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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세계]
부처님 교화기 미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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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19 년 5 월 [통권 제7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48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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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동국대 겸임교수 · 미술사

 

부처님께서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위해 도리천에 올라가 설법한 이야기는 고대로부터 불교도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중인도의 바르훗Bharhut 불탑 탑문 기둥에 이 이야기가 새겨진 것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어머니에게 설법한 ‘위모설법爲母說法’ 에피소드는 도리천에 계신 어머니에게 설법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하여 ‘도리천 강하忉利天降下’ 또는 ‘33천 강하三十三天降下’라고도 하며, 도리천에서 지상으로 내려올 때 범천 및 제석천과 함께 보배로 장식된 세 개의 계단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삼도보계 강하三道寶階降下’라고도 한다. 부모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5월을 맞아 부처님 생애에서 효와 관련하여 ‘도리천 강하’를 소개하고자 한다.

 

불전 속의 도리천 강하

 

‘도리천 강하’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도리천에 올라 3개월 동안 어머니께 설법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이것은 불교의 효가 유교의 효와 달리 평등한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조선 후기에 유행하는 『부모은중경』 변상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의 효의 실천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소재이며 지상에 부처님이 계시지 않자 부처님을 사모했던 우전왕이 부처님의 모습을 상으로 만들었다는 ‘우전왕 불상 조성’의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사진 1).

 

 

사진 1. 우전왕이 조성한 불상을 안고 도리천에서 하강한 부처님을 만나는 장면, 간다라(3~4세기 ),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33천 강하’ 또는 ‘삼도보계 강하’라고도 불리는 이 불전 장면은 일찍부터 인도에서 표현되었으며 여러 지역에 걸쳐 애호되었던 주제였다. 간다라의 ‘도리천 강하’에 관한 연구로는 알프레드 푸쉐A. Foucher와 파비 C.L.Fabi의 선행 연구가 있고, 중인도의 ‘도리천 강하’에 대해서는 코에츠카肥塚隆의 연구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부처님은 제자들의 눈에서 사라졌다. 3개월 간 지상에서 자리를 비우게 되는데 이 때 도리천에 환생한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러 천상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초기 경전(『디가니까야』 등)에 나타난 다른 이유는 제자들에게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아도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리기 위해서 잠시 지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고 한다. 어머니를 위한 설법과 부처님의 부재 시에도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라는 두 흐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증일아함경』과 『대당서역기』에 자세히 전한다.

 

불교의 4대성지는 탄생지 룸비니, 성도지 보드가야, 첫 설법지 녹야원, 열반지 쿠시나가라이고 여기에 사위성舍衛城, 상깟사, 왕사성王舍城, 바이샬리 등이 포함되면 8대성지가 된다. 이러한 8대성지와 관련된 부처님의 일대사는 탄생·성도·첫 설법·사위성신변·도리천 강하·취상조복·원후봉밀 등으로 부처님의 일대사를 여덟 사건으로 압축한 인도의 팔상八相으로 정립되었다. 부처님 일대기와 관련된 여덟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이 부처님 생애의 중심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8대성지 가운데 도리천에서 설법하고 내려오신 장소인 상깟사가 포함 된 것은 초기 불교도들이 이 사건을 중요시여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깟사 유적지(사진 2)는 바로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내려온 곳으로 8대 성지이며, 지금도 이곳에는 마우리아 왕조(기원전 322~기원전 185)의 아소카 왕이 세운 석주 위에 얹었던 코끼리 주두柱頭가 남아 있다(사진 3). 

 

 

 사진 2.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하강한 상깟사 유적.

  

사진 3. 아소카 왕이 상깟사에 세운 석주의 코끼리 주두, 기원전 3세기 경.

 

바르훗 탑과 산치대탑의 도리천 강하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설법하고 내려오는 장면은 기원전 2세기 경 바르훗 탑문의 기둥에도 이미 표현되고 있다(사진 4). <사진 4>에서는 도리천에서 내려오는 부처님을 중앙 계단의 위와 아래에 불족적佛足跡으로 표현해 부처님을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장 스님의 『대당서역기』에도 도리천에서 설법하고 내려온 상깟사에 대해 기술하고 있어 부처님 일대기에서 중요시되었던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사진 4. 도리천 강하, 바르훗 탑, 기원전 2세기 경, 꼴까타 인도박물관.

 

‘도리천 강하’를 표현한 불전미술에서 범천과 제석천은 부처님의 좌우에 시립侍立하는데 대부분 향 좌측에는 제석천을, 향 우측에는 범천이 배치된다. 『법현전法顯傳』에는 도리천에서 내려오는 부처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도리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실 때 신족통으로 세 개의 보배 계단을 만들어 가운데 일곱 개 보배 계단 위로 내려오셨다. 범천왕은 백은으로 된 계단을 만들어 우측에서 흰 불자拂子를 들고 모시고 내려왔고, 제석천은 자금으로 된 계단을 만들어 좌측에서 칠보로 된 일산을 들고 모시고 내려왔는데, 여러 친신들이 무수히 부처님을 따라 내려왔다.

 

<사진 4>에는 중앙에 3개의 계단이 있고 최상단과 최하단에 불족적을 나타낸 것에 의해 부처님의 하강下降을 표현하고 있다. 왼쪽의 성수聖樹·일산·금강대좌는 지상에 내려와 설법하고 있는 부처님을 상징하고 있다.


