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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근대불교사상 검토를 통한 종교의 자율성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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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령  /  2023 년 12 월 [통권 제128호]  /     /  작성일23-12-04 11:13  /   조회54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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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일본의 불교학자들 35 | 카시와하라 유센

 

카시와하라 유센(柏原祐泉, 1916~2002)은 일본불교사 연구의 태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의 연구 분야는 근세와 근대 일본불교를 시작으로 정토진종 연구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대중들에게는 『일본불교사ꠓ근대』(1990)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동시대 연구자들이 불교의 ‘근대화’를 평생 과제로 삼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중세부터 근·현대까지 광범위하게 연구를 진행했다. 이번 호에서는 카시와하라가 검토한 메이지 시기의 주요 불교사상 평가를 바탕으로 근대불교에 대한 그의 입장을 소개하겠다.

 

근대불교사상 검토

 

일본의 패전은 당시 많은 연구자가 그간의 연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학계 역시 불교교단이 전쟁에 협력했던 지난날의 활동을 되짚어보는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이 시기 카시와하라는 폐결핵에 걸려 3년여간 장기 요양생활을 하면서 활동을 중단하고 있었다. 이후 1951년경, 「근대불교의 사상적 계보」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후 불교사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논문의 서두에는 근대불교의 태동이 여러 사상과의 교섭을 통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메이지明治 초기의 대표적 불교사상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그는 가장 먼저 키요자와 만시(清沢満之, 1863~1903)를 거론하며 자신의 논지를 부각시켰다. 

 

사진 1. 카시와하라 유센(柏原祐泉, 1916~2002).

 

"키요자와 만시는 학문과 종교의 세계를 구별했다. 키요자와는 “종교는 학문의 진보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종교계는 어떤 새로운 것이 흥기하더라도 종전의 교리가 결코 그것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종교의 본질은 시대나 세상일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종교의 자율성에 관한 주장은 종교의 본질과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종교학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는 그 문제들을 물으려는 것이 아니라, 만시 등에 의해 불교는 오랫동안 얽매여 있던 속박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도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종교의 자율성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근대정신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 「근대불교의 사상적 계보」(1951) 중에서 -

 

사진 2. 『일본불교사-근대』(1990).

 

카시와하라는 근대불교가 근대정신이 미성숙한 일본사회와, 내면적 신앙이 확립되지 않은 세속권력을 추종한다는 문제를 제시하면서 종교가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을 추구했다. 다만, 카시와하라가 바라보는 근대불교는 근세와 중세불교의 탐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는 「근대불교의 태동」에서 봉건제 하의 불교는 전쟁 전부터 고정된 개념이 있다고 봤다. 본말제도本末制度나 단가檀家제도의 성립과 막부의 법도法度 정치에 의해 봉건적 교단기구가 확장됐다. 이러한 봉건적 구조와 결합한 국가적 불교, 그리고 거기에 의존한 승려의 안일함 등을 봉건불교의 개념으로 파악했다. 

 

「메이지 100년의 종교각서」에서는 키요자와 만시가 정신주의를 통해 불교를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켰다고 기술했다. 그는 키요자와의 주관주의적 신앙 확립을 단순히 불교의 근대화가 아닌, 종교 자체의 본질을 근대에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카시와하라의 불교사상 검토는 샤쿠 운쇼(釈雲照, 1827~1909)나 후쿠다 교카이(福田行誡, 1806~1888)의 계율주의에서도 지속된다. 그는 계율 부흥이 반드시 불교의 근대화로 이어지지 않지만, 두 사람이 과거 교단을 비판하고 불교의 본래성 확립에 힘쓴 것은 근대불교 태동에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했다.

 

사진 3. 키요자와 만시(清沢満之).

 

1977년 발표한 「근세 불교자의 세계」에서는 스즈키 쇼산(鈴木正三, 1579~1655)을 평가했다. 카시와하라는 쇼산의 교화사상이 막번체제에 순응하도록 하는 기능적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다. 쇼산이 신분 차별을 전제로 종교적 자각을 설법하고, 이를 강조할수록 체제 순응을 강요하는 상승작용이 일어났다는 모순을 지적했다. 반면, 쇼산이 종교 본래의 자립성을 지향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동시에 했다.


