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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시대의 지성이 그리운 봄날의 단상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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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2 년 4 월 [통권 제108호]  /     /  작성일22-04-04 12:25  /   조회3,31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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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남다른 기쁨으로 맞이하는 봄 

 

『고경』 3월호 표지를 장식한 화엄사 각황전 앞의 활짝 핀 봄의 전령 홍매화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설레입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이제 만물이 회생하는 따사로운 봄날에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모습이 가슴에 스며들 어옵니다.

 

지난 2월 중순에는 강경구 교수님의 『정독 선문정로』를 출간하여 인연 있는 분들에게 법보시를 하였습니다. 책을 받으신 한 보살님께서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석사논문을 쓰면서 독서반을 만들어 윤독하며 공부하던 때를 되돌아보게 되었다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사진 1. 『정독 선문정로』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2022년 2월 21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 

 

“성철 큰스님의 법어집인 『선문정로』 원문과 현대어 번역, 상세한 해설 등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하여 그 어렵기만 했던 『선문정로』의 참뜻을 누구나가 바르게 이해하고 쉽게 음미할 수 있도록 소중한 해설서를 출판해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제 제가 가지고 있던 1993년 판과 대조해 가면서 읽을 수 있게 되어 기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큰 기쁨과 용기를 주신 강경구 교수님과 원택 큰스님의 노고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평생 잊지 않고 은혜 갚아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법보시를 보내고 이런 감사의 편지를 받아보기도 드문 일인지라 저도 내심 기뻤습니다. 무엇보다 강경구 교수님의 ‘나를 잊은’ 10여 년의 세월에 무슨 말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이렇게 남다른 심정으로 기쁘게 봄을 맞이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절로 흐뭇해집니다. 강경구 교수님은 대학교에서 맡으신 소임과 강의와 연구 등으로 바쁘신 중에도 3월 16일부터 부산 고심정사 불교대학 경전반에서 『정독 선문정로』를 교재로 강의를 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소납은 성철스님문도회를 대표하여 소소한 감사패를 전달하는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대신코자 합니다.

 

둘,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러시아여! 진군을 멈추시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고 세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전쟁 초기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방어선을 도미노처럼 넘어뜨리고 신속하게 진격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20만 병력의 우크라이나군이 수도방어에 매진했지만 코앞까지 진격한 러시아의 신속한 진군으로 패색이 짙어보였습니다.

 

초기의 이런 전황을 두고 전문가들은 ‘예고된 러시아군의 전술적 승리’로 평가했습니다. 러시아는 대대 전술단을 동원해 민간인 사상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수도 30km지점까지 진격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나는 상황을 미군 또는 나토군 개입의 ‘레드라인’으로 여깁니다. 그러할 경우 국제사회의 비난 고조와 맞물려 나토가 떠밀리듯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관측입니다. 이것이 러시아가 전례 없는 전격전, 속도전을 벌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능한 한 우크라이나가 ‘전 국민 항전 태세’에 돌입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자국군과 민간인 사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키이우 진입 이후 러시아군의 목표는 최단 시간에 우크라이나 지도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결사항전의 메시지를 내는 지도부부터 와해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제거하는 방법도 이에 포함됩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25일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적의 1순위 목표는 나”라고 호소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상황은 속전속결을 추구했던 러시아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서방의 무기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는 예상 밖으로 선전을 펼쳤습니다. 젤렌스키 정부는 자신의 목숨과 국토를 지키고자 하는 국민들에게 총기를 나눠줬습니다. 러시아가 빠른 시일 내에 지도부를 와해시키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항전 의지를 꺾어놓지 못한다면 ‘제2의 체첸’처럼 장기화의 늪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전망입니다.

