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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세계]
미술로 만나는 부처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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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18 년 7 월 [통권 제6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86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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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미술佛傳美術의 유행

 

고대 인도의 쿠샨제국에서 1세기에서 4세기 경에 번성한 북인도의 간다라 미술은 초기 불교미술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석가여래의 일대기를 표현한 불전미술의 성행이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부처님의 일대기 가운데 주요한 여덟 가지 이야기를 그린 팔상도의 근원이 간다라 불전미술이기 때문이다.

 

북방 유목민이었던 쿠샨인들은 북인도에 정착한 후 평등을 강조한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현재는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 산재한 수많은 불교 사원지가 이를 뒷받침한다. 간다라의 사원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불탑 중심의 탑원塔院과 스님들의 수행처인 승원僧院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원에는 부처님의 사리탑인 불탑을 크게 조성하고, 대탑 주위에는 감실龕室을 마련하여 불상을 봉안하였다. 이 같은 구조의 대표적인 곳이 페샤와르 근처에 있는 탁티 바히That-i-Bahi 사원지이다(사진 1).

 


사진1 . 파키스탄 간다라 탁티 바히 사원지 전경. 2005년 3월 필자 촬영. 

 

스님들의 수행처인 승원의 출입구 근처에는 불상과 불탑을 모신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예불 공간으로 삼았다. 지난 6월호에 소개된 라호르박물관의 고행상이 발견된 시크리Sikri 사원지에서는, 스님들의 수행 공간인 승원에서 열세 가지의 에피소드가 표현된 불탑이 발견되었다. 이 탑은 지름 2미터의 작은 탑으로 라호르박물관 중앙 홀에 전시되어 있다(사진 2). 둥근 탑신 아래의 기단에는 기둥으로 공간을 나누어 ‘연등불수기燃燈佛授記’ 장면부터 13장면의 불전미술이 표현되었다.

 


사진2 . 시크리 불탑, 2~3세기,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 

 

항마촉지인과 열반상의 출현

 

간다라 미술의 특징은 불상의 탄생과 함께 불교미술의 도상 성립과 대승불교미술의 등장이다. 그 가운데 불전 미술에서는 수인(手印, mudrā)과 열반 도상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불상은 석가여래·아미타여래·비로자나여래·약사여래·미륵여래 등인데, 이들 불상의 존명은 손 모습 즉 수인으로 구분된다.

 

미국 프리어새클러Freer Sackler 박물관에는 마왕과 부처님의 대결을 극적으로 연출한 불전도가 있다(사진 3). 중앙의 석가여래는 보리수 아래 앉아 왼손으로는 가사 자락을 잡고 오른손은 아래로 향하고 있는데, 이 수인이 바로 처음 등장하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초기 모습이다. 불전 문학에 서술된 석가여래와 마왕의 마지막 결전은 과거에 쌓은 공덕의 많고 적음으로 압축되고 있다. 석가여래께서는 마왕에게 과거에 쌓은 작은 공덕으로 욕계의 제6천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천주天主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사진3 . 항마성도, 2~3세기, 미국 프리어새클러박물관.  

 

그러자 마왕은 석가여래에게 반문하였다. “그대의 과거 세상의 공덕은 누가 증명할 것인가?” 이때 석가여래는 오른손을 뻗어 지신地神에게 말씀하셨다. “지신이여, 나의 공덕을 증명하소서.” 지신은 “제가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왕은 석가여래와의 설전에서 자신이 패배한 것을 인정하였고, 이 장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간다라의 항마성도降魔成道 장면이다.

 

간다라 불전미술에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도상은 오른쪽 옆구리를 침상에 대고 옆으로 누운 석가여래를 죽은 자로서 표현한 열반 장면이다(사진4). 남인도에서는 열반에 든 석가여래를 4세기까지 불탑으로만 표현하였고, 간다라에서처럼 옆으로 누운 부처님은 형상화하지 않았다. 이 횡와橫臥의 열반 도상은 쿠샨인들에 의해 처음 창안되었다. 열반상涅槃像은 완전한 깨달음에 든 부처님이라는 의미이며, 인도의 경우 열반지인 쿠시나가라 열반당의 열반상과 아잔타 26굴의 열반상이 가장 유명하다. 누운 모습이기 때문에 흔히 와불臥佛이라고 부르는데 불교도라면 반드시 열반상으로 불러야 한다.

 


사진4 . 열반, 2~3세기, 미국 프리어새클러박물관 

 

간다라 미술과 반가사유상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과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사진 5 위 왼쪽]의 도상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반가사유상은 태자사유상일까, 미륵보살상일까. 반가사유상의 도상 해석에 관한 논쟁은 불교미술사에서 중요한 이슈이다.

