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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녹음방초 싱그러운 계절의 꽃다운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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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3 년 7 월 [통권 제123호]  /     /  작성일23-07-04 10:18  /   조회1,37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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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치자꽃 향기가 전해지는 듯 싱그러운 7월입니다. 앵두나무 아래에서 놀던 저는 살구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포리똥 열매를 한 바가지 따먹다가 고개를 돌리니 뽕나무 열매가 까맣게 떨어집니다. 포슬포슬한 감자를 먹다가 옥수수의 달콤함에 빠져듭니다. 

살구나무 위에 올라 내려다보면 어느새 보랏빛 참깨꽃이 예쁘게 피어나고요. 참깨꽃이 필 무렵 옥수수도 수염을 내밀고, 밭고랑에 심어 둔 오이랑 가지도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랄 테지요. 

 

비발디의 사계와 판소리 사철가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차지하고 보드라운 느티잎으로 느티떡을 만들었던 추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느티잎은 하늘을 다 가릴 만큼 풍성해져서 시원한 그늘을 내어 줍니다.

 

사진 1. 보리수열매(포리똥).

 

이른 아침이면 모시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말간 청포도를 바라보며 절대로 멍상이 아닌 명상을 하며 산다는 귀농 3년차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거센 바람과 뜨거운 햇살을 품을 줄 아는 넉넉한 마음자리가 부럽기만 합니다. 

 

지난 봄날에 찾았던 두곡산방은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는 기별이 왔고, 녹음으로 가득할 두곡산방의 풍경이 그리워졌습니다. 이탈리아에 바로크 음악의 거장 비발디의 ‘사계’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작자 미상의 단가 ‘사철가’가 있습니다. 꽃 피는 봄보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의 초입이 더 경치가 좋다고 노래하는 사철가의 한 대목을 흥얼거리며, 비발디가 노래한 여름도 함께 감상해 봅니다. 

 

사진 2. 녹음으로 짙게 물든 시골집.

 

음악을 통해 얻어지는 영감은 마치 주문을 외는 거처럼 학습이 되곤 합니다. 절기음식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제게 『농가월령가』가 그랬습니다.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농가월령가』에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음식을 공부하면서 정학유의 『농가월령가』는 농사월력이자 절기음식을 공부하는 데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농가월령가』 음력 6월령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구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고 하지만 24절기와 농가월령가의 노랫말은 아직까지도 참으로 신박한 조상님의 선물로 남아 있습니다. 한 해 농촌생활을 달거리 형식으로 노래하고 있는 『농가월령가』는 서장을 포함해서 12달을 노래했기에 모두 13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사에서는 천체 운행과 계절의 반복 변화를, 본사에서는 농법·농가행사·농가풍속 등을 적어 농민을 교화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고 마지막 결사에서는 본사의 내용대로 행해야 한다며 실천과 경계의 뜻을 적어 놓았습니다. 『농가월령가』에서 말하는 달은 모두 음력을 가리키는 달이니 참고해서 읊어 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 

 

사진 3. 절기음식 여름떡 증편.

 

유월이라 늦여름 되니 소서 대서 절기로다 

큰 비도 때로 오고 더위도 극심하다

초록이 무성하니 파리 모기 모여들고 

평지 위에 물 고이니 참개구리 소리 난다

봄보리 밀 귀리를 차례로 베어 내고

늦은 콩 팥 조 기장을 베기 전에 심어 놓아

땅 힘을 쉬지 말고 알뜰히 이용하소

 

삼복은 속절이요 유두는 좋은 날이라 

원두밭에 참외 따고 밀 갈아 국수하여 

사당에 올린 다음 모두 모여 즐겨 보세 

 

아녀자 헤피 마라 밀기울 한데 모아 

누룩을 만들어라 유두 누룩 치느니라 

호박나물 가지김치 풋고추 양념하고 

옥수수 새 맛으로 일 없는 사람 먹어 보소 

장독을 살펴보아 제 맛을 잃지 마소 

맑은 장 따로 모아 익는 대로 떠내어라 

 

