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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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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7 년 10 월 [통권 제5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81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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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에 있는 벽송사는 미인송(美人松)과 도인송(道人松)으로 유명하다. 45도로 구부러진 소나무가 미인송이요 옆에 있는 그보다 작은 소나무는 도인송이다. 도인송을 향해서 휘어 있는 미인송은 조선 후기 이름난 스님이었던 환성지안(喚惺志安, 1664~1729)을 흠모했던 부용(芙蓉)낭자의 후신이란 전설이다. 그녀는 원래 환성의 품에 한번 안기려고 일껏 애썼다. 그러나 그의 일관되고 출중한 금욕에 감복해 욕정을 뉘우친 뒤 스승으로 삼아 함께 열심히 정진했다는 야사가 내려온다.

 

특정한 각도에서 보면 미인송이 마치 도인송을 행여 비라도 맞을까 보호해주는 모양새다. 뿌리는 단단히 박혀 있으나 도인송 쪽으로 한껏 기울어 있는 몸통은 관능적이다. 어쩔수 없는 인간의 오욕칠정 또는 연애가 가진 비루하고도 애틋한 역학관계로 읽힌다. 애써 구하는 자가 더 망가지는 법이다. 본디 더 사랑하는 자가 약자일 수밖에 없어서, 꼿꼿하고 무정한 도인송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큰스님이지만, 미인송은 부용(연꽃)이란 상징으로만 떠돈다. 착한 사람일수록, 자살하기 쉽다.

 


 

 

환성은 벽송사를 중창한 인물이다. 그가 벽송사로 오기 300년 전쯤에 벽송지엄(碧松智嚴)과 벽계정심(碧溪正心)이 예서 살았다. 벽송사의 창건주는 벽송지엄이고 도인송에는 환성지안 말고도 벽송과 관련된 또 다른 고사가 존재한다. 벽송지엄은 조선 초기 대대적인 불교탄압을 피해 지리산으로 숨어 들었다. 지리산에 도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벽송지엄이 벽계정심을 물어물어 찾아왔다. 어른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극진히 시봉했다. 하지만 스승은 아무리 봐도 평범했다. 야밤에 잠깐 좌선을 한다는 점 빼고는 허접한 장삼이사의 일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광주리를 만들어 시장에 팔면서 꼬박 3년 동안 노인네를 먹여 살리던 청년은 끝내 지쳤다. ‘내가 허송세월을 했구나.’ 움막을 박차고 나와 내내 씩씩거리면서 개울 위 징검다리를 건너던 순간이었다. “지엄아!” 스승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벽계는 두 팔을 번쩍 쳐들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지엄아! 법(法) 받아라아아아아!” 순식간에 부처가 되어버린 벽송은 도인송 밑에 좌선대를 설치했다. 아직도 있다.

 

활자로 박히거나 앞에서 호명되는 내 이름은 이해타산을 위해서만 사용된다. 말하게 하고 일하게 하고 숙이게 한다. 돈을 준만큼 힘을 빼앗아간다. 반면 누군가가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를 때, 그게 그렇게 참 좋다. 왠지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아서, 멀리 있어도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아서, 숨어 있는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제96칙 구봉의 긍정치 않음(九峰不肯, 구봉불긍)

 

구봉도건(九峰道虔)이 석상경저(石霜慶諸)의 시자로 살던 중 석상이 열반에 들었다. 이에 대중은 큰방의 수좌에게 청해서 차기 주지를 정하도록 했다. 이때 구봉은 “내가 물어보기까지 기다려라. 만약 먼저 간 스승의 뜻을 안다면 스님과 같이 시봉을 하리라.” 하고는 수좌에게 물었다.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쉬고 쉬라. 한 생각이 만 년을 간다.
식은 재와 마른 나무같이 하며, 한 가닥의 삼베를 희게 도련하라.’ 하셨는데, 말씀해 보십시오. 무슨 일을 밝히신 말씀입니까?”
이에 수좌가 말했다.
“한 빛깔의 일[一色邊事, 일색변사]을 밝혔느니라.”
구봉은 “그렇다면 아직 스승의 뜻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수좌가 불쾌한 듯 물었다.

“그대는 나를 긍정치 않는다지만 향을 싸가지고 와서 제자로서의 예를 드리려 한 것은 어찌하겠는가?”

이어 향을 사르면서 이르되, “내가 정녕 스승의 뜻을 알지 못했다면 향 연기가 솟을 때 앉은 채로 열반에 들지 못하리라.” 하였다.
말을 끝내자마자 앉은 채로 입적했다. 구봉은 끌끌 혀를 찼다.
“앉아서 죽고 서서 벗어나는 길이 없지는 않으나 스승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했군요.”

