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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열매음식과 뿌리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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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3 년 10 월 [통권 제126호]  /     /  작성일23-10-05 10:18  /   조회1,24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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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이라 계추되니 한로 상강 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 기러기 언제 왔는가. 벽공에 우는 소리 찬 이슬 재촉한다. 만산에 풍엽은 연지를 물들이고, 울 밑에 황국화는 추광을 자랑한다.  

구월 구일 가절이라 화전하여 천신하세. 절서를 따라가며 추원보본 잊지 마소. 물색은 좋거니와 추수가 시급하다. 들마당 집 마당에 개상에 탯돌이라. 습한 논은 베어 깔고 마른 논은 베두드려 오늘은 점근벼요 내일은 사발벼라. 밀따리 대추벼와 동트기 경상벼라.

 

들에는 조 피 더미 집 근처 콩팥가리 벼 타작 마친 뒤에 틈나거든 두드리세. 비단 차조 이부꾸리 매눈이콩 황부대를 이삭으로 먼저 잘라 후씨로 따로 두소. 젊은이는 태질이요 계집 사람 낫질이라. 아이는 소 몰리고, 늙은이는 섬 욱이기. 이웃집 울력하여 제 일 하듯 하는 것이 낟알 줍기 짚 널기와 마당 끝에 키질하기. 한쪽에서 면화 트니 씨아소리 요란하다. 틀 차려 기름 짜기 이웃끼리 힘 모으세. 등불 기름도 하려니와 음식도 맛이 나네. 

 

사진 1. 한로에 수확한 곡식.

 

밤에는 방아 찧어 밥쌀을 마련할 제 찬 서리 긴긴밤에 우는 아기 돌아볼까. 타작 점심 하오리라 닭고기 막걸리 부족할까. 새우젓 계란찌개 상찬으로 차려 놓고 배춧국 무나물에 고춧잎장아찌라. 큰 가마에 앉힌 밥이 태반이나 부족하다. 한가을 흔할 적에 나그네도 대접하나니. 한 동네 이웃하여 같은 들에 농사하니, 수고도 나눠하고 없는 것도 서로 도와 이때를 만났으니 즐기기도 같이 하세. 아무리 일 많으나 일하는 소 보살펴라. 핏대에 살을 찌워 제 공을 갚을지라.

 

계수나무 꽃피는 시절의 계절음식

 

제철 식재료에 대한 이해를 위해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9월령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갑니다. 계추는 계수나무에 꽃이 피는 계절이고, 가을의 마지막 달을 의미합니다. 24절기 중에 한로와 상강이 들어 있는 달이기도 하지요. 제비는 강남으로 다시 돌아가고, 기러기 떼가 돌아오는 달입니다. 온 산에 단풍이 물들고 노란 국화는 가을빛을 자랑합니다. 농가의 구월에는 가가호호 풍요로운 가을 타작이 시작되었고, 「농가월령가」 중 9월령은 유난히 바쁘고 분주하게 느껴집니다.

 

글을 읊조리다 보면 어디선가 조, 피, 콩, 팥을 두드리는 소리가 분주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노동 후 막걸리 한 잔이 수고로움을 덜어 주고, 배춧국과 무나물, 고춧잎장아찌가 식욕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사람만큼이나 수고로웠을 소를 돌보는 손길에서 애정이 듬뿍 묻어나기도 합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는 이웃과 함께 나누고 베푸는 삶을 통해 공동체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풍요로움 속에서 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이웃을 품는 온정이 느껴져서 저절로 미소가 번지기도 합니다.

 

사진 2. 강정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비자열매.

 

9월령을 읽을 때면 고단했던 지난 시간을 가을의 풍요로움으로 보상 받는 느낌이 들어서 읽는 내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짐을 느낍니다. 결실의 계절임을 실감하게 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살이 오른 오곡백과를 수확하고 농사를 갈무리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들깨송이가 여물어 가고, 방아꽃이 만발할 무렵이면 들깨송이나 방아꽃으로 부각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밤과 도토리가 여물어서 다람쥐는 유난히 행복한 계절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짭쪼름한 열매가 맺는 염부목의 열매로 두부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고, 빨갛게 익은 마가목의 열매를 활용해 약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나무 열매의 결실도 풍성하지만 뿌리 작물이 튼실해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대지의 힘을 받아 살이 차오르는 뿌리채소는 이 시기에 매우 중요한 식재료입니다. 대표적인 구황식물인 고구마에 맛이 드는 계절이고 우엉, 연근, 토란. 마, 생강 등 뿌리채소가 보약입니다.