『농가월령가』 음력 6월령에서 볼 수 있듯이 7월은 싱그러움으로 가득해 즐겁기도 하고 풍요롭기도 한 역동의 계절입니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기도 하고요. 장독대를 잘 관리해야 하는 시기이면서 유두절의 시절음식이 풍요로운 시기입니다. 조상의 미덕과 풍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매우 친근한 문학작품을 감상하면서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을 소개하고, 본래음식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살림 사찰음식을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사진 4. 토종오이와 노각.

 

유두절의 절기음식

 

『농가월령가』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유두절의 절기음식 중에 하나가 바로 참외입니다. 중복과 말복 사이인 음력 6월 보름을 유두절이라 하여 신을 위한 유두천신과 인간을 위한 유두잔치를 벌였습니다. 그야말로 유두천신은 쇠는 의식이었고, 유두잔치는 쉬는 행사였던 것이지요. 먹고 마시고 즐기며 하루 푹 쉬는 날이었지만 자연에 대한 예를 갖추고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았던 조상님들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유두절이었습니다.

 

사진 5. 참외무침 담음새.

 

유두절에 대표적인 제철과일은 참외와 수박입니다. 햇과일과 유두면, 수단, 상화병 등을 유두천신에 올렸으니 천신에 올리는 음식이면서 피서 음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유두절 대표 식재료인 참외를 활용하여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외무침 만들기

 

재료

참외 1개, 소금 1/2t, 흑임자 1/2t.

 

만드는 법

1. 참외를 깨끗이 씻어서 반으로 갈라 숟가락으로 씨를 긁어 주세요.

2. 손질한 참외를 얇게 썰어서 준비해 주세요.

3. 씨 부분은 채에 바쳐서 과즙을 받아 소금을 녹여 준비합니다.

4. 얇게 썰어 놓은 참외에 소금을 녹인 과즙을 넣어 버무려 주세요.

5. 흑임자를 넉넉히 뿌려 완성합니다.

 

TIP

- 소금 대신에 한식간장으로 간을 해도 좋습니다.

- 아주 간단한 조리법이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내는 일품요리입니다.

- Korean melon이라 불릴 만큼 참외는 대표적인 한국 과일입니다.

 

감잎으로 멋을 낸 오이만두, 규아상

 

『시의전서』는 저자와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없는 한글 필사본으로 현존하는 옛날 음식책 중에서 다양한 음식이 가장 잘 분류되어 정리된 소중한 고조리서입니다. 온고지신할 수 있는 전통음식을 공부하기에 아주 적합한 고조리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 6. 볶아 놓은 오이.

 

불가에서는 스님의 미소(승소)라고 불리는 국수를 별미로 여겼습니다. 승소 다음으로 스님들께서 여름철에 즐겨 드셨던 음식이 바로 오이만두입니다. 사찰음식을 배우면서 스님들과 만들었던 오이만두는 오신채와 고기를 뺀 규아상이었습니다. 오이만두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었고, 다양한 고조리서에 등장하기도 한 인기 메뉴입니다. 해삼모양으로 초롬초롬하게 쥐여 감잎을 깔고 쪄서 가로, 세로를 얌전히 다듬어 기름을 넉넉히 발라 초장에 먹으라고 설명된 규아상을 오이와 표고버섯만을 활용해서 담백하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규아상 만들기

 

재료

오이 2개, 건표고버섯 4개, 생만두피, 포도씨유.

오이절임용: 물 1컵, 소금 2t.

표고버섯양념: 간장 2t, 참기름 1t, 깨소금, 후춧가루.

 

만드는 법

1. 오이는 돌려까기 한 다음에 채를 썰어 주세요.

2. 오이절임용 소금물에 채 썬 오이를 절여 주세요.

