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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실상에 들어가는 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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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8 년 8 월 [통권 제6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31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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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운 햇살을 받고 노랗게 살구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노란 살구가 창문을 두드린다. 보이는 대상이 곧 실재라고 믿는 우리 눈에는 먹음직스럽게 익은 살구만 보인다. 하지만 살구가 제 혼자 그렇게 영근 것은 아니다. 시인 장석주는 야무지게 익어가는 한 알의 대추를 보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현상과 본질을 너머

 

시인은 개체 존재의 실체 없음과 존재의 관계성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개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해 존재한다. 한 알의 살구는 햇살, 토양, 바람, 구름, 빗물 같이 보이지 않는 관계의 사슬로 연결되어 존재한다. 살구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라면 살구가 있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관계의 사슬은 본질에 해당한다. 화엄은 그 관계의 실상을 밝히는 교설이다. 화엄에서는 현상을 사事 또는 용用이라고 하고, 보이지 않는 관계성을 이理 또는 체體라고 한다. 우리가 보는 개별적 사물은 현상이고 본질은 관계성이라는 것이다.

 

지난 호에 살펴본 이사원융의理事圓融義는 이와 같은 현상[用]과 본질[體]이 둘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이번에 살펴볼 ‘사문십의四門十義’ 역시 그와 맥락을 같이하는 교설이다. 이사원융의가 본질과 현상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했다면 사문십의는 네 가지 범주로 설명하는 것이 차이다.

 

성철 스님은 법장의 『화엄경탐현기』와 청량의 『대방광불화엄경소』를 통해 사문의 의미를 설명한다. 화엄종의 핵심사상을 화엄종취라고 하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는 네 개의 문이 사문이다. 사문은 현상과 본질, 주체와 객체, 본체와 작용이 갖는 연기적 관계, 존재의 중도적 특성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살구라는 개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 드러난 작용이자 현상이다. 살구를 영글게 한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성이야말로 근원적 이법이며, 개체를 넘어서 있는 본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화엄종취로 들어가는 네 가지 문은 한 알의 살구라는 개체와 그 살구를 있게 만든 우주적 이법에 대한 설명이다.

 

네 가지 문 가운데 첫째 문은 본질[體]이 곧 현상[用]이라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모든 존재의 본질을 궁구해 들어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법을 만나는데, 그것은 개체를 초월해 있음으로 공空이다. 연기라는 본질은 보이지 않는 공空이지만 무수한 존재들과의 관계와 인과를 통해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법장은 『탐현기』에서 “법계를 포섭하여 인과를 이룬다[攝法界以成因果]”고 했다. 화엄종에서 체・용을 구분하여 말할 때 법계法界는 본체를, 인과因果는 작용을 의미한다. ‘법계를 포섭해서 인과를 이룬다’는 것은 본체를 포괄해 보면 그것이 곧 작용이라는 의미다. 공이라는 본질은 보이지 않지만 공은 삼라만상이라는 갖가지 현상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체 그대로가 곧 작용이고, 법계 그대로가 인과라는 것을 뜻한다. 관계성으로 직조되어 있는 법계를 포괄해 보면 법계는 인과라는 현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한 알의 살구 역시 연기와 공이라는 법계의 작용이 인과적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청량은 본질과 현상의 이와 같은 관계에 대해 즉체지용卽體之用이라고 했다. 모든 현상은 연기적 관계라는 본질의 반영을 통해 인과라는 작용으로 드러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보편적 관계성과 개체의 공이라는 이치는 아무 것도 없는 허무적멸이 아니라 오히려 무수한 색이라는 현상으로 드러나 있다. 한 알의 살구, 작은 대추 한 알은 모두 인과의 작용이고, 인연 따라 변해가는 유위법有爲法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모든 개체들은 허상이지만 동시에 연기와 공이라는 본질[體]의 드러남이기도 하다.

 

본체와 작용의 상즉성과 불이不二

 

연기와 공이라는 존재의 본질은 무수히 펼쳐져 있는 사물에 의탁해 자신을 드러내는데 이것이 이미 살펴본 탁사현법託事顯法이다. 법장도 “인과가 이실법계理實法界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들이 경험하는 현상과 개체들은 인연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순간적이고 실체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모든 존재들은 법계라는 본질의 세계를 벗어나 있지 않다. 그래서 그 모든 현상적인 존재들이 이법으로 실재하는 법계라는 뜻이다.

 

개체는 인과로 존재하는 현상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관계적 맥락 속으로 사라지거나, 아무 것도 없는 허무적멸은 아니다. 공이라는 이법은 하나의 개체라는 현상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종공입가從空入假라고 한다. ‘공이라는 본질을 따라가면 거짓 현상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공이라는 실상을 따라가면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져 있는 유위법을 만나고, 인연 따라 명멸하는 인연법들을 만난다. 공은 본체이고, 한 알의 살구는 현상적 작용이므로 이를 달리 종체귀용從體歸用이라고 한다. 체라는 본질을 쫓아가면 작용이나 현상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현상이 곧 본질이라는 것이다. 한 알의 살구를 유심히 보면 그것은 인연 따라 오고, 인연 따라 사라지는 유위법이다. 살구는 스스로 살구가 아니며 살구 아닌 것들과의 연기적 관계 속에서 비로소 살구이다. 따라서 살구는 연기적 관계 속에 존재하고, 개별적 개체는 공하다. 연기와 공성이라는 우주적 이법이 한 알의 살구를 영글게 한 것이다. 따라서 살구의 본질을 꿰뚫어보면 연기와 공이라는 이법이 드러난다. 이를 즉용지체卽用之體라고 한다. 살구라는 현상과 인과의 작용이 곧 본질이라는 것이다.

