저씨에게 말대꾸를 했다가 큰 봉변을 당했다는 기사 봤어. 저렇게 가르치려고 하는 아저씨한테는 무조건 아무 대꾸도 하지 말아야 돼.”
다음날 아침에 내가 큰딸에게 물었다.
“엄마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그 아저씨가 네 남자친구에게 그렇게 낮은 점수를 준 게 자기를 어른으로 대접해주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엄마, 그 아저씨가 오빠에게 점수를 그렇게 주어서 기분 나빴어? 나는 다 잊어버렸는데?”
“어제는 좀 기분이 나빴는데, 생각해보니 택시 안이 자기 일터일 것이 고 그분이 우리보다 어른인데 우리가 껌을 씹어서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
“그럴 수도 있겠네.”

 

사실 나는 무의식중에 아저씨를 무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정말 어려운 자리였으면 껌을 씹었겠는가. 거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나도 꼰대 짓을 하고 말았다. 

“어른한테는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조심하고(솔직히 나는 이 부분에서 딸애의 남자친구가 어른 앞에서 무심코 껌을 씹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오죽이나 잘 할까, 그건 정말 노심초사다. 그 기사 아저씨와 똑같이 가르치려는 마음이 있는 것 아닌가), 그 아저씨는 자기 자식도 말을 듣지 않는 마당에 택시를 탄 손님에게 가르치려 하거나 대접받으려는 행동은 안 하면 좋을 것이고.”

 

순수 무잡無雜한 ‘젊은 그들'


이 말을 하지 않았어도 큰 딸애는 충분히 알았을 텐데 발설을 하고 말았으니, 택시 기사 아저씨와 내가 다른 게 뭐 있겠는가. 사실 애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순수하다. 그러 면에서 정말 가르칠 게 없다. 

 

몇 년 전 버스 안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중년의 두 남녀가 통로에 서서 큰 소리로 얘기를 하자 앉아 있던 사람이 좀 조용히 말하라고 타일렀다. 그러자 큰 소리로 말하던 남자가 화를 벌컥 내면서 ‘아니, 아까 내가 그 자리를 양보해 주었건만 고마운 줄을 모르고 그런 지적 질을 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앉아있던 남자가 ‘언제 양보를 해주었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받아치며 버스 안은 소란해졌다.

 

버스안 사람들의 이목이 그들에게 쏠리며 시끄러워지자 버스가 정류장에 서면서 기사 아저씨가 ‘두 분은 내려서 말씀하세요’ 하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서있던 남자가 ‘그럼, 우리 내려서 자세히 따져볼까?’ 하자, 앉아 있던 남자가 그러자며 일어섰다. 두 사람이 버스에서 내리자 나는 속으로 ‘아이구 저 사람들 내려서 치고받고 싸우는 거 아니야?’ 하며 걱정하고 있는데, 내 앞에 서 있던 젊은 여성 둘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백 퍼, 저 분들 술집으로 가서 한 잔 한다.”
얼마나 싱그러운가. 순수 무잡한 그들을 때 묻은 어른들이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만 번 다 옳은 말을 할지라도 한 번 침묵하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지 하고 작정하고 나간 그날, 꾸준히 책을 읽고 마음 닦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걱정이 없겠다 싶은 생각을 앞뒤 떼고 딸애 남자친구에게 전했다.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조심해서 말했다.


“우리 친목 도모도 할 겸 한두 달에 한 번, 책 한 권씩 선정해서 읽고 만나서 책 읽은 얘기도 하고 맛있는 밥도 먹으면 어떨까? 진즉부터 애들하고 하고 싶었는데 잘 안되네.”
다음 날, 남자친구를 만나고 들어온 큰딸이 소식을 전했다.
“엄마, 오빠가 벌써 우리들 독서 모임 이름도 정했대!”

 

가르치고 싶은 꼰대의 마음을 이렇게 무심으로 상큼하게 받아들이는 애들에게 무엇을 가르친단 말인가. 이미 깨달아있다는 그들의 ‘본마음(불성)’을 듬뿍 느끼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만 가지는 것이 어른의 본분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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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불교 전문 작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중국 문학을 전공했고, 동국대학교 역경위원을 역임했다. 108배를 통해 내면이 정화되고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108배 예찬론자가 되었다.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를 지향하는 인터넷 도량 금강카페(cafe.daum.net/vajra) 운영자로 활동하며 도반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1박2일 정진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인홍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길 찾아 길 떠나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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