3. 물에 불린 표고버섯은 포를 떠서 곱게 채를 썰어 양념해 주세요.

4. 절인 오이는 물기를 빼고 기름을 두른 팬에 빠르게 볶아 주세요.

5. 볶은 오이는 넓게 펴서 식혀 주세요.

6. 기름을 두른 팬에 양념이 된 표고버섯을 넣고 볶아 주세요.

7. 오이와 표고버섯을 섞어 만두소를 만들어 주세요.

8. 만두피 위에 소를 올리고 해삼 모양으로 초롬초롬하게 만들어 주세요.

9. 찜기에 물이 끓으면 감잎을 깔고 만두를 익혀 주세요. 

 

사진 7. 감잎으로 감싼 규아상.

 

TIP

- 만두피에 물을 바른 다음에 소를 올리고 반으로 접어 양 갈래 꼬리처럼 끝을 만들고 몸통은 해삼처럼 초롬초롬하게 집어 줍니다.

- 해삼을 닮아 미만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만두소는 모두 익힌 상태이므로 만두피가 익을 정도로만 찝니다.

- 만두를 그릇에 담을 때 싱싱한 감잎이나 담쟁이 잎을 활용합니다.

 

 

옥춘사탕을 닮은 떡

 

조선의 버블티라고 불리는 수단은 원소병과 함께 떡이 들어간 여름철 전통음료입니다. 시원한 음료와 곁들여 먹을 다식으로 옥춘사탕을 닮은 모양절편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단오 무렵에 채취한 수리취를 활용해서 모양절편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일반적인 절편의 맛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모양과 색감을 통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예쁜 떡입니다.

 

사진 8. 옥춘사탕을 닮은 절편.

 

옥춘절편 만들기

 

재료

멥쌀가루 12컵, 물 1컵.

색내기 재료: 단호박 가루(노랑), 코치닐(분홍), 쑥가루(연두), 백년초(보라).

 

만드는 법

1. 멥쌀을 깨끗이 씻어 일어서 5시간 이상 불린 후 건져서 호렴(1.2%)하여 곱게 빻아 주세요. (방앗간에서 소금 간이 된 멥쌀가루 구입 가능).

2. 쌀가루에 물을 섞어 시루에 안쳐 김이 오르면 10분 더 쪄 주세요.

3. 익은 떡은 절구나 손으로 차지게 될 때까지 칩니다.

4. 흰떡을 조금씩 떼서 색내기 재료를 섞어 색을 만들어 놓습니다.

5. 절편이 굳을 수 있으니 비닐로 덮어 두고 작업을 합니다.

6. 색내기용 절편은 손으로 밀어 길고 얇게 굵은 실처럼 만들어 주세요.

7. 흰색 절편을 한 웅큼 떼서 타원형을 만들고 굵은 실처럼 만든 떡을 옆으로 붙여 주고 지름 3cm의 막대 모양이 되게 손바닥으로 밀어 주세요.

8. 손바닥을 세워서 떡 위에 놓고 밀면서 잘라 주세요.

9. 잘린 부분을 잘 정리해서 옥춘사탕처럼 만들어 주세요.

10. 완성된 떡에 참기름을 발라 마무리해 주세요.

 

사진 9. 옥춘절편과 수리취를 활용해서 만든 절편.

 

TIP

- 색내기 떡은 가능한 얇게 만들어 두면 좋습니다.

- 절편을 만들 때는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유의합니다.

- 펀칭기를 활용하면 보다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 떡이 도마에 붙지 않도록 소금물을 만들어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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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한국전통음식연구가. 경기대학교에서 국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식과 명상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연구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사찰음식전문지도사, 한식진흥원 교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식물기반음식과 발효음식을 연구하는 살림음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논문으로 「사찰음식의 지혜」가 있다. 현재 대학에서 한식전공 학생들에게 한국전통식문화와 전통음식을 강의하고 있다.
naturesw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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