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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로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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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2019 년 3 월 [통권 제7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09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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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자유기고가

 

송원 화상이 말하기를 “큰 역량이 있는 사람이 어째서 다리를 들고 일어나지 못하는고?” 또 말하기를 “입을 여는 것이 혀에 있지 않느니라.” 하였다.
松源和尙云: “大力量人, 因甚擡脚不起?” 又云: “開口不在舌頭上.” (『무문관』 제20칙)

 

송원숭악(松源崇岳, 1132~1202) 화상은 밀암함걸(密庵鹹傑, 1118~1186)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항주 영은사에서 주석했다. 송원 화상은 선가에 유명한 삼전어三轉語를 남겨놓고 있다. ‘삼전어’란 ‘미혹한 마음을 확 바꿔 깨달음으로 이끄는 세 마디 말’이란 뜻이다. 먼저 삼전어로 대중들의 미혹한 마음을 타파하도록 법문을 남긴 이는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 선사다. 조주 선사는 “쇠부처[금불金佛]는 용광로를 거치면 녹아버리고, 나무부처[목불木佛]는 불에 타 버리며, 진흙부처[니불泥佛]는 물에 녹아 풀어진다.”면서 “참된 부처[진불眞佛]는 마음속에 있다”고 갈파했다.

 

삼전어三轉語

 

송원 화상의 삼전어는 첫째, ‘대장부가 왜 다리를 들고 일어나지 못하는가?’이다. 둘째는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 왜 혀에 있지 아니한가?’이며 셋째는 ‘큰 선지식이 왜 발에 매인 붉은 실을 끊지 못하는가?’이다. 이 가운데 『무문관』 제20칙에서는 일전어와 이전어가 소개되고 있는 반면 삼전어는 빠져 있다. 송원 화상은 마지막 삼전어를 입적하기 전 대중에게 수시하였으나 만족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자 송원화상은 탄식하여 말하길 30년 후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며 의발을 전하지 않고 입적하였다.

 

 


 

 

유언대로 스님의 입적 후 30년이 되어 ‘석계’라는 스님이 나타났다. 그는 송원화상이 주지를 했던 영은사의 주지가 되어 이 삼전어에 대한 답으로 ‘대유령두 황매초반 쟁지부족 양지유여’[大庾嶺頭 黃梅初半 爭之不足 讓之有餘]라는 게를 읊는다. 이 말은 5조 홍인 대사가 6조 혜능에게 남몰래 의발衣鉢을 전해주곤 밤중에 강을 건너게 하자 혜명상좌慧明上座가 그를 추격하여 의발을 뺏으려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의발은 단지 물질에 불과하다. 홍인 대사가 혜능에게 건네 준 의발을 설령 혜명 상좌가 빼앗은 들 심법心法마저 빼앗을 수는 없다. 석계는 이 의미를 알아챘다. 즉 ‘선지식이 왜 발에 매인 붉은 실을 끊지 못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했다는 것이다.

 

나무는 불에 타고 진흙은 물에 풀어지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그것이 부처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마찬가지로 실은 실일 뿐이다. 어린 아이도 대번에 끊거나 풀어버린 채 일어나 달릴 수 있다. 그것이 흰 실이든 파란 실이든 붉은 실이든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아주 단순하고 쉬운 문제도 분별심에 얽매이거나 형상에 집착하게 되면 그에 구속된다. 스스로 결박돼 절망의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 알아야 할 것이 말장난에 현혹돼선 안 된다는 점이다. 말은 혀에서 나오지만 그 뜻은 혀에 있지 않다. 송원 화상의 이전어 ‘입을 여는 것이 혀에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의 혀는 ‘맛’과 ‘말’을 담당하고 있다. 음식을 먹을 땐 맛을 느끼게 하고 의사意思를 소통할 땐 말의 기능을 맡는다. 따라서 짜고 맵고 뜨거운 것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혀가 대신하여 가려준다. 말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수식어로 능변能辯을 자랑하는 혀가 있는가 하면 거친 말과 욕설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혀도 있다. 아첨에 뛰어난 특기를 가진 혀가 있는가 하면 이간질에 능하고 두말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혀가 있다. 반대로 사실이 아니면 절대로 말하지 않고 설령 상대방이 상처를 입는다 해도 쓴 충고를 마다 않는 혀가 있다. 분명한 것은 어떤 말이든 한 번 입 밖에 나오면 다시 주워 담지 못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성인일수록 또는 사회의 지도층일수록 말에 대한 책임감이 강조된다. 사람은 누구나 혀에 ‘도끼’를 품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의 혀 속엔 사람을 상처내고 인격을 살해하는 살상의 무기가 숨어 있다.