 

반가사유상이 처음 등장한 것은 간다라 미술이며 쿠샨인들은 고민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반가사유 자세로 표현하였다. 대표적인 예는 첫 선정에 든 싯타르타 태자와 석가여래에게 패배한 원인을 찾는 마왕이 모습이다. 싯타르타 태자는 아버지를 따라 농경제에 참석했다가 약육강식의 세계를 목격하였다. 즉 농사철이 되어 농부가 쟁기질을 하자 땅 속에서 나온 벌레를 작은 새가 잡아먹었고, 벌레를 먹은 새를 매가 잡아먹는 광경을 보고 잠부 나무 아래에 앉아 첫 선정에 들었는데, 깊은 선정에 든 싯타르타 태자가 바로 반가사유 자세를 취하고 있다(사진 5 아래쪽).

 

관세음보살은 간다라에서 가끔 연꽃을 든 반가사유상으로 조성되었다[그림 5 위 오른쪽]. 간다라의 관세음보살상은 지물持物로 연꽃을 들며, 미륵보살상은 수행자를 상징하는 수병水甁을 손에 든다. 보관에 스승인 아미타불을 작게 표현한 화불化佛이 있고, 손에 정병淨甁을 든 관세음보살상은 7세기 이후에 등장한다.

 

간다라의 반가사유상 도상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초기에는 태자사유상으로 조성되다가 차츰 미륵보살상으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에 반가사유상이 유행했으며,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은 스스로를 ‘용화향도龍華香徒’ 즉 미륵사상을 따르는 무리라고 불렀기 때문에 반가사유상은 미륵보살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진5. 반가사유상 도상,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 → 간다라의 관음보살상(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박물관) → 간다라의 태자사유상(일본 개인 소장).

 

삼존상의 등장

 

간다라의 최초 불삼존상은 범천이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는 ‘범천권청梵天勸請’을 표현한 것으로 범천과 제석천이 석가여래의 좌우 협시로 배치되었다. 그러나 3~4세기에는 대승불교를 상징하는 미륵보살과 관음보살이 석가여래의 좌우 협시로 등장한다(사진 6). 

 

  

사진6. 관음보살(향좌)·석가여래(중앙)·미륵보살(향우) 삼존상, 간다라(3~4세기),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수행자를 상징하는 범천(梵天, Brahma)의 도상은 미륵보살로 계승되었고, 왕과 무사 등을 상징하는 제석천(帝釋天, Indra)의 모습은 관음보살로 이어졌다. 따라서 미륵보살은 대승불교의 ‘상구보리上求菩提’를 상징하였고, 관음보살은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의미한다. 간다라의 미륵보살은 바라문 수행자처럼 긴 머리칼을 리본처럼 묶고 손에는 수행자가 꼭 지녀야 할 수병을 들고 있다. 이와 달리 관세음보살은 화려한 터번을 쓰고 대승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을 손에 들고 있다.

 

석가여래의 좌우로 미륵보살과 관음보살이 배치되자 범천과 제석천은 그 자리를 두 보살에게 내어주고 뒤로 물러났다. 이때가 되면 석가여래는 『법화경』의 영원한 부처님을 상징하게 되는데, 수인과 착의법 그리고 대좌에서 대승불교미술의 특징이 나타난다. 즉 두 손은 가슴 앞에 모아 비로자나여래의 지권인智拳印의 초기 형태인 설법인을 짓고, 착의법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을 취하며, 대좌는 대승불교를 상징하는 연화좌를 선택하였다.

 

설법하는 부처님

 

간다라 미술에서 최근 들어 가장 논쟁이 되고 있는 도상은 큰 광명을 발하고 있는 불설법도이다(사진 7). 페샤와르 인근의 모하메드 나리Mohhamed Nari에서 출토된 불설법도는 높이 120cm, 폭 98cm, 두께 26cm의 대형의 조각상으로, 라호르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고행상과 함께 가장 유명하다. 

 


사진 7. 대승설법도, 모하메드 나리(Mohhamed Nari) 출토, 간다라(3~4세기),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  

 

이 장면을 프랑스의 불교학자 알프레드 푸쉐Alfred Foucher는 사위성에서 기적을 일으켜 이교도를 항복시키는 석가여래를 표현한 사위성신변舍衛城神變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물 속에서 솟아오른 연꽃 위에 앉아 설법하는 도상에 주목하여 일찍부터 일본에서는 아미타정토도의 시원 양식으로 보았으며, 미국의 미술사학자 헌팅턴J. C. Huntington은 아미타정토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미야지 아키라宮治 昭는 대승설법도로 해석하고 있다. 모하메드 나리 출토의 조각상은 도상에 관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대승설법도의 기원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미술품이다.  

 

간다라 미술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주로 불상의 기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앞으로는 불교미술의 도상을 파악하는데도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불전 미술의 유행, 불전미술 속의 다양한 수인, 열반도상의 확립, 반가사유의 자세, 대승보살상의 등장, 대승설법도의 성립 등 불교 미술의 기본 도상이 간다라 미술에서 기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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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간다라 불전도상佛傳圖像의 연 구」로 문학박사학위 취득,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불교미술전공 초빙교수, 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 저서에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 기록 연구』, 공동 저서로 『치유하는 붓다』·『간다라에서 만난 부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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