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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로 세상 읽기]
처음도 좋고 끝도 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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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2018 년 11 월 [통권 제6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57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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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주화상이 한 스님에게 “지금까지 어느 절에 있었는가?” 하고 묻자 그 스님은 ‘꽥’하고 일갈一喝 했다. 목주가 “이 노승이 자네에게 한 방 맞았군!” 하자, 그 스님은 또 다시 ‘꽥’ 했다. 목주가 “3할 4할하고 난 이후엔 어찌하려 하느냐?” 물으니 스님은 말을 하지 못했다. 이에 목주는 “이 멍청한 놈!”하고 후려쳤다.(주1)

 

처음 시작은 화려했으나 갈수록 시들시들해지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반면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구절처럼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에 창대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람들은 대부분 결과를 중시한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찬사를 보낸다. 물론 과정이 좋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시작이다. 화려하거나 어설픈 시작으론 목적하는 성과를 이루기 어렵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끝을 처음과 같이 신중하게 한다면 실패하는 일은 없다愼終如始則無敗事.”고 했다. 그만큼 시작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목주화상(睦州和尙 780〜877)은 황벽희운黃壁希運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과는 동문이다. 세상의 명리를 싫어하여 평생 은자隱者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효심이 남달라 짚신을 삼아 팔아 어머니를 봉양해 ‘진포혜陳蒲鞋’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무식을 드러낸 ‘할’

 

어느 때 목주화상을 찾아 온 한 스님이 처음부터 의기양양하게 법거량을 시도한다. 목주화상의 질문에 ‘꽥’ 할을 토해내는 기상이 갸륵하다. 목주화상이 ‘한 방 맞았다’고 실토하자 때를 놓치지 않고 또 다시 할을 가한다. 여기에서 잘못됐다. ‘할’이 선기禪機를 보여주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법력이 높은 스님들은 ‘할’을 통해서 상대방의 처음과 끝을 간파한다. 처음과 끝이 일관하면 한 번만으로도 결론이 나지만 일관성은 차치하고 깊음마저 없으면 그 ‘할’은 사구死句가 되어 도리어 상처를 입는다. 목주화상을 찾은 스님은 법거량을 하는 데 첫 기백이 좋았으나 ‘할’을 쓰는 방법을 몰랐다. 목주화상이 ‘세 번 네 번 할을 쓴 이후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따지자 입을 꾹 다물었다. 또 다른 선지禪旨가 있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목주화상은 ‘약허두한掠虛頭漢’이라며 한 대 후려 갈겼다. ‘약掠’은 ‘노략질 할 약’이다. 선사들의 대중 제접 방법 중 하나인 ‘할’을 훔쳐다 쓸 줄만 알았지 그게 어떤 때 쓰고 어디에 필요한 처방인지는 까막눈에 불과했다. 기백 좋게 시작한 법거량이 얼마 가지 않아 무식을 드러내고 단지 흉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만 꼴이 되었다.

 

우리가 어떠한 목표를 이루려면 철저한 준비와 단련이 필요하다. 완벽한 준비 단계를 거치지 않고 무엇을 성취하기란 쉽지 않다. 준비는 계획[전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비록 초가삼간일지언정 완성체를 이루려면 계획과 설계가 짜여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설정한 목표를 이루려면 철저한 준비와 세밀한 계획에 의해 진행돼야 한다. 준비도 계획도 없이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준비와 계획이 완벽한 경우 착수단계에서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중국 감숙성 난주 부근에 있는 병령사 석굴 제169굴 전경

 

 

시작은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목주화상에게 달려든 스님처럼 기백만 앞세워선 망신당하기 일쑤다. 처음 시작이 신중해야 끝에 가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세계적인 마케팅 전문가 세스 고딘Seth Godin(주2)은 2011년 말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그의 저서 『시작하는 습관』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는 아무리 훌륭한 계획이 세워져 있다 하더라도 이를 실행할 ‘시작’이 없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핵심적인 사항은 ‘하자’라는 것이고, 일이 착수돼야 비로소 사업의 시작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세스 고딘은 그래서 “시작하고 또 시작하라”고 권고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기존에 하고 있는 일에 변화를 주기 위해선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시작해 보는 것뿐이라는 게 세스 고딘의 지론이다. 