 

특히 연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소중한 식재료입니다. 한여름에는 연꽃을 감상하고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면 가장자리에 단풍이 들기 시작한 연잎을 채취하여 연잎차와 연잎밥도 만들어 먹습니다. 식감도 좋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연자를 활용하여 밥을 짓거나 죽을 쑤어 먹기도 합니다. 또한 간장과 조청을 넣어 연자조림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는 연근을 활용해서 김치를 담가 먹기도 했으며, 연방으로 연방만두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연의 하이라이트는 연근입니다. 연근은 독특한 모양을 조금만 살려도 근사한 요리로 탄생합니다.

 

사진 3. 가을 버섯.

 

다음은 우엉을 소개합니다. 우엉은 섬유질이 매우 많고 개성이 강한 향기를 품고 있습니다. 아작거리는 섬유질의 식감과 매력적인 향기를 품고 있어서 가을철에 많이 나는 버섯과 잘 어울리는 음식입니다. 우엉을 손질하는 방법부터 조리법까지 아주 맛있는 비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밖에 토란, 마, 더덕 등의 뿌리채소도 꼭 챙겨 드시기를 추천합니다.

 

사찰음식의 기본은 제철 식재료에 있다고 했습니다.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은 전통음식을 기반으로 하고 토종의 채소음식을 기반으로 합니다.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를 사용하지 않고 양념으로 채소발효를 기본으로 합니다. 가을은 뿌리채소의 계절이자 열매채소의 계절이므로 두 종류의 식재료를 적절히 활용한 사찰음식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보늬밤조림

 

먼저 열매음식으로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소개되기도 했던 밤조림입니다. 정확한 이름은 보늬밤조림이라고 합니다. 보늬라는 단어는 순우리말로 밤이나 도토리 등의 속껍질을 의미합니다. 율피에 상처가 나지 않게 겉껍질을 벗겨서 만들기 때문에 보늬밤조림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그리고 영화를 통해 ‘밤이 이렇게 맛있다는 건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전통병과 중에 하나인 밤초를 만들 때 밤을 익히고 조리는 과정에서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백반을 한꼬집 넣어 삶습니다. 보늬밤조림을 할 때도 처음에 끓이기 시작할 때부터 백반을 넣어 삶다가 물을 버리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율피를 깨끗이 정리해 줍니다.

알토란 밤을 활용해서 겨울 내내 먹을 수 있는 보늬밤조림을 함께 배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4. 껍질을 벗겨 준비한 보늬밤.

재료

밤 1kg, 설탕 500g, 꿀 100g, 간장 1t, 계피 1t, (백반 1t, 물).

 

만드는 법

1. 율피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겉껍질을 잘 벗겨 주세요.

2. 보늬밤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백반을 넣어 센 불로 끓여 줍니다.

3. 끓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끄고 물을 붓고 새 물을 받아 다시 끓여 줍니다.

4. 이와 같은 과정을 서너 번 반복하면서 밤에 남아 있는 심을 제거합니다.

5. 보늬가 매끈하게 벗겨지면 다시 밤이 충분히 잠길 정도로 물을 부어 주세요.

6. 간장, 설탕, 꿀을 넣고 중간불로 1시간 정도 끓여 주세요.

7. 약불로 30분 가량 더 졸여 주세요.

8. 기호에 따라 계피를 넣어 완성해도 좋습니다.

 

사진 5. 보늬밤조림.

 

TIP.

- 율피에 상처가 나게 껍질을 벗기면 조리는 과정에서 밤이 부서질 수 있습니다.

- 백반 대신에 베이킹소다를 활용해도 좋습니다.

- 조리는 과정을 천천히 할수록 보늬밤조림의 맛이 깊어집니다.

- 보관할 때도 밤이 국물에 잠길 수 있을 만큼 부어 주세요.

- 겨우내 보관해 두었다가 다식으로 활용하시면 좋습니다.

- 계피는 기호에 따라 가감하시면 됩니다.

