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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병든 여우는 사자굴에 들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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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2 년 2 월 [통권 제106호]  /     /  작성일22-02-04 11:29  /   조회3,47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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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비록 억천만겁토록 여래의 비밀한 묘장엄법문을 기억하여도 하루 동안 무루업을 닦느니만 못하다.”(주1) 

 

이것은 『능엄경』에 있는 말씀으로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아난존자는 총명하고 지해知解가 뛰어났는데 언어와 문자를 기억하는 것만 근본 생명으로 삼았을 뿐, 실제 선정은 닦지 않았습니다. 불법이란 마음을 닦아 가는 것이지 문자만을 기억해서는 진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도 딱해서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처방전에 따라 약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

 

“너와 나는 과거 저 무수 억겁 동안 같이 발심해서 성불하려고 공부를 했는데, 너는 다만 언어와 문자만 따라가고 남의 말만 따라갔지만, 나는 늘 선정만 닦았다.”

 

선정을 닦는 것은 밥 먹는 것이고, 문자만 기억하는 것은 밥 얘기만 하고 요리법만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밥 먹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되지만, 언어와 문자만 따라간 사람은 배가 부를 수 없습니다. 언어와 문자를 부처님이나 옛 조사스님들은 약방문藥方文(주2)에 비유했습니다. 약방문에 의지해서 약을 지어 먹어야 병이 낫지, 약방문만 외어 봤자 병이 낫지 않습니다. 이처럼 실제 약을 먹는 것이 바로 선정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생이 병이 나아서 부처가 됩니다. 부처님도 아난존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약방문만 가지고 늘 기억만 했기 때문에 병이 낫지 않아 중생 그대로이고, 나는 약방문에 의지해서 약을 먹었기 때문에 완전히 성불 하였다.”

 

그렇게 기억만 하지 말고 선정을 닦으라고 해도 아난이 마음을 돌리지 않고 기억하는 길로만 가니, 부처님께서 “네가 금생今生뿐 아니라 억천만겁토록 부처님 법문을 다 외웠다 하더라도 하룻밤 잠깐 동안 무루업無漏業, 즉 선정禪定을 닦는 것만 못하다.”는 말씀으로 늘 꾸짖었습니다. 그렇지만 총명이라는 이 병은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또 아난존자는 ‘부처님이 계시니까 언제든지 내가 못 깨치겠는가? 내 힘으로 못 깨달으면 부처님 힘을 의지해서 깨치겠지.’라는 생각으로 게으름을 피워 결국은 부처님 생전에는 깨치지 못했습니다.

 

첫 결집에서 쫓겨난 아난존자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부처님 법문을 결집結集(주3)하게 되었는데, 가섭존자가 주체가 되어 대중을 전부 필발라굴畢鉢羅窟(주4)에 모이게 했습니다. 그때 아난존자도 참석했는데, 부처님 법문을 제일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난존자의 총명은 녹음기와 마찬가지로 뭐든지 듣기만 하면 평생토록 잊지 않고 전체를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난존자의 총명과 지해는 이쪽 그릇의 물을 저쪽 그릇으로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온전히 옮겨 붓는 것과 같다고 비유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총명이 뛰어났기 때문에 부처님 법문을 수집하는 데는 아난존자가 근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섭존자가 생각해 보니, 아난존자의 총명함은 남보다 뛰어나서 부처님 법문을 다 기억하고 있지만 마음을 깨치지는 못하였으므로 실제 부처님 법은 모르는 것입니다. 부처님 법은 깨쳐야 아는 것인데, 아무리 기억을 잘한다고 해도 깨치지 않은 사람을 대표로 세워서 부처님 법문을 결집한다는 것은 전도顚倒된 일이었습니다. 

 

김호석 화백이 그린 백련암의 불면석과 성철스님. 

 

비유로 얘기하자면, 금강산 소개서를 외워 금강산을 본 것처럼 잘 설명 할 수 있다 해도 실제 금강산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난존자가 눈을 떠서 법을 보고 깨친 그곳에서 부처님 법을 소개해야 부처님 법문도 산 법문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말로 전하는 식이 되면 부처님 법을 수집하는 데 근본 생명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섭존자가 “아난존자가 없으면 결집하지 못한다.”는 대중의 권유를 뿌리치고 방편을 쓴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부처님 법문을 결집하는 데는 진정으로 깨친 사람이라야 하는데 깨치지 않은 사람은 법문을 결집할 자격이 없다. 아난이여, 그대는 깨치지 못했으니 나가라.”

 

가섭존자가 아난존자에게 나가라 하니, 대중들은 아난존자가 아니면 부처님 법문을 결집하지 못하는데 아난존자를 쫓아내고 어떻게 하느냐 하자 가섭존자가 말했습니다.

 

“여기는 사자굴이다. 깨친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아난은 개소야간疥瘙野干, 즉 깨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안 된다.”