 

시작은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 중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다. 그러나 시작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배우게 되고 이로 인해 실패 확률을 줄여 나갈 수 있다. 변화와 혁신은 곧 과정의 중요성이다. 일의 중간은 꾸준한 점검과 성찰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부족하고 잘못된 부분을 파악하여 이를 시정해 나갈 수 있는 변화와 혁신을 기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일을 도모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오로지 성과에만 집착해 일시적인 처방에 의존하거나 권모술수로 위기를 모면하는데 치중한다면 그 결과 역시 오래 가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동기와 과정을 무시하고 성과만 강조하는 사회는 건강한 구조를 가질 수 없다. 도덕과 윤리는 인간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요소다. 이를 간과한 성과주의는 약탈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약허두한’이라도 도덕적 지탄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남들이 차근차근 쌓아올린 공을 한 번에 채가려는 못된 심보의 사람들이 바로 ‘약허두한’이다. 이들은 상대가 받게 될 물적 정신적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의 웃음만을 챙기고 즐길 뿐 다른 이를 향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다. 지독한 이기주의의 행태다. 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서 ‘대박’을 꿈꾸는 이들도 있다. 무사안일로 나날을 지내며 요행을 바라는 이들은 도박꾼들과 진배없다. 설령 이들이 일확천금을 손에 거머쥐었다 해도 박수를 보내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내 자식이 배울까 눈을 가리게 된다. 

 

시작을 두려워 말아야

 

우리가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처음과 중간과 끝을 좋게 해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력과 성과를 검증받지 못한 어느 누가 단지 윗사람과의 친분 또는 로비를 통해 승진을 거듭한다면 오히려 직장 내 조직에 폐해가 될 뿐이다. 그릇된 친분관계를 이용하거나 아첨과 아부로 직장에서 승진을 거듭한 들 그는 인간관계에서는 외톨이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반대로 늘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은 언제든 그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맞게 될 것이고 성과를 통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존재로 우뚝 설 것이다. 

 

이러한 존재가 되려면 시작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여러 번의 시작을 통해 시행착오도 경험하게 되고 실패도 경험해야만 성공률이 높아진다. 우리나라 속담에 ‘베 한 자를 짜나, 열 필을 짜나 베틀은 제대로 차려야 한다’ 고 했다. 베틀은 시작과 중간과 끝을 잇는 절대 필요한 수단이다. 입으로만 차린 진수성찬으론 주린 배를 채울 수 없다. 언제나 어디에서든 일을 시작하고 훌륭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실력자가 되려면 늘 준비돼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실력으로만 인정받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적으로 존경받기 위해서는 남다른 인품과 도덕성을 겸비해야 한다. 자신부터 잘 다스릴 줄 아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 실력까지 인정받을 때 진정으로 주위의 박수를 받게 된다. 이런 사람은 시작과 중간과 끝이 일정하다. 초지일관이란 처음 시작한 뜻을 마지막까지 지킬 때 쓰는 말이다. 중간 중간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초심을 지키자’는 다짐도 처음 뜻이 어긋나면 마지막 또한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동기와 결과를 모두 존중하는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주)

(주1)“擧 睦州問僧, 近離甚處. 僧便喝…. 州云, 老僧被汝一喝…. 僧又喝…. 州云, 三喝…四喝…後, 作麽生. 僧無語. 州便打云, 這掠虛頭漢.” 『벽암록』 제10칙. 

(주2)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전략가로 꼽힌다.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링크되는 비즈니스 블로그 중 하나로 인기가 높다. 『마흔이 되기 전에』를 포함해 18권의 베스트셀러를 저술했으며 3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읽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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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선시 읽는 법을 소개한 『마음의 밭에 달빛을 채우다』를 펴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오도송에 나타난 네 가지 특징」·「호국불교의 반성적 고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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