 

총림(叢林)은 규모도 제일 크고 스님도 제일 많은 절이다. 방장(方丈) 스님이 제일 높다. 방장이란 명칭은 재가자의 신분으로 부처의 반열에 오른 유마(維摩)거사의 거처에서 유래한다. 크기가 사방일장(四方一丈)이었다는데 그야말로 사방이 어른의 키 정도에 불과할 만큼 작았다는 뜻이다. 검박했던 성품을 상징한다. 대신 유마는 3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설법 공간을 두었다. 넉넉한 자비를 표상하는 동시에 포교의 핵심은 법문이고 감화라는 함의를 내포한다. 한편 수좌(首座)스님이 총림의 2인자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좌선하는 이들 가운데 우두머리. 선(禪)에 대한 안목이 높아 수행자들을 지도한다.

 

방장스님이 돌아가셨으니 수좌스님이 대를 잇는 것이 상례다. 하지만 구봉은 평소 수좌의 됨됨이가 탐탁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깃장을 놓으며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 달라 했다. 시자(侍者). 수좌 입장에서는 큰스님의 비서 따위가 큰스님 행세를 하려 한 것이니, 몹시 불쾌했을 법하다. ‘일색변사’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일체가 평등한 세계를 뜻한다. 시작도 끝도 삶도 죽음도 양반과 상놈도 없는 곳이다. 수좌는 죽음이 따로 없으며 자신이 죽음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아예 죽어버렸다.

 

‘자유인’이라는 사실을 으스대려고 회사를 그만두고 산 속으로 들어가 버린 꼴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괘념치 않는 것이 참된 자유라는 생각. 또한 대나무는 자기를 지키려다 자기를 해하고 말지만 갈대는 볼썽사납게 흔들릴지언정 결코 부러지지 않는다. 수좌는 구봉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버렸다. 방장 자리는 구봉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 하나 골로 보내기가 참으로 쉬운 일이다. ‘오기’라는게 이리 무섭다. 누가 흔들면 흔들려줄 줄 알고, 괴로워하는 꼴을 보고 싶어 하면 괴로워하는 시늉을 하는 것도 좋다. 나는 대부분 내가 죽인다.

 

제97칙 광제의 복두건(光帝幞頭, 광제복두)

 

동광제(同光帝)가 흥화존장(興化存獎)에게 자랑했다.

“과인이 중원의 보배를 얻었는데 아무도 값을 매기는 이가 없소.”
흥화가 말했다.
“폐하의 보배를 보여주소서.”
광제가 양손으로 복두건의 꼬리를 끌어당겨 보였다. 흥화가 말했다.
“군왕의 보배를 누가 감히 흥정하겠습니까?”

동광제(885~926)는 중국 당나라 이후 들어선 5대10국 가운데 후당(後唐)을 건국한 자다. 속명은 이존욱(李存勖) 묘호는 장종(壯宗). 아버지 이극용이 죽으면서 화살 세 개를 줬는데 “양(梁)과 연(燕), 거란(契丹)의 원수를 꼭 갚으라.”고 유언했다. 즉위한 뒤 북쪽으로 거란을 공격하고 동쪽으로 연을 멸망시킨 뒤 후량(後梁)을 정복하고는 화살을 태묘(太廟)에 바쳤다. 반면 재위는 고작 3년에 그쳤다. 오만방자해져서 나라를 내버려두다가 곽종겸(郭從謙)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화살에 맞고 죽었다.

 

복두건은 본래 신하가 쓰는 모자다. 황제가 쓰는 통천관(通天冠)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존욱이 말하는 보배란 중국 대륙일 테고 통천관의 끈을 단단히 맨 것은 중원을 정복했다는 쾌감의 표현일 터이다. 흥화는 얼핏 황제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 그 위세를 극찬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속내는 그의 몰락을 예견한 눈치다.

 

삶이란 게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하룻밤에 십억 원을 쓸 수 있는 인생이 언제 십 원짜리 동전 밑에 깔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값을 매길 수 없다는 건 너무 비싸서가 아니라 언제 똥값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달밤의 아름다움을 논하려는데, 어느새 새벽이 와서 칼을 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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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조사선(祖師禪)에 관한 수업을 몇 개 들으며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다. ‘불교신문 장영섭 기자’가 그다. 본명과 필명으로 『길 위의 절(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선사들의 공부법』,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은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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