러시아는 지난 3일 마리우플과 볼노바하 2개 도시에서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 통로를 열기 위해 일시적으로 휴전하기로 우크라이나와 약속했습니다. 마리우플과 볼노바하 당국은 공습을 피해 숨은 시민들에게 5일 대피 시작을 알렸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마리우플 인구 45만 명 중 20만 명, 볼노바하 시민 2만 명 중 1만 5천 명 이상이 대피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5일 오전 일방적으로 두 곳에 포격을 재개하면서 휴전 합의는 휴지조각이 되었습니다. 바림 보이첸코 마리우플 시장은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서 “거리에 수천 구의 시신이 있다. 사망자를 수습할 길조차 없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침공 후 러시아군 1만 명이 숨졌다.”라고 밝혔습니다. “대부분의 사망자가 18~20세이고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잘 모른다.”라며 푸틴 정권의 야욕으로 러시아인의 희생도 크다고 질타했습니다. 그는 수도 키이우 등 주요 도시가 아직 러시아에 함락되지 않았으며, 우크라이나군이 통제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9일째 도시는 파괴되고, 수천 명이 사망했으며, 100만 명이 국경을 넘어 흩어졌습니다. 아비규환입니다.

 

지난 4일 러시아군은 유럽 최대 규모로 꼽히는 자포리자 원전 주변까지 포격했습니다. 주민들이 인간 장벽을 만들어 막아섰지만 장갑차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러시아군에게 “폭발하면 체르노빌의 10배 이상의 피해가 난다. 포격을 멈추라.”고 요구할 때, 지구촌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을 떠올리며 가슴을 졸였습니다.

 

전쟁이 어떻게 결론이 나든 분명한 건 이번 침공의 패자는 러시아란 점입니다. 루블화 가치 폭락, 부도 직전의 신용위기 등은 제쳐두고라도 전 세계인은 러시아에게 마음을 돌렸습니다. 참혹한 전장으로 자식을 내보내야 하는 러시아의 어머니들도 분노에 찬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푸틴이 우리의 아들을 ‘인간 방패’로 배치했다”, “우리가 모두 국가에 속았다. 그들은 어리고 또 준비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라고 분노를 표했다고 합니다. 푸틴은 인명살상을 멈추고 유엔의 결의대로 무조건, 즉각, 완전히 철군해야 합니다. 그것이 러시아가 덜 패배하는 길이고, 인류에게 죄를 덜 짓는 길입니다.

 

셋,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을 떠나보내며

 

우리 한국의 최고의 지성이셨던 이어령 큰 어른께서 지난 2월 26일 낮 12시 20분쯤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유족 측은 향년 89세이며, “유언은 따로 남기지 않으셨다.”고 밝혔습니다.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호적상 1934년생)한 고인은 부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고인은 서울대 4학년 때 문리대 학보에 ‘이상론-순수의식의 뇌옥牢獄과 그 파벽破壁’이라는 평론은 발표하였습니다. 딱딱한 논문 투가 아니라 시적인 문체로, 이 글은 그동안 접근하기 어려웠던 ‘이상李箱’이라는 벽의 높이를 확 낮추는 계기가 되었으며, 정식 평론가가 아닌 대학생의 글이었지만 문단에서 널리 읽히는 유명한 글이 되었습니다. 

 

사진 2. 생전의 이어령 선생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22세 때 한국일보 문화면 전면에 ‘우상의 파괴’라는 젊은 세대 기수론을 담은 일종의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고인은 이 글에서 인습의 벽에 갇혀 시대의식을 담지 못하고 권위주의에 매몰된 기성문단을 싸잡아 비판했습니다. 소설가 김동리, 모더니즘 시인 조향, 소설가 이무영을 각각 ‘미몽迷夢의 우상’, ‘사기사詐欺師의 우상’, ‘우매愚昧의 우상’이라고 비판한 글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하였지만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문화 권력의 정점頂点에 있는 문인들은 물론 문단의 풍조를 맹종하는 젊은이들까지 함께 비판을 한 것입니다. 고인에게 붙은 ‘붓 깡패’라는 별명은 이즈음에 생겨난 것입니다.