 

최근 한 전문기관에서 직장인을 상대로 직장 내 언어폭력에 관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발표에 따르면 직장 내에서 직장인 67%가 언어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언어폭력의 종류는 인격모독발언이 69.9%로 가장 많고 호통 및 반발이 62.5%, 비하적 발언이 51.9%, 협박 및 욕설이 28.9%, 거짓 소문을 퍼뜨림이 21.8% 순으로 나타났다. 발표는 또 그렇다면 누가 직장에서 이러한 언어폭력을 일으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직장 상사가 75%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CEO나 임원도 27.9%의 수치가 언어폭력 당사자들이었고, 같은 동료들에게서도 17.2%가 언어폭력을 자행했다.

 

언어폭력의 심각성을 따지자면 실로 가벼이 넘겨야 할 사안이 아니다. 언어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심각한 정서적 상처를 남겨 모욕감과 불쾌감, 분노와 슬픔을 유발한다. 자아존중감에 상처를 입게 됨으로써 불안감과 적대감을 불러오게 되고 심할 경우 자살과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매우 중대한 사회적 문제요인을 안고 있는 것이다. 유명연예인이 어느 날 자살을 했다는 보도를 접하게 되면 그 이면엔 악성 댓글, 즉 언어폭력이 있었다.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군부대 내 사고도 따지고 보면 선임병들의 언어폭력이 주원인으로 작용한다. 몇 해 전 한 부대 내에서 신병이 무기를 탈취해 소동을 벌이게 되는 배경엔 선임병의 언어폭력이 원인이었다. 이처럼 언어가 폭력으로 사용될 때엔 예기치 않게 대형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말이 지니고 있는 폭력성과 그 후유증은 상상 이상이다.

 

말은 무형無形의 성질을 지닌다

 

혀는 또한 다중성多重性의 상징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한 마디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것이 혀다. 오죽하면 어느 노인이 ‘말 한 번 잘못한 죄로 5백 년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았다’고 백장선사에게 실토했을까? 잘못된 말의 과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엄중 경책하는 대목이다.
단순히 혀로 내뱉는 것은 진정한 말이 아니다. 인간 사회에 있어서 말이란 정보의 교류와 소통이라는 의사구조다. 건강한 의사소통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바람직하게 설정된다. 반면 말이 아무런 책임과 기능 없이 배설排泄로 그치게 된다면 사회는 오염되고 사람은 상처를 입는다. 말은 무형無形의 성질을 지닌다. 그러므로 다루기가 까다롭다.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화和와 불화不和가 생기고 행幸과 불행不幸으로 나뉘게 된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8년간의 사상적 논쟁을 벌였던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은 『논사록論思錄』으로 유명하다. 고봉이 경론에서 강연한 내용으로 조선시대 임금들의 제왕학帝王學 교과서로 불린다. 고봉이 죽자 선조가 명을 내려 허봉許葑이 경연 내용에서 가려 뽑아 엮은 책이다. 그 내용 가운데 언로言路를 뚫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언로는 사람의 혈관과 같아 막히면 죽는다는 게 고봉의 지론이었다. 그는 “제왕의 눈과 귀는 그 언로를 향해 항상 맑게 열려 있어야 하고, 감지되는 바가 있으면 언제나 신속하게 반응해야 한다. 제왕의 눈과 귀가 막혔을 때는 사대부들이 목숨 걸고 그것을 뚫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대승이 『논사록』에 언급한 언로를 보면 “천하의 모든 일에는 시是와 비非가 있는 법. 이 시비가 분명해야 인심이 복종하고 정령政令이 순조로울 것이다. (중략) 시비란 하늘의 이치에서 나오는 것이니 한때 비로 가려지기도 하고 잘리기도 하지만 그 시비의 본 마음은 끝이 없어지지 않느니라. (중략) 언로는 국가의 중대사다. 언로가 뚫리면 국가는 안정되고 언로가 막히면 국가는 위태롭 다.”고 했다. 고봉은 사람의 혈관에 비유하여 말의 길[언로言路]이 막히는 것을 경계하였다. 언로는 혀로써 개통되는 것이 아니라 뜻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고봉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군자는 직언을 서슴지 않는 신하를 가까이 두었다고 한다. 당唐나라 현종은 한휴韓休의 직언 때문에 몸이 야윌 정도였다. 직언을 하는 신하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직언을 듣고 이를 소화하여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임금으로선 강인한 인내가 필요했을 터다. 그래서 지도자는 항상 민심을 두려워해야 하지만 직언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민심과 직언은 사람의 일로서 중의衆意에 해당한다. 이를 왜곡하면 뜻을 저버리는 행위다. 송원 화상이 왜 입을 여는 것이 혀에 있지 않다는 것을 삼전어를 통해 우리를 일깨우려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매사 진정한 뜻을 담아 입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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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선시 읽는 법을 소개한 『마음의 밭에 달빛을 채우다』를 펴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오도송에 나타난 네 가지 특징」·「호국불교의 반성적 고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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