산치대탑 북문의 탑문 기둥에도 ‘도리천 강하’가 표현되어 있다(사진 5). 바르훗 탑과 달리 중앙에는 1개의 계단이 있고 계단 위에는 도리천에서 출발하는 부처님을 대좌와 보리수로 나타냈고, 지상에 내려오신 부처님 역시 계단 아래에 보리수와 대좌로 표현하였다. 계단 좌우에는 부처님이 도리천에서 하강하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장면이 연출되어 있다(사진 6).
 

간다라의 도리천 강하

 

 

사진 5. 도리천 강하 전경, 산치 대탑 북문 기둥, 1세기. 

  

사진 . 그림 5의 세부.

 

 ‘도리천 강하’ 불전도는 간다라를 비롯해 중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도 유행한 불전 도상이다. 간다라의 ‘도리천 강하’ 도상은 간단한 삼존구도에서부터 복잡한 도상까지 매우 다양한 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간다라의 ‘도리천 강하’ 장면은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페샤와르박물관에 소장된 ‘도리천 강하’ 불전도는 반원형의 형태를 3단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사진 7). 맨 윗부분은 깨져서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중앙에 대좌가 있는 것으로 보아 도리천에 모셔놓은 부처님의 머리카락[불발佛髮]을 공양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단에는 도리천에서 천신들에게 설법하는 부처님을, 화면의 대부분은 ‘도리천강하’를 나타내고 있다. 3개의 계단 위에는 범천과 제석천을 대동하고 하강하려는 부처님이 서 있다. 계단 아래에는 합장한 채 무릎을 꿇고 부처님을 맞는 출가 제자가 앉아 있고 좌우에는 부처님을 기다리는 인물들이 합장한 채 서 있다.

 

 

 

사진 7. 도리천에서 설법하고 내려오시는 부처님, 간다라(2~3세기),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Victoria & Albert 박물관에 소장된 ‘도리천 강하’는 가장 복잡한 구성을 보여준다(사진 8). 중앙의 세 계단으로 부처님께서 제석천과 범천을 거느리고 내려오는데 같은 장면이 세 번 반복되어 표현되어 있다. 좌우로는 여러 인물들이 합장한 채 부처님을 맞고 있으며 맨 하단에는 말을 타거나 수레에 탄 왕 일행이 공양물을 들고 부처님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8. 도리천에서 설법하고 내려오시는 부처님, 간다라(2~3세기), 런던 빅토리아 앤 알버트박물관.

 

 

팔라왕조의 도리천 강하

 

굽타시대가 되면 도리천 강하를 표현한 장면은 간략화가 진행되는데 팔상도 속의 도상은 보계寶階가 사라진 삼존구도를 취한다. 그러나 팔라 시대(8~12세기)까지 보배 계단은 형식적이나마 유지된다. <사진 9>는 도리천에서 내려오는 부처님을 정면상으로 크게 표현하였고 좌우의 제석천과 범천은 작게 나타내어 부처님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또한 부처님의 보배 계단에는 이중으로 된 연화좌를 배치해 좌우 4단으로 된 제석천과 범천의 평범한 보계와는 차별을 두었다.

 

 


사진 9. 도리천에서 설법하고 내려오시는 부처님, 팔라(10세기), 꼴카타 인도박물관. 

 

향 우측에는 제석천이 두 손으로 공양물을 들고 서 있고 향 좌측에는 얼굴이 삼면인 범천이 손에 일산을 들고 있다. 『법현전』에서는 범천은 불자를 들고 일산은 제석천이 든다고 하였지만 <사진 9>에서는 범천이 일산을 들고 있다. 부처님 머리 위의 일산은 윗부분이 깨졌고 일산에 드리워진 천 좌우로는 꽃줄을 손에 든 천신이 배치되었다. 꼴카타 인도박물관에 소장 중인 <사진 9>와 유사한 도상을 가진 것으로는 12세기에 제작된 미얀마 파간고고박물관에 소장된 <사진 10>을 들 수 있다.


<사진 10>은 <사진 9>와 중앙의 부처님을 크게 표현하고 좌우 제석천과 범천을 작게 표현한 것은 동일하지만 세부 표현에서는 차이가 있다. 범천과 제석천의 위치가 서로 바뀌었고 보배 계단은 돌출되게 표현하였다. 부처님 등 뒤에 별도로 비스듬하게 계단을 표현해 도리천에서 내려오는 듯한 효과를 주고 있다. 또한 부처님을 맞고 있는 승려가 배치된 점도 <사진 9>와는 다르다.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2세기까지 인도에서 미얀마까지 ‘도리천 강하’는 조각으로 표현되며 이후에도 회화 및 경전 속 변상도로도 지속적으로 그려졌다. 남아있는 유물은 부처님 생애에서 ‘도리천 강하’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단서들이다. 

 

 

사진 10. 도리천에서 내려오는 부처님, 파간왕조(12세기), 미얀마 파간고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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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간다라 불전도상佛傳圖像의 연 구」로 문학박사학위 취득,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불교미술전공 초빙교수, 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 저서에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 기록 연구』, 공동 저서로 『치유하는 붓다』·『간다라에서 만난 부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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