 

1960년에는 27세의 나이로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면서 당대 최고의 젊은 논객으로 활약하였습니다. 1967년 34세의 나이로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에 임용되어 30년 넘게 강단에 섰으며, 1995년~2001년까지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2011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되었습니다. 30여 년간 이화여대에서 국문학도를 가르치신 겁니다. 1973년 잡지 ‘문학사상’과 출판사 ‘문학사상사’를 설립했고, 1977년에는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이상문학상’을 제정하였습니다.

 

이어령 큰 어른께서는 60여 년 동안 수많은 책을 써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합니다. 소납이 1963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을 때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책이 장안의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읽히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1962년 8월부터 경향신문에 한국 문화와 민족성의 다양한 면모를 비평적으로 분석하여 연재한 글을 묶어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으로, 1년 동안 30만 부가 판매됐으며 영어판, 일본어판 등을 포함해 반세기 동안 200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그중에 「토정비결이 암시하는 것」이라는 곳에서 몇 자 옮겨 볼까 합니다. 

 

사진 3. 이어령 선생님의 저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말을 조심하라. 관가를 조심하라. 인간(친구)을 조심하라. 밖에 나가는 것을 조심하라. 토정은 그렇게 일렀다. 그리고 또 사람들은 토정의 그러한 말이 옳았다고 했다. 미신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은 확률을 이용한 과학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라면 누구나가 다 겪게 되는 일들이다. 오늘도 토정비결을 보고 앉아 있는 저 한국인의 주름진 얼굴에는 100년 전이나 100년 후에나 똑같은 어두운 그늘이 서려 있다.”

 

그리고 1982년에 출간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소납이 1972년 1월에 해인사 백련암 성철스님 문하로 출가한 후 10여 년이 지난 뒤라 책을 사러 서점에 나갈 형편이 못 되어 신도에게 부탁하여서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고인의 책은 어느 것 하나 지식이 샘솟지 않은 적이 없었던 듯합니다. 일본의 짧은 시구인 하이쿠, 분재, 트랜지스터, 쥘 부채 등 일본인이 가진 축소 지향적 요소가 일본을 공업사회의 거인으로 끌어올렸다고 주장하면서 해외 침략 등 확대 지향적 시도는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하여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진 4. 이어령 선생님의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 

 

고인께서는 문화예술행정가로서도 뚜렷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의 개회식과 폐회식을 총괄 기획하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최대규모인 160개국 13,304명의 선수가 동서남북의 모든 장벽을 허물고 참가한 서울올림픽은 1980년 제22회 모스크바올림픽에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서방권이 보이콧을 하고,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공산권이 보이콧을 한 이후 12년 만에 열리는 온전한 올림픽이었던 것입니다.

 

냉전 이후 처음으로 양 진영이 참가하여 화해의 장을 열게 된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에선 딱딱한 표어 대신에 “벽을 넘어서”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개회식의 명장면으로 칭송되는 ‘어린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드넓은 운동장으로 입장하며 들어오는’ 장면은 한국 전통의 여백의 미를 파격적으로 유감없이 표현하였고, 그것을 지켜본 세계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노태우 정권 시절 문화공보부를 공보처와 문화부로 분리하면서 1990년 1월 출범한 문화부 초대 장관을 맡아 이듬해 12월까지 재임하며 문화정책의 기틀도 마련하였습니다. 문화예술인으로는 처음으로 문화부를 이끈 고인께서는 2년간의 짧은 재임 기간에도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전통공방촌 건립, 도서관 업무 이관 등 공약했던 ‘4대 기둥사업’을 모두 마무리하고 물러났습니다. 주위에 장관 시절을 회상 하시면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인터체인지interchange’를 ‘나들목’으로, ‘노견路肩(Road Shoulder)을 ‘갓길’로 번역한 일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매우 흔연해하셨다고 합니다. 

 

사진 5. 굴렁쇠 어린이와 고 이어령 장관. 

