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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세계]
인도인의 미감과 마투라 미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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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18 년 9 월 [통권 제6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84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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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투라의 초기 불상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작품은 현재 마투라박물관에 소장된 불삼존상이다(사진 1). 건장한 체구를 하고 미소를 머금고 있는 부처님은 가부좌를 틀고 세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대좌 위에 앉아있다. 대좌에는 브라흐미Brahmi 문자로 “붓다락시타Budd haraksita의 어머니 아모가다시Amoghādāsi는 부모와 함께 자신의 정사精舍에 보디사트바Bodhisa ttva의 상을 세운다. 모든 중생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사진1. 불삼존상, 쿠샨시대(1세기 경), 720cm, 마투라박물관 

 

여기서 ‘보디사트바’는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부처님을 상징하는 용어로서의 ‘보살’을 의미한다. 왜 ‘불상’을 ‘보살상’이라고 표현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부처를 표현하지 않던 무불상 시대에서 불상시대로 전환되는 시기에 마투라의 초기 불상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설법하기 이전의 석가여래를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명문을 두고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마투라에서 1세기경에 나타난 석가여래의 모습은 이 조각상에 잘 담겨져 있다. 

 

‘보디사트바Boddhisattva’라고 표기된 마투라의 초기불상

 

헬레니즘의 영향이 짙었던 북인도의 간다라와 달리 마투라 지역은 인도의 전통성이 강했다. 인도 고유의 남신인 약샤Yaksh와 여신인 약시Yakshi는 생동감 넘치는 조각상으로 인도에서 불상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마투라 불상에는 이러한 전통적인 인도인의 미의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청년의 맑고 밝은 얼굴은 불상의 상호에 투영되었고, 생기 넘치는 인체의 표현에서도 젊은 기상이 넘쳐난다. 오른쪽 어깨를 노출시킨 채 왼쪽 어깨 위를 덮고 내려온 옷자락은 젖꼭지와 배꼽이 보일 정도로 얇고 투명하다. 

 

불상 뒤에는 테두리에 반원이 새겨진 두광頭光과 바깥 쪽에 세 그루의 보리수가 있으며, 보리수 사이에는 부처님께 공양 올리며 찬탄하는 두 명의 천신이 춤추듯 위로 솟구쳐 오르고 있다. 돈황석굴의 벽화 속 비천과 통일신라시대의 상원사동종과 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여성형의 비천과는 다른 남성형이다. 불상의 좌우에 손에 불자拂子를 든 두 남성이 서 있는 것은 간다라 불상의 좌우에 보살상이 등장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간다라 불상 닮은 마투라 불상 

 

마투라의 불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생기가 약해지고 양식화가 진행되며 차츰 간다라의 불상 양식을 수용하기에 이른다. 마투라 불상에서도 간다라처럼 서 있는 입상과 두 어깨를 덮는 통견식通肩式의 착의법이 등장하는데, 이같은 양식상의 변화는 ‘보디사트바Bodhisattva’에서 ‘붓다Buddha’ 또는 그에 상응하는 용어로 변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마투라 근처의 아히차트라Ahicchatrā에서 출토된 불삼존상(사진 2-1)은 2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전체적인 형식은 <사진 1>과 유사하다. 단지 <사진 1>에 비해 생동감이 줄어들었으며 좌우의 인물상은 불자拂子 대신에 금강저와 연꽃을 든 인물상이 배치되었다. 오른손에 금강저를 든 인물상은 바즈라파니[金剛手]이고 연꽃을 든 인물은 파드마파니[蓮華手]로 해석하기도 한다. 대좌의 상하에는 명문이 기록되어 있으며 양 끝에는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사자가 한 마리씩 자리잡고 있다. 마투라에서 불상의 대좌로 사자좌獅子座를 선호한 것은 바로 ‘석가족의 사자獅子’인 석가여래의 위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중앙의 나무를 중심으로 남녀 공양자가 표현된 것은 고대로부터 나무를 성수聖樹로 인식했던 인도인들의 신앙을 나타낸 것이다. 

 

앉아있는 좌상은 초기 마투라 불상의 특징이고, 서 있는 입상은 간다라 불상의 상징이었다. 쿠샨제국의 영향하에 있던 마투라에서는 간다라 불상의 특징인 입상과 통견이라는 표현법을 받아들이면서도, 인도인의 얼굴과 몸의 윤곽을 드러내는 얇은 옷의 표현법은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사진 2-2). 

 

3세기경이 되면 간다라와 마투라의 지역적 특징을 반영했던 머리카락은 모두 소라모양의 나발螺髮로 변하고, 한쪽 어깨를 드러낸 얇고 투명한 옷은 몸 전체를 두른 굵고 두꺼운 간다라 양식으로 변화된다(사진 2-3). 

 


사진 2 .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불삼존상(①), 불입상(②), 불좌상(③). 

 

제석굴에서 설법하는 석가여래

 

마투라에는 간다라 지역과 달리 석가여래의 생애를 표현한 불전미술佛傳美術이 성행하지 않았지만, 왕사성 근처의 굴 속에서 제석천에게 설법한 ‘제석굴 설법’이 표현된 작품은 몇 점 남아있다. 