 

현수는 『탐현기』에서 “인과를 합하여 법계와 동일하다[會因果以同法界].”고 했다. 한 알의 살구는 인과에 의해 발생하고 소멸하는 물거품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무수한 인과가 중층적으로 서로 교차하고 영향을 주고받아 한 알의 살구로 영글었다. 그래서 무수한 인과가 모이면[會因果] 법계라는 본체와 같아진다. 이처럼 인과를 합하면 법계가 됨으로 눈앞에 펼쳐진 현상이 그대로 법계가 된다.

 

색과 공의 이치로 말하면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한 알의 살구는 현상이며, 인연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색色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색은 개별적 실체는 없지만 연기와 공이라는 이법의 산물이다. 그래서 색을 알면 색이라는 현상이 거짓임을 알지만 그와 같은 앎은 공이라는 본질에 대한 이해로 귀결된다.

 

천태학의 개념으로 표현하면 종가입공從假入空이 된다. 눈앞에 있는 한 알의 살구는 거짓 현상이지만 거짓 현상을 따라가면 공이라는 이법의 세계, 진제의 세계로 연결된다. 가假라는 현상은 공이라는 진제의 세계로 인도하는 문이 되는 셈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종용귀체從用歸體가 된다. 작용이라는 현상을 쫓아가면 본체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여기서 무수한 존재들은 거짓이 아니라 실상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차별과 변견을 녹이는 용광로

 

셋째는 본질[體]과 작용[用]이 같이 드러남이다. 공空이라는 본질을 따라가면 살구라는 현상을 만나게 된다. 또 살구라는 현상을 따라가면 공이라는 본질을 만날 수 있다. 따라서 『탐현기』에서는 “법계와 인과가 분명히 나타나 보인다[法界因果, 分明顯示].”고 했다. 법계라는 실체와 인과라는 현상이 동시에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연기와 공은 사물의 형태로 드러나고, 사물은 연기와 공이라는 본질을 내포한다. 이렇게 보면 공이라는 본체도 있고, 가상이라는 현상도 있다. 이를 체용쌍현體用雙顯이라고 한다.

 

본질로서 본체도 드러나고, 현상으로서 작용도 드러나기 때문에 쌍명雙明이다. 본체와 현상에는 색과 공이 동시에 있음으로 색공쌍조色空雙照가 되고, 공가쌍조空假雙照가 된다. 공이라는 본질과 가상이라는 현상이 모두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이라는 본체와 색이라는 현상이 모두 긍정되는 완전긍정에 이르게 된다.

 

넷째는 본질과 작용이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살구는 연기라는 관계의 산물이므로 개체로서 살구는 공하고 실체가 없다. 하지만 눈앞에 드러난 한 알의 살구는 본질을 내포하고 있음으로 아무 것도 없다는 명제도 부정된다. 『탐현기』에서는 이를 쌍융구리雙融俱離라고 했다. “법계와 인과가 쌍으로 원융하고 함께 떨어진다.”는 뜻이다. 법계라는 본질과 현상이라는 인과가 완전하게 녹아서 융합[雙融]하기 때문에 법계라는 실상과 인과라는 현상이 모두 사라진다[俱離]. 존재의 본성이라는 성性과 현상이라는 상相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뒤섞여 있어 본성이 곧 현상이고, 현상이 곧 본성이 된다. 법장은 이를 성상혼융性相混融이라고 했다. 본질과 현상이 완전하게 융합하여 걸림 없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청량 역시 체용용융體用鎔融이라고 풀이했다. 본체와 작용이 완전히 녹아서 하나로 융합된다는 것이다. 색공의 관점에서 표현하자면 색공쌍차色空雙遮가 되고, 공가쌍차空假雙遮가 된다. 색이라는 현상과 공이라는 본질이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분별은 모두 사라진다. 공이라는 본질과 가상으로서의 현상도 모두 녹아서 하나가 되기 때문에 색이니 공이니 하는 분별 자체가 설 수 없다.

 

결국 사문의 핵심은 현상과 본질, 체와 용이라는 차별은 중도라는 용광로 속에서 모두 녹아 없어진다. 용광로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는 모든 것이 녹아서 한 덩어리가 되고 만다. 그와 같이 차별과 개별상을 녹여 하나의 전체성을 실현하는 것이 화엄의 핵심이고, 그것이 곧 중도의 원리이다. 이와 같은 중도의 정신을 받아들이면 나와 너, 진보와 보수, 남과 여라는 분별과 대립을 녹이는 용광로가 된다. 그런 용광로에서는 모든 분별과 경계가 해체되어 절대평등의 세계, 이분법적 대립과 갈등이 사라진 동체대비의 세계가 활짝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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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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