 

개소야간이란 ‘옴 오른 병든 여우’라는 뜻입니다. 사자굴에는 몹쓸 병이 든 여우가 참여할 수 없으니 무조건 나가라는 가섭존자의 축출 명령에 아난존자가 애걸복걸하면서 매달렸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에 ‘제가 지금 깨치지 못했으니, 누굴 의지해서 부처님 법을 바로 깨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여쭈니, 부처님께서 ‘대법大法을 가섭에게 전했으니 너는 내가 떠난 뒤 가섭을 의지해서 대법을 성취하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법을 전했다고 하는 것은 남전南傳과 북전北傳에 모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평생에 부처님과 똑같은 제자를 말할 때는 가섭존자 하나만 거론하셨고, 대법을 가섭존자에게 전했다고 대중에게 여러 번 선언했습니다.

 

아난존자가 울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사형이 저를 쫓아내시면 저는 누구를 의지해서 대법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너는 지해와 총명으로 ‘몹쓸 병이 든 옴 오른 여우새끼’이니 이 사자굴 에서 살 수 없다. 꼭 여기 참석하려거든 깨쳐서 오라. 깨쳐서 오기 전에는 절대로 부처님 법문을 결집하는 이 회상會上에 참여시킬 수 없다.” 가섭존자는 단호히 거절하고 아난존자의 멱살을 거머쥐고 쫓아내 버렸습니다. 이 일은 『율장律藏』이나 남전과 북전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번거로워서 출전을 다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송장 불교가 아니라 살아 있는 불교가 되라

 

이렇게 아난존자는 비사리毘舍離 성 바깥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래도 아난존자는 워낙 아는 게 많아서 신도들이 와서 예배를 하고 큰스님이라고 절을 하고 공양을 올렸습니다. 아난존자는 가섭존자에게 야단맞고 쫓겨난 것을 잊어버리고, 사람들이 와서 절하고 물으니 법문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발기跋耆존자라는 부처님 제자가 그 옆의 조용한 처소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아난존자가 와서 법문을 한다고 법석을 떠니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편을 써야 되겠다 싶어 이런 게송을 읊었습니다.

 

고요한 나무 밑에 앉아 

마음으로 열반을 생각하되 

좌선함에 방일하지 말라 

말 많아 무슨 소용 있는가.(주5)

 

아난존자가 이 게송을 듣고 술 깬 사람처럼 정신이 확 돌아왔습니다. 

‘앗! 큰일 났구나. 이제 보니 내가 가섭존자에게 쫓겨나 여기 와 있는 신세인데 이 무슨 쓸데없는 일인가!’

 

이렇게 크게 반성하고는 그때부터 부처님 생전에 그렇게 권해도 하지 않던 선정을 열심히 닦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했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밤낮으로 침식을 잊고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하도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 날 저녁, 몹시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다’ 생각하고 자리에 누우려고 목침을 베는 순간 확철대오했습니다. 그 길로 가섭존자를 찾아가니, 가섭존자는 아난존자가 깨친 줄 알아보고 몇 가지 물어보고는 인가印可를 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결집하는 회상에 아난존자를 참여시 켜서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로 시작되는 경전들이 편찬되게 된 것입니다. 불교사적으로 보면 후대에 성립된 경전도 많이 있지만 팔만대장경의 모든 법문은 대개 아난존자가 구술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난존자만큼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는 사람은 천추만고千秋萬古에 없지만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가섭존자에게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누이 말하지만 불교의 근본 생명은 깨치는 데 있는 것이지 언어와 문자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정각正覺’의 ‘각’이란 것도 깨침을 말한 것이지 문자를 안다거나 말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난존자는 팔만대장경을 뱃속에 간직하고 있었지만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가섭존자한테 쫓겨난 것입니다.

불교 공부를 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근본 생명선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 없는 사람은 죽은 송장입니다. 그러므로 송장 불교가 아닌 살아 있는 불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에서 부처님 진리를 깨쳐야 합니다.

『백일법문』(2014) 상권, 제1장 ‘불교의 본질’ 중에서 발췌 정리

 

 

<주>

(주1) 『수능엄경首楞嚴經』(X11, 986c), “是故阿難, 汝雖歷劫憶持如來秘密妙嚴,不如一日修無漏業,遠離世間憎愛二苦.”

(주2) 약藥을 짓기 위하여 약 이름과 분량에 대해 기록해 놓은 종이.

(주3) 부처님의 멸도 후, 그 교법이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제자들이 저마다 들은 것을 외워 바르고 그릇됨을 논의하고 기억을 새롭게 하여 정법正法을 편집한 사업이다. 제1결집은 왕사성 칠엽굴七葉窟에서 대가섭大迦葉을 상좌上座로 5백 비구가 모여 경·율 2장藏의 내용을 결정한 것으로, 이를 5백결집 혹은 상좌결집上座結集이라 한다.

(주4)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제1차 경전결집을 단행한 장소로 달리 칠엽굴七葉窟이라고도 한다.

(주5) 『사분율四分律』(T22, 967a), “靜住空樹下, 心思於涅槃, 坐禪莫放逸, 多說何所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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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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