 

어느 날 부처님은 마가다국의 암바산다Ambasaṇda 바라문 마을의 북쪽에 있는 웨디야카Vediyaka의 인다살라Indasāla 굴[帝釋窟] 속에 계셨다. 부처님께서 이 동굴에 머물 때 제석천(帝釋天, Indra)에게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몇 가지 전조가 나타났다. 이에 불안을 느낀 제석천은 부처님을 뵙고자 했으며, 이때 음악신 판차시카(Pancasikhā, 般遮翼)로 하여금 부처님을 방문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게 했다. 이 에피소드를 ‘제석굴 설법’ 또는 ‘인드라의 방문’이라고 한다. 

 

제석천의 명령을 받은 판차시카는 벨루와판두Veluvapaṇḑu라는 현악기를 연주하며 부처님과 교법, 승단과 쾌락을 주제로 하는 노래를 불렀다. 판차시카의 노래가 끝나자 부처님은 천신들의 방문을 허락한다는 뜻에서 그를 칭찬했다. 부처님으로부터 방문을 허락받은 인드라와 판차시카를 비롯한 다른 33천의 천신들이 제석굴 안으로 들어갔다. 제석굴은 그처럼 많은 군중을 수용할 만큼 큰 공간이 아니었지만, 제석천과 그 일행이 들어서자 동굴은 그들을 모두 수용 할 만큼 커졌고, 어둡던 내부도 천신들이 내뿜는 빛과 부처님의 광채로 환해졌다.

 

이곳을 방문한 당나라 현장 스님은 “부처님께서 제석천을 위해 설법한 곳에는 그 자취가 지금도 남아있다. 지금은 불상을 만들어 옛날 부처님의 성스럽던 위의威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 들어가서 절을 올리는 자는 누구라도 숙연해지고 삼가고 존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대당서역기』에 기록하고 있다. 

 

마투라박물관에 있는 <사진 3>은 길이가 125cm이고 폭이 23cm로 문門 출입구에 가로놓였던 부재로 추정된다. 중앙에는 동굴 속에 앉아 오른손을 들어 설법하는 석가여래가 앉아 있고, 향좌측에는 판차시카가 왼손에 악기를 들고 연주하고 있으며, 향우측에는 높은 관을 쓴 제석천이 두 손을 합장하고 설법을 청하고 있다(사진 3-3). 판차시카 뒤에는 합장하거나 손에 공양물을 든 여성들이 뒤따르고 있고(사진 3-2), 제석천 뒤에는 제석천이 타고 다녔다는 아이라바타Airavata라는 코끼리가 등장한다(사진 3-4). 양 옆에는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물고기 모습을 한 반인반어半人半魚형 인물상이 표현되어 있고, 그 옆에는 인류의 행복과 풍요를 상징하는 연꽃이 꽂힌 생명수가 담긴 항아리가 놓여 있다.

 


사진 3 . 제석굴 설법, 쿠샨시대(1세기 경), 23×125cm, 마투라박물관. 

 

탄생, 성도, 첫설법, 도리천 강하, 열반을 표현한 5상도五相圖

 

우리에게 익숙한 석가여래의 일대기는 여덟 가지 사건 위주로 표현한 팔상도八相圖이다. 법주사 팔상전 안의 팔상도는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兜率來儀相], 룸비니 동산에 내려와서 탄생하는 상[毘藍降生相], 네 문으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상[四門遊觀相], 성을 나가 출가하는 상[踰城出家相], 설산에서 수도하는 상[雪山修道相], 보리수 아래에서 마왕의 항복을 받는 상[樹下降魔相],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하는 상[鹿苑轉法相],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상[雙林涅槃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인도의 8대 성지는 탄생지 룸비니, 성도지 보드가야, 첫 설법지 바라나시[鹿野苑], 원숭이가 석가여래께 꿀을 바친 바이샬리[毘舍離], 술 취한 코끼를 항복시킨 라즈기르[王舍城], 도리천에서 어머니에게 설법하고 내려온 상카사[僧迦舍], 이교도를 항복시킨 쉬라바스티[舍衛城], 열반지 쿠시나가르 등이다(지도 1).

 


지도 1. 불교 8대성지. 

 

마투라박물관에 소장된 한 장의 돌에 다섯 장면을 표현한 오상도(사진 4)의 이야기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석가여래의 일생 가운데 네가지 큰 사건 즉 탄생·성도·첫설법·열반을 표현하고 있다. 성도와 첫설법 사이에 도리천에 계신 어머니에게 설법하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는 석가여래께서 좌우로 범천과 제석천을 거느리고,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보석으로 장식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인 ‘도리천 강하忉利天降下’를 나타내고 있다.

 


사진 4. 탄생·성도·도리천강하·첫설법·열반의 불전도, 쿠샨시대(2세기 경), 마투라박물관.  


 

화면 중앙에 도리천에 계신 어머니에게 설법하고 내려오는 부처님께서 좌우로 인도인들의 숭배를 받던 제석천과 범천을 대동한 것은, 천상과 지상을 마음대로 왕래한 석가여래의 신통력과 바라문교에 대한 불교의 우위성을 상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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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간다라 불전도상佛傳圖像의 연 구」로 문학박사학위 취득,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불교미술전공 초빙교수, 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 저서에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 기록 연구』, 공동 저서로 『치유하는 붓다』·『간다라에서 만난 부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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