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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림고경총서로 만나는 스님 이야기]
선종 제6호 혜능(惠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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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  2018 년 5 월 [통권 제6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72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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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법명은 혜능(慧能)으로, 신주(新州) 사람이며, 속성은 노씨(盧氏)다. 집안이 가난하여 땔나무를 팔아 살았는데 하루는 나뭇짐을 지고 저자에 갔다가 누군가 『금강경』독송하는 소리를 들었다.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한다[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는 구절을 듣고는 놀라운 마음으로 그 사람에게 물었다.

 

“그것이 무슨 법이며 누구에게 얻었습니까?”

“이는 금강경이며 황매산(黃梅山) 홍인(弘忍, 602~675) 스님에게서 얻은 것이오.”
그리하여 스님은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황매산 오조 스님을 찾아뵙자 오조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서 왔느냐?”
“영남에서 왔습니다.”
“무엇 하러 왔느냐?”
“오로지 부처되기를 원하옵니다.”

 

“영남 사람들에게는 불성이 없다 하는데, 네가 부처가 되겠다고?”
“사람에게는 남과 북이 있지만 불성이야 그렇겠습니까?”
오조 스님은 스님을 남다르다고 생각하여 “방앗간에 있으라” 하니 스님은 절하고 물러나 연자방아를 등에 지고 쌀을 찧었다.
뒤에 누군가 강북(江北) 옥천사(玉泉寺)의 신수(神秀, 605~706) 스님의 게송을 들먹이는 것을 들었다.

 

몸은 보리수 같고
마음은 명경대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 먼지 끼지 않게 하리라.
身似菩提樹(신사보리수)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
時時勤拂拭(시시근불식) 莫使惹塵埃(막사야진애)

 

스님은 곧 다른 사람에게 그 게송 곁에 자기의 게송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 또한 받침대 없네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
어느 곳에 티끌 먼지 끼겠는가.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이 일로 오조 스님은 의발을 전하였다.
스님은 그 길로 사람의 눈을 피하여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는데, 명(明, 도명) 스님이 뒤따라오자 바위 위에 의발을 올려놓고서 말하였다.

 

“이 옷이 증거[信表(신표)]인데 힘으로 다툰다고 되겠는가?”

“나는 법을 구하러 따라왔지 옷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선도 생각지 않고 악도 생각지 않는 바로 그때, 무엇이 부모가 낳아 주기 전 명 스님의 본래 모습인가?”
이 말에 명 스님은 크게 깨쳤다.

 

스님은 의봉(儀鳳) 원년(元年, 677) 병자 정월 초파일에 남해 법성사(法性寺)에 갔는데, 인종(印宗, 677~712) 법사가 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거기서 마침 두 스님이 ‘바람이다’ ‘깃발이다’ 하며 논쟁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 하며 논쟁을 끝내지 않자 스님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 속인도 높으신 두 분의 논변에 끼어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말하였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 자기 마음이 움직일 뿐입니다.”

 

인종 법사는 이 말을 듣고 마침내 스님에게 가사를 걸쳐 주고 머리를 깎아 주었다.
그 후 소주(韶州) 자사 위거(韋據)가 스님을 대범사(大梵寺)에 맞이하여 법륜을 굴려 달라 청하고 무상심지계(無上心地戒)를 받았으며, 문인들은 스님의 법어를 기록하여 『단경(壇經)』이라 제목을 붙였다. <희수소담(希叟紹曇),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조계대감(曹溪大鑑, 638~713) 스님이 출가하기 전에 신주(新州)의 땔감장수였다. 보잘것없이 수십 년을 지내다가 어느 날 아침에 나그네가 경전 외우는 소리를 듣고 그 본원(本願)을 세우고는 어머니를 버리고 고향을 떠나 멀리 황매산의 스님(오조홍인, 602~675)을 찾아갔다. 처음 뵙고 몇 마디 대화 사이에 기연이 투합하여 자취를 숨기고 8개월 동안 방아를 찧었다.

 

이윽고 신수(神秀, 605~706) 대사와 함께 게송을 바치고서야 비로소 칼끝을 드러냈더니, 황매산의 스님은 드디어 가사와 바리때를 그에게 전수하였다. 이때 여러 대중들이 쫓아가 다투어 빼앗으려 하였다. 몽산(夢山, 697~780)(주1)이 먼저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러서 의발을 들려 했으나 들지 못하고 비로소 힘으로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머리를 숙이고 약을 내려 주기를 빌었다.