츠지 젠노스케에 대한 평가

 

카시와하라는 만년에 저술한 「근대불교사학의 일과제」(1992)에서 츠지 젠노스케(辻 善之助 , 1877~1955)를 검토했다. 메이지-쇼와昭和 시기의 대표적 역사학자였던 츠지 젠노스케는 도쿠가와 막부의 통제하에 불교 교단이 타락했고 사회적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츠지의 주장은 이후 전후 불교사학의 연구 형태를 규정지었다. 카시와하라는 자신의 논문에서 츠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사진 4. 키요자와 만시 기념관.

 

"츠지의 불교사 연구는 광범위한 문헌을 취급해 종래의 연구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의 성과를 남겼다. 그의 연구를 관통하는 것은 흘러넘치지 않는 고증주의이자 객관적 고찰이었다. 그 때문에 그의 연구는 많은 이들에게 큰 신뢰를 주었다. … 그러나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츠지의 불교사학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고증의 엄밀함이란 그늘에 숨어 있는 아쉬움, 독서 후 해소되지 않는 불충분함이었다. 근세불교사는 내용이 평이하고 근세불교 전체의 역사적 존재 의의 자체가 희박하다. 그래서 후배 연구자들의 연구 의욕마저 사그라들게 하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 「근대불교사학의 일과제」(1992) 중에서 -

 

카시와하라의 츠지에 대한 평가는 꽤 신랄하다. 하지만 츠지의 『혼간지론本願寺論』(1919)은 “안으로는 타락사관墮落史觀에 기반을 두면서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납득할 수 있는 논고가 있다.”라고 예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했다. 『혼간지론』은 츠지의 여러 유명한 저서들과 달리 크게 유명세를 타지 못한 저서이다. 카시와하라가 이 저서를 높게 평가한 데에는 『혼간지론』이 신란親鸞의 가르침을 평민교로 파악하고 있고, 진종의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측면에서 교단의 귀족화를 논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카시와하라는 츠지의 『혼간지론』을 타락사관을 탈피하고 불교의 본래성에 입각한 분석이라고 평가했다.

 

사진 5. 아키히토(明仁) 왕세자의 탄생 기념 독서명현読書鳴弦 행사. 오른쪽 3번째가 츠지 젠노스케.

 

카시와하라의 이러한 평가는 카시와하라 자신의 신란 연구도 한몫했다. 그의 「신란의 사회관 구조」(1962)에서는 신란의 사회관을 순교법적純敎法的, 비탄적悲歎的, 비판적의 세 단계로 구분했다. 순교법적 사회관은 출세간적 관점에서 세속사회를 분리하고 불교의 탈속적 주체성을 견지한다. 비탄적 사회관이란 정토진종 교단 내외의 현실 문제를 인식한 내성적內省的 비탄을 의미한다. 비판적 사회관은 신란 만년(1260년 이후)에 나타난 것으로 비불교적 현실을 비판한다. 카시와하라의 근대불교사 연구가 종교의 세속사회로부터 자율성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내세운 점은 많은 연구자가 지적하고 있는 지점이다. 나아가 불교의 근대화를 보다 보편적인 ‘불교의 본래성’, 혹은 ‘자율성’ 확립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신란사상의 세속성과 출세관이 근세와 근대로 연결되는 종교적 자율성의 근간이 된다고 봤다.

 

사진 6. 『진종불교사연구1』(1995).

 

더해서 근대불교사학은 주관적 신앙성을 객관적 역사서술 속에 반영시켜 나가는 것으로 이는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평했다. 카시와하라는 이 두 가지를 츠지의 『혼간지론』 속에서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1960년에 잡지 《근세불교》가 창간되면서 민중사상사라는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었고, 근세 진종사 연구는 역사학 전반의 동향과 공명하면서 기반을 다져나갔다. 이에 반해 카시와하라는 학승·교학 연구가 주를 이루면서 불교사학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그 결과 불교역사학 전반에 걸쳐 카시와하라라는 연구자의 인상이 주류를 벗어난, 다소 느슨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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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령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수. 일본 교토 불교대학에서 일본미술사를 전공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인천대와 동국대 등에 출강했다. 현재 아시아 종교문화 교류에 관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ikemire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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