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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2019 년 4 월 [통권 제7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19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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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자유기고가

 

삼성이 설봉 화상에게 물었다. “그물을 벗어난 금빛 물고기는 무얼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설봉 화상이 “자네가 그물을 벗어난 뒤에 말해주지.”라고 대답했다. 이에 삼성이 “천오백 명이나 제자가 있다면서 무슨 말인지 뜻도 못 알아듣는군요.” 하자 설봉 화상은 “나는 절 일이 바쁘다네.” 하고 받았다.

 

擧: 三聖問雪峰: “透網金鱗, 未審以何爲食?” 峰云: “待汝出網來, 向汝道.” 聖云: “一千五百善知識, 話頭也不識?” 峰云: “老僧住持事繁.” (『벽암록』 제49칙)

 

삼성혜연(三聖慧然 ?~?) 스님은 임제의현(臨濟義玄 ?~867) 선사의 제자다. 삼성은 스승인 임제의현 선사의 법문을 정리해 내놓았는데 이것이 선가의 유명한 『임제록臨濟錄』이다. 『임제록』은 우리나라에서도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 스님(1912~1993)이 선방 대중을 상대로 강설할 만큼 선가의 필독서로 꼽힌다. 성철 스님의 임제록 강설은 그의 제자인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이 지난 해 『임제록 평석』(장경각 간)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선가의 유명한 가르침은 모두 『임제록』에서 나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 “어디에서든 주인공으로 살면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란 뜻의 수처작주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아무런 장애나 막힘이 없는 경지에 오른 참사람”이란 무위진인無位眞人 등이 모두 『임제록』에서 나온 말이다.

 

삼성은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인의 경계를 ‘그물을 벗어난 금빛 물고기[투망금린透網金鱗]’로 비유했다. 다시 말해 삼성은 수행이니 계율이니 따위의 속박에서 벗어났음을 암시하며 설봉의 대답을 기다린다. 그런데도 설봉이 그물을 벗어나면 답해주겠다고 하니 화가 날만도 하다. 산문山門에 천오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 대선사大禪師가 말뜻도 못 알아듣느냐며 핀잔 투로 되받자 설봉은 “노승은 절 일이 바쁘다.”고 짐짓 딴청을 피우고 있는 것이 이 공안의 내용이다.

 

 

인도 산치대탑 탑문의 조각 세부

 

 

설봉화상이 삼성의 법기法器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승의 법문을 정리해 『임제록』을 낼 정도로 삼성은 잘 다듬어진 선가의 대들보다. 설봉은 삼성이 이미 그물을 벗어난 금빛 물고기임을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러나 아무런 장애와 막힘이 없는 무위진인인들 무얼 먹어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물을 벗어나 대자유를 구가하고 있다 하더라도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을지는 삼성 자신이 선택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 그물마저 걷어내길 설봉은 삼성에게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 이 공안의 핵심이다. 21세기 들어서서 세계인류는 숨 가쁜 글로벌 경쟁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사학史學을 말하고 언어言語와 종교宗敎를 열변熱辯했던 학자들의 목소리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크게 위축됐다. 한 나라의 국가관과 민족관은 일부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들에 의해 고집될 뿐 그 그물에서 벗어난 우수 인재들은 해외로,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고자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충북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한 젊은이는 우리나라의 국위를 선양하며 세계지도자 반열에 우뚝 섰다. 반기문 UN 전 사무총장이 바로 그다. 반 총장은 지금도 세계 각국의 리더들과 소통하며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맹활약하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펜실베니아 교포 출신의 환경운동가 대니 서Danny Seo는 「워싱턴포스트」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으로 선정했다. 대니 서는 11살 때 햄버거를 먹다가 텔레비전에 나온 도축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친구 7명과 함께 ‘지구 2000’이라는 청소년 환경단체를 만들어 10대 때부터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의 공적을 쌓아왔다. 이러한 남다른 활동으로 그는 1995년에 ‘알베르토 슈바이처 인간 존엄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사회운동가에게 최고의 영예와 권위를 상징한다고 한다.