 

대감께서 “착함도 생각하지 말고 악함도 생각하지 말라. 이런 때 상좌의 면목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곧바로 귀착점을 알았다.

 

시절인연이 아직 이르지 않아 대감 스님은 다시 사회(四會)(주2)의 사냥꾼 속에 오랫동안 은둔한 뒤에야 번우(番禺)(주3)로 나와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는 말을 토로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인종(印宗, 627~713) 법사는 스승으로 모시는 예의를 갖추고 머리를 깎아 주고 구족계단(具足戒壇)에 오르게 하였다. 그러자 즉시 큰 법요(法要)를 여시고 2천의 대중을 격발시켜 명성이 대궐에까지 알려졌다. 천자는 가까운 신하에게 명령하여 가사와 발우를 하사하였으나 스님은 끝내 받지 않았다. 용상(龍象) 대덕 수십 사람을 제도하였는데 모두가 대종사였으니, 어찌 그리도 위대하신가! <원오극근(圓悟克勤), 『원오심요(圓悟心要)』>

 

조계(曹溪, 638~713, 육조혜능) 스님께서 열반하시려는 차에 문인인 행도(行瑫, 671~759),(주4) 초속(超俗), 법해(法海) 스님 등이 물었다.

“스님의 법을 누구에게 전하시렵니까?”
“내 법을 받을 사람은 20년 후에 이곳에서 크게 법을 펼칠 자이다.”
“그가 누구입니까?”
“누구인가를 알고 싶거든 대유령(大庾領) 꼭대기에서 그물로 덮쳐라.”(주5)

 

규봉종밀(圭峯宗密, 780~841) 스님이 하택신회(荷澤神會, 684~758) 스님을 정통의 전수자로 내세우려고 이 말을 이렇게 풀이하였다.
“재[嶺(영)]란 높은 것을 말한다. 하택 스님의 성이 고씨(高氏)이므로, 은밀히 이를 나타낸 것이다.”(주6)
한편 남악회양(南嶽懷讓, 677~744) 스님을 깎아내리려고 방계(旁系) 출신이라고 매도하여 말하였다.

 

“회양은 조계 문하의 방계 출신으로서 한낱 평범한 문도일 뿐이니 이런 무리는 천 명이나 된다.”

아! 사슴을 뒤쫓는 자는 산 속에 있으면서도 산을 보지 못하고, 황금을 탐내어 덮친 자는 곁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옛말이 거짓이 아니다. 종밀 스님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하택 스님뿐이었다. 그러므로 다른 선사들에 대해서는 시비를 불문하고 으레 모두 헐뜯었다.

 

“대유령 꼭대기에서 그물로 덮쳐라” 하신 말은 대사께서 깨달으신 종지를 완전히 드러내 보이신 한마디인데도 이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고, 회양 스님은 사문 가운데 사문인데도 그를 한낱 평범한 문도라 하였다. 종밀 스님의 뜻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웃음이 나올 뿐이다.

<혜홍각범(慧洪覺範), 『임간록(林間錄)』>

 

 



주)
(주1) 몽산(夢山, 697~780) : 진(陳) 선제(宣帝)의 자손으로서 장군 또는 4품장군이라고 한다. 어려서 출가하여 5조 홍인(弘忍)에게 참학하고 있었다. 보리달마의 가사가 6조 혜능(慧能)에게 전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혜능을 쫓아갔다가 대유령(大庾嶺)에서 혜능의 설법에 깨달았다. 혜능과 헤어져 여산(廬山)에 머물다가 원주(袁州) 몽산(蒙山)에 머물렀다. 원래의 법호는 혜명(慧明)이었으나 혜능의 ‘혜(慧)’ 자를 피하여 도명(道明)이라고 개명하였다.
(주2) 광동성(廣東省) 사회시(四會市).
(주3) 광동성(廣東省) 광주시(廣州市) 번우구(番禺區).
(주4) 『임간록』이 ‘行瑫’라고 표시한 ‘행도’라는 인물은 혜능(慧能, 638~713)의 문인 법해(法海)가 지은 『육조대사연기외기(六祖大師緣記外記)』(T48-362b)에 따르면 혜능의 아버지 이름이다. 혜능의 문인인 ‘행도’는 『조계대사별전(曹溪大師別傳)』(X86-52c)에 ‘行滔’라고 표시하였다.
(주5) 『중화전심지선문사자승습도(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X63-31c).
(주6) 『중화전심지선문사자승습도(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X63-3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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