 

1993년 11월 4일에 소납이 시봉하고 있던 조계종 제6·7대 종정을 지낸 성철 대종사께서 열반에 드시고 7일 장중에 수많은 문상객이 다녀가고 다비식을 올리고 사리를 수습하여 2재 때부터 해인사 보경당에서 사리친견법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줄을 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혼잡을 막기 위해 말뚝을 박고 끈으로 줄을 묶어 놓았으니 어설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참배객들이 알맞게 오더니 며칠 지나자 새벽 3시부터 참배객들이 밀려들기 시작하여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밀려와도 옛날처럼 새치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일절 보이지 않고 지루하기만 한 차례를 꿋꿋이 지키며 인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는 것입니다. ‘성철스님사리친견법회’는 동절기 일기불순에 따른 참배객들의 안전을 염려하여 49재(1993년 12월 22일) 후 임시 중단했다가 다음 해 봄에 2차 친견법회를 한다고 고지하자 5재 이후부터는 참배객들이 수가 줄어들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공중질서를 지키며 새치기 근성을 버린 것은 바로 1988년 올림픽을 치르면서 여러 면에서 우리사회의 공중도덕을 고치고자 노력했던 캠페인이 이렇게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현장에서 몸소 뼈저리게 체험하였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인께서는 60년 이상 평론과 소설, 희곡, 에세이, 시, 문화비평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의 글을 써 오셨습니다. 그런 다작多作 속에서도 시대를 성찰하는 화두를 늘 던지셨습니다. 2006년에는 『디지로그』라는 책을 내셨는데, 그때는 소납도 절에 산 세월이 35년이나 지난 시절이라 그 책은 사보지 못하고 강연 자료만 구해 읽었습니다. “아날로그의 세계와 디지털 세계와의 합성만이 우리가 힘써 가야 할 문명세계”라고 한 설명에 감개무량하였던 기억입니다. 이 책도 스테디셀러에 오르며 우리에게 디지털의 사이버 문화와 아날로그의 공동체 정서를 이어주는 디지로그Digilog 파워를 희망의 키워드로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도록 격발해 주신 것입니다. 2021년에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으셨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내며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운 고인을 기리고 예우하기 위해 문체부장으로 장례를 거행하고, 3월 2일 오전 10시 문인으로서 평생을 집필활동에 몰두하고 문화부 장관 시절 도서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고인의 업적을 기려 지성의 상징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영결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 미디어 캔버스 ‘광화벽화’에는 고인의 유족들이 직접 뽑았다는 추모 문구가 떴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별을 보며 즐거웠다.

하늘의 별의 위치가 불가사의하게 질서정연하듯, 

여러분의 마음의 별인 도덕률도 몸 안에서 그렇다는 걸 잊지 말라.”

소납은 지금 가까이에서 고인을 모셨던 분들의 글들을 자세히 읽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을 갖추셨던 어른의 영생을 기원하며 남겨 놓으신 글을 통해 허전하고 허전한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다듬는 사이에 우리나라는 제20대 대통령선거를 마쳤습니다. 이번 선거는 예전의 지역 및 이념 갈등뿐만이 아니라 세대와 젠더 갈등(갈라치기)까지 더해져 사회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진 듯합니다. 선거는 최선이 아닌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유권자들은 누구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였을까요? 아마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어젠다를 정확히 알고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통찰력과 공감과 소통 능력을 갖춘 품격 있는 사람에게 나의 유일한 주권을 던졌을 겁니다.

 

소납은 지금이야말로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상호 협력하는 인간 본성의 선善한 마음자리를 되돌아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로 향한 총구를 거두고 세계인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고, 우리 또한 눈 밝은 선지식과 스승이 부재함에 낙담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혜의 등불이 되어 빛나도록 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몸소 보여주신 길에 확신(믿음)을 갖고 우리의 지혜를 가로막는 무명을 떨치는 길에 주저 없이 나서길 바랍니다. 따사로운 봄날에 파릇파릇 새 생명이 움트듯, 우리 마음속에 있는 선한 불씨가 되살아나길 기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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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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