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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로 세상 읽기]
지천에 널려 있는 ‘청원 백가의 술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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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2018 년 10 월 [통권 제6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65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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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화상에게 어느 때 청세라는 스님이 질문을 핑계로 “제가 외롭고 가난하오니 부디 스님께서 저를 구해주소서.” 하였다. 조산 화상이 “세사리야!” 하고 부르니 청세가 “네”! 하고 대답했다. 이에 조산 화상이 말했다. “청원백가의 술을 석 잔이나 먹고도 아직 입술도 젖지 않았다고 하느냐.”(주1)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절박한 위기를 부른다. 2012년 파키스탄에서 교복 살 돈이 없어 분신자살한 10대 소년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당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지하셋방에서 세 모녀 동반 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방안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이 사건으로 국민여론이 들끓었고 이로 인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및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 발굴에 관한 법률’ 제정 등 3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명 ‘송파 세모녀법’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삶의 전부를 지배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돈이 없으면 모든 것이 불편하고 모든 것에서 소외된다. 돈의 있고 없음은 능력이 어느 정도냐 하는 가늠대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돈이 없으면 대우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본주의는 금력에 따라 새로운 계급과 신분을 우리 사회에 형성하고 있다. 과거 명문세가였다 하더라도 현재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사람대접 받기는커녕 무시당하기 일쑤다.

 

청세 스님의 도발적 질문

 

물론 이번 공안에 등장하는 청세 스님의 고빈孤貧은 ‘외롭고 빈한하다’는 물질적 해석과는 거리가 있다.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수행이력이 어렵고 낮다는 자기 겸손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깨달음으로 가는 큰 문을 열어 주십사 간청하는 것인데 조산 화상의 응답이 그야말로 멋지다. ‘청원 백가의 술을 서 되나 먹고도 아직 입술도 젖지 않았다’고 응석을 부리느냐는 말로 상대방의 기분을 살리면서도 청세에게 큰 일깨움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청원은 중국 땅의 지명인데 이 지역은 술로 유명했다. 백가는 명품 술을 만드는 양조장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술을 먹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청세의 욕심, 즉 도력을 시험하는 법거량으로도 짐작된다.

 


고구려 유민 고사계의 아들 고선지 장군이 부도호로 한 때 머물렀던 안서도호부 유적지.

 

자본주의를 적용하는 우리 사회가 비록 금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더라도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것은 있다. 세인의 존경심마저 돈으로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나와 내 가정의 행복을 돈이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송곳 꽂을 땅 하나 없는 가난한 가장일지언정 마음이 넉넉하고 풍요롭다면 존경의 대상이 될 것이요, 수많은 부동산과 굴지의 회사 및 사원들을 둔 부자일지언정 마음이 인색하고 옹졸하다면 사람의 마음을 사기란 쉽지 않다.

 

부처님은 더 많은 재산을 갖고 싶어 하는 한 장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제 마땅히 넉넉함을 알라.” 이 말씀은 부처님을 만나기 이전의 장자는 여전히 욕망이 깊은 사람이다.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만족할 줄 모른다. 하지만 부처님을 만나고 난 이후의 장자는 비로소 넉넉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깊고 넓은 무상의 법문을 접하였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난 자체로 행복의 문에 들어섰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난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색하고 옹졸한 마음의 가난이 염치없는 것이다. 스스로 내가 넉넉하다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보물창고가 내 몸에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니세프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가 매년 전하는 보고서에 따르면 여전히 지구촌에서 아이들은 기아로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 전인구의 30%가 굶주림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상황이다. 만성적인 에너지 위기로 인해 곡물생산량이 최저 생계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가도 북한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들을 굶주림과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수 천만 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수억 명이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을 그저 숙명처럼 여겨야만 하는 것인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회의에 세계 156개국 국가 정상과 정부 수뇌가 모였던 적이 있다. 이 회의에서 ‘밀레니엄 목표’가 만들어지고 세계에 선포됐다. ‘밀레니엄 목표’란 21세기 새로이 시작되는 새천년 미래시대를 맞아 기아와의 전쟁을 오존층 보호보다 더 우선시하는 제일의 목표로 설정하여 굶주려 죽는 사람을 절반 이상 줄이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 목표는 달성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현재의 세계경제질서로 따지고 봤을 때 이런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보물창고는 개방해 나눌 때 의미있어

 

사람들은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가난은 항상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을 방해한다. 가장 큰 장애물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선 가난이야말로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하는 최하층 신분계급의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물적 투자와 지원이 아니다. 세계 정상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은 이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들은 이런 과정에서 동양의 한 종교에 주목했다. 바로 불교다. 불교에 주목한 그들이 내린 최종 결론은 이런 것이다.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가난하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자기 자신의 의식변화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았다. ‘의식변화가 희망’이라는 사실은 이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교는 소유관념의 탈피를 강조한다.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집착이 생기고 집착은 곧 번뇌이자 고통을 수반한다. 받아서 채워지는 것보다 주어서 비우는 마음을 가질 것을 가르친다. 일본의 마스노 순묘 스님은 『비우는 연습』이란 저서에서 “진짜 정리해야 할 건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다”고 말한다. 그는 허세와 욕심, 집착으로 뒤엉킨 마음을 정리하게 되면 가장 중요한 일에 몰입하게 되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본래의 마음자리를 불교에선 ‘보물창고’라 부른다. 본래의 ‘마음자리’는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 순수한 모습이다. 예로부터 텅 비고 밝아서, 부족함이 없으니 다른 무엇을 찾고 구할 것이 없다. 그래서 보물창고다. 이를 간파하는 이에겐 가난이란 없다. 무엇을 구할 욕심도 없고 집착도 없다. 오히려 텅 비어서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

 

돈은 밖에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보물창고를 잘 가꾸어 활짝 개방하면 청세 스님의 가난은 본래 만들어질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보물창고는 자신만을 위해 개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나누지 않는 보물창고는 폐허가 될 수 있다. 『잡아함경』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넓은 들판에 호수가 있어 그 물이 맑고 깨끗하여도 그것을 쓰는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말라 없어지나니, 아무리 귀한 재물일지라도 어리석은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자기를 위해서 써보지도 못하고 남을 위해 베풀지도 못하면서 모으고 지키느라 걱정만 하다가 임종과 함께 모두 잃고 마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이 재물을 얻으면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 쓸 줄도 알고 베풀 줄도 알아 그 목숨을 마친 뒤에는 천상에 태어나리라.”

 

내 의식의 변화를 다른 이와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가난과 부의 행복이 다르지 않다. 인류의 행복과 미래는 그러므로 물질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순수하여 텅 비고 밝은 마음자리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귀한 보물창고는 없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태어났지만 이미 우리는 넉넉하다. 따라서 넓은 들판의 호수처럼 다른 이에게 크게 선심 쓰며 살 일이다. 청원 백가의 술잔이 지천에 널려 있음을 간파하자.

 

주)
(주1) “曹山和尙因僧問云 淸稅孤貧 乞師賑濟 山云 稅闍梨 稅應諾 山曰 靑原白家酒 三盞喫了 猶道未沾脣.” (『무문관』 제10칙 淸稅孤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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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선시 읽는 법을 소개한 『마음의 밭에 달빛을 채우다』를 펴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오도송에 나타난 네 가지 특징」·「호국불교의 반성적 고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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