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손가락 사이]
오늘 밥 먹으며 외
페이지 정보
최재목 / 2019 년 5 월 [통권 제7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544회 / 댓글0건본문
최재목 | 시인 · 영남대 철학과 교수
오늘 밥 먹으며
오늘 밥 먹으며
꽃잎 지는 소릴 듣는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밥을 먹는지, 꽃잎이 지는지
숟가락을 놓았다
몇 자 고치다 만 글자들도
잔밥 속에 함께 버린다
밥이 법法이라, 법도 버린다
한 때, 저 흩날리는 불두佛頭를 따라, 왔다 갔다
맨발로 탁발하러 떠난 1,250 송이의 희망이, 고요히 시드는데
부디 양지바른 먼지 위에
묻어다오
하마터면 너무 또렷했을 실망을
가려워도 긁을 수 없는 등처럼 그냥 그대로 눈감아다오
끄덕끄덕 수긍하며, 차량에 차량을 달고 가는 밤 열차의
쓸쓸한 탁발 행렬처럼
자칫 내 실수로 오늘은
꽃이 나를 창가에 포박해두고,
대신 밥을 먹고 있었다
혼자만 다 먹은 죄 때문
산골짜기 밭에다 감나무를 심어 두 번째 수확을 했다
지난 해 열 개, 올 해는 열일곱 개
책장 위 끄트머리에다 쭈-욱 널어놓고
홍시가 될 때마다 먹었다
감은 마음속으로, 마음과 함께 익어 홍시가 되어갔다
하루에 하나씩…, 일주일, 이주일…
먹어도 먹어도 아, 끝이 없는 홍시를
나는 아마 수 백 개는 더 먹었을 거다
마음속으로 쳐다보는 그것은 안 먹어도 늘 먹은 것이다
그 많던 감을 몰래, 혼자 다 먹은 죄 때문에
올해는 혹시나 감이 열리지 않을까
솔직히 쪼매 두렵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가야산에 흐르는 봄빛을 몇 번이나 보았던가!
지난 2월 16일 백련암에서 신심 깊은 불자님들의 동참 속에 갑진년 정초 아비라기도 회향식을 봉행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맞이하고, 저마다 간절한 서원 속에 한 해를 밝힐 공덕을 쌓아 …
원택스님 /
-
기도는 단지 참선을 잘하기 위한 방편인가?
참선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참선이란 수행법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수행법 중에 “오직 참선만이 가장 수승한 수행법이요, 나머지 다른 수행법들은 참선을 잘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
일행스님 /
-
얼굴 좀 펴게나 올빼미여, 이건 봄비가 아닌가
여행은 언제나 좋은 것입니다. 예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지만, 마음속 깊이 잔잔한 기쁨이 물결칩니다. 숙소는 64층인데, 내려다보는 야경이 아름답습니다. 이 정도 높이면 대체로 솔개의 눈으로 …
서종택 /
-
말법시대 참회법과 석경장엄
『미륵대성불경』에서 말하길, 미래세에 이르러 수행자가 미륵에게 귀의하고자 한다면 먼저 과거칠불에게 예배하고 공양하여 과거업장이 소멸되고 수계를 받아야 한다. 신라시대부터 일반 대중은 연등회와 팔관회…
고혜련 /
-
봄나물 예찬
바야흐로 들나물의 계절이 도래하였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아주 작은 주말농장을 통해 수확의 기쁨을 누리면서 24절기에 늘 진심입니다. 『고경』을 통해 여러 번 언급하곤 했지만 절기를 통해 깨닫게 되는…
박성희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