 

성악가 조수미도 세계적인 인물 중 하나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을 섭렵한 그녀는 카라얀(주1)으로부터 “100년에 1~2명 나올까 말까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난 조수미는 어릴 때부터 무용, 성악, 가야금, 피아노 등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보였으나 학교생활에 크게 만족하지 못해 결국 대학 1학년 때 성악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말하자면 ‘그물을 벗어 난 금빛 물고기’의 삶을 희구했던 것이다. 이는 그녀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세계적인 성악가의 산실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하게 되었고 비로소 그녀의 천재성에 걸 맞는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음악원 유학 2년만인 1985년 나폴리 존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녀는 서서히 국제무대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름이 알려진 여러 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하면서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 그녀는 1986년 정식으로 오페라 데뷔를 갖게 된다. 이탈리아 5대 극장의 하나인 트리스테 베르디 극장에 「리골레토」의 질다로 출연한 것이다. 이때 환상적인 가창을 선보여 거장 카라얀을 감복시킨 그녀는 2년 뒤 그의 오디션에 초청돼 세계적인 명성을 쌓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라스칼라(88), 메트(89), 코벤트 가든(91), 빈 국립 오페라(91), 파리 오페라(93) 등 소위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을 차례로 섭렵했다. 오늘날엔 세계의 프리마돈나로 당당히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녀는 분명 ‘금빛 물고기’가 틀림없다.

 

이 영향을 받아서일까? 세계 곳곳 각각의 전문분야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들은 나날이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보고다. 또한 글로벌 시대 무한경쟁력을 높여나가기 위한 『나는 세계다』라는 책이 2008년 출간됐는데 지금도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다고 전해진다. 이 책은 글로벌 투자 은행에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활동하는 저자 박현정씨가 세계로의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일종의 안내서다. 지금 이 시대 진정으로 필요한 글로벌 경쟁력이 무엇인지, 세계인으로 일하는 법, 그리고 글로벌 인재로 우뚝 서기 위해 필요한 소통의 기술이 무엇인지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태생적으로 살아 온 지역과 지인知人들의 그물에서 벗어나 세계를 상대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도전하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그물에서 벗어남은 시대를 앞서 가는 선각자와도 같다. 과거 구태舊態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에도 시대를 앞섰던 인물은 많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許筠(주2)은 천하를 손바닥만큼 여기며 살았던 인물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16세기 말엽으로 봉건왕조의 모순이 누적돼 지역파벌이 극심했고 경제적으론 토지소유의 불균형으로 백성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또한 사회적으론 신분제도의 불평등으로 서민들의 고통이 컸다. 허균은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면서도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삶을 살았다. 그가 쓴 『홍길동전』은 어떤 것인가? 서얼庶孼의 차별을 철폐하고 탐관오리를 제거하는 사회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다. 홍길동전에 나오는 의적 활빈당은 대한제국 시절 일제의 강점을 막으려는 의용군의 실제 모델로도 활용된다. 

이처럼 시대를 앞지르는 혜안慧眼과 현실적 모순을 질타하고 바로 잡으려는 의기義氣는 삼성이 말하는 금빛 물고기에 비유할 수 있다. 어느 시대에든 인간을 옥죄고 속박하는 그물은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 그물 속에서 안주하는 삶을 산다면 물고기와 다를 바 없다. 인간이 물고기와 다른 점은 무형의 그물마저도 걷어내고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는 삶이 즐겁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세계 인류의 행복과 평화는 글로벌 시대에서 지향하는 공통의 과제다. 이를 위해 지구촌은 지금 인종과 종교와 혈연 등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 중이며 나아가 다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때 나의 존재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나의 존재를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물을 찢고 금빛 물고기로 우뚝 설 수 있는 방안임을 눈치 채야 할 것이다.

 

주)
(주1) 풀네임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베를린 필하모닉 종신 예술감독을 지냈다. 1908년에 태어나 1989년 사망했다. 세계적인 연주자로 명성을 날렸다. 
(주2) 1569년에 출생해 1618년 사망했다. 자유분방한 삶과 파격적인 학문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성격으로 평탄한 삶을 살지 못했지만 한 때를 풍미한 정치인이자 호민好民을 내세운 사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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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선시 읽는 법을 소개한 『마음의 밭에 달빛을 채우다』를 펴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오도송에 나타난 네 가지 특징」·「호국불교의 반성적 고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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