 

우엉조림

 

우엉은 식이섬유와 올리고당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 변비를 예방하고 이뇨작용을 합니다. 특

히 향이 아주 매력적이고 식감이 좋은 식재료이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우엉은 연근과 함께 대표적인 뿌리채소에 속합니다. 간장과 조청만으로 우엉조림을 맛있게 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6. 우엉조림.

 

먼저 우엉을 손질하는 방법에 주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엉을 손질할 때 껍질을 벗겨서 물에 담가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갈변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물에 담가 두게 되면 우엉의 매력적인 향이 모두 달아나게 되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는 칼등으로 우엉 껍질을 살살 벗기고 물에 한 번만 헹군 다음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손질해서 사용하면 우엉의 아삭한 식감도 살아 있고, 향기도 진하게 퍼져서 훨씬 더 깊은 맛을 느끼실 것입니다. 

 

재료

우엉 2 뿌리, 간장 1T, 조청 1t, 포도씨유 1T, 들기름 1T, (당근, 풋고추 등).

 

만드는 법

1. 우엉을 깨끗이 씻어서 칼등으로 껍질을 긁어 주세요.

2. 껍질을 긁어서 찬물에 한 번 헹궈 줍니다.

3. 어슷썰거나 채를 썰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준비합니다.

4. 팬에 기름을 두르고 우엉을 넣고 볶아 줍니다.

5. 간장과 조청을 넣고 중불에서 볶아 줍니다.

6. 수분감이 거의 다 날아갈 때까지 볶아 줍니다.

7. 간을 맞추고 들기름을 둘러 마무리합니다.

 

TIP.

- 당근말랭이를 준비해 놓고 함께 사용해도 좋습니다.

- 우엉조림을 채 썰어 준비하고 두부에 올려 드셔도 좋습니다.

- 우엉은 썰어서 물에 담가 놓지 않습니다.

- 기호에 따라 풋고추와 통들깨를 넣어도 좋습니다.

 

장김치

 

고대 김치는 짠지 형태의 채소절임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채소절임은 신라,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침채형 김치가 되었습니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국물김치인 동치미와 나박김치가 등장합니다. 고려시대까지는 무, 가지, 미나리, 오이들이 주재료가 되고 양념으로 마늘, 생강, 귤껍질, 천초 등이 쓰였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는 젓갈을 사용하지 않았고 짠지 형태의 김치 또는 침채형 김치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사진 7. 장김치.

 

조선시대 전기의 김치도 고려시대의 김치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배추, 무, 오이, 가지를 주재료로 사용하였고 미나리와 갓 등은 양념채소로 활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이후에는 붉은 고추와 젓갈을 사용해서 양념김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민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채소 그림을 통해 당시 김치에 사용되는 재료들을 유추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김치라고 하면 통배추김치를 떠올리지만 우리의 전통김치는 소금에 절인 짠지로 시작해서 현재는 다양한 양념김치로 발달해 왔습니다. 김치가 오늘날과 같이 자리매김한 것은 조선시대 중기부터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소개해 드릴 김치는 무나 배추를 간장에 절여 당장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벼락김치와 통배추를 간장에 절여서 온갖 고명을 하고, 간장으로 간을 맞춘 장통김치를 통합해서 만든 김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우리의 본래음식을 기반으로 고추씨앗을 넣은 장김치를 한번 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8. 9. 김치 재료 배추와 무.

 

재료

배추 3포기, 무 5개, 소금 3컵, 장, 채수(다시마+표고버섯+무), 고추씨앗.

 

만드는 법

1. 배추와 무는 소금에 절여 주세요.

2. 잘 절여진 배추와 무를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빼고 항아리에 담습니다.

3. 채수와 간장을 끓여서 간을 맞춘 뒤 배추에 부어 줍니다.

4. 기호에 따라 고추씨는 가감해 주세요.

5. 상황에 따라 간장물을 따라내고 한 번 더 끓여서 식힌 후 다시 부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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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한국전통음식연구가. 경기대학교에서 국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식과 명상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연구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사찰음식전문지도사, 한식진흥원 교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식물기반음식과 발효음식을 연구하는 살림음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논문으로 「사찰음식의 지혜」가 있다. 현재 대학에서 한식전공 학생들에게 한국전통식문화와 전통음식을 강의하고 있다.
naturesw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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