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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서유럽 6국 여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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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7 년 11 월 [통권 제5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04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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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라는 10일간의 장기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9월 16일 12시 30분, 인천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하여,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스위스-프랑스-영국을 다녀오는 서유럽 6국 여행의 길에 올랐습니다. 3년 전에 떠났던 모로코-스페인-포르투갈 여행이나 작년에 떠났던 크로아티아-슬로바니아-헝가리-체코-오스트리아 여행에서 그런 대로 얻는 것이 있어서 서유럽 6국 여행에 대해서도 기대를 가지고 떠났습니다.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개별여행이 아닌, 다수가 함께 움직이는 여행이다 보니 꼭 가보고 싶고 보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해 아쉬움도 컸지만 나름 의미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9월 17일 현지시간 18시 조금 못 되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호텔로 직행하여 주변의 경관을 제대로 살펴볼 경황도 없었습니다. 나름 여행서적을 뒤적이며 찾았던 괴테 생가 방문과 카이저돔(Kaiser Dom) 대성당을 기억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침 숟가락을 놓자마자, 인솔자가 일정이 바쁘다면서 시내관광은 없고 바로 하이델베르크로 출발하여야 한다며 서둘렀습니다. 결국 프랑크푸르트 시가지는 둘러보지도 못하고 아침길에 하이델베르크로 달렸습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앞에 내려서 인솔자의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습니다. 성위에서 바라보는 시내 광경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점심을 먹고서는 바로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로 달렸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독일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입 속에서는 보고 싶었던 쾰른대성당, 뮌휀, 베를린 등의 단어들이 맴돌면서 독일 여행의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스브루크에는 해가 지고 도착하여 황금지붕의 건물과 헬블링 하우스 건물의 외양만 고개 아프게 쳐다보다가 돌아왔습니다. 정작 유명한 왕궁과 암브라스성 등은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다음날 9월 18일 아침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로 출발하였습니다.

 

점심 때쯤 베네치아에 도착하여 육지와 섬에 걸친 긴 다리를 건너니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117개의 섬, 150개의 크고 작은 운하, 400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물의 도시’로 최근에는 관광객 등살에 원주민들이 살지 못하겠다고 데모를 한다고 하는 관광지로도 유명하답니다.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격찬했다는 싼마르크 광장을 중심으로 싼마르크 대성당, 두칼레 궁전, 종루, 시계탑, 단식의 다리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점심을 먹고 다른 모든 관람을 생략하고 피렌체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4~5시간 달려와서 1시간쯤 둘러보고는 또 다음 행선지로 달려가는 셈이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솔자의 안내를 들을 수 있는 무전기를 한 대씩 주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자기가 무슨 경보선수가 된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설명만 하고 앞으로 빠르게 걸어가니, 다리를 다친 나로서는 쫓아가도 쫓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갔습니다.

 

피렌체에 어둠이 내릴쯤 도착하여 여장을 풀게 되었습니다. 피렌체에 가는 동안 신 중심의 세계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로 변혁한 르네상스를 주도한 메디치가문에 대한 궁금증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메디치가문은 이탈리아의 부르조아 가문으로 1434~1737년에 피렌체와 코스까나 지방을 지배하고, 이 기간 중 레오 10세를 비롯하여 클레멘트 7세, 피우스 4세, 레오 11세 등 네 명의 교황을 배출합니다. 메디치가의 최고의 번영은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 때부터였는데, 그는 미켈란젤로(1475~1564)의 재능을 간파해 13세부터 조각을 공부시키고 그의 궁전으로 데려와서 수양아들로 삼았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라파엘로(1483~1520), 마키아벨리(1469~1527), 갈릴레이(1564~1642) 등이 메디치가의 후원 또는 도움으로 르네상스문화를 꽃피우게 되었습니다. 메디치가문과 르네상스문화의 원조 지역을 마주하게 된다는 기대 속에 피렌체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두오모 성당을 밖에서만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자유시간이 30분이 주어졌는데 안으로 들어가려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 기다리기가 만만치 않아서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근처에 있는 산조반니 세례당도 함께 보았는데 종탑을 오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유명하다는 우피치미술관은 가지 않느냐고 인솔자에게 물으니 애초 여행계획에도 없었다고, 간단하지만 허망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피렌체는 가죽 제품이 유명하다며 일행들을 이끌고 우르르 가죽집으로 쇼핑을 가게 되었습니다. 60분이나 지나서 로마에 가기 바쁘다며 출발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볼거리를 남겨두고 피렌체를 떠나려니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19일 일정은 저녁에 로마에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9월 20일, 아침을 먹고 콜로세움 원형극장을 보러 갔습니다. 외각 원형만 엉성하니 남아 2000여 년을 견뎌온 모습은 장관이었고, 둘레 527m, 높이 48m에 이르는 거대한 석조건축물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노예, 전쟁포로, 죄수들이 검투자들로서 죽을 때까지 결투를 하였다고 합니다. 꼴로세움 앞에 있는 꼰스딴띠누스 대제의 개선문은 315년에 세워졌는데 높이 21m로 파리 상젤리제 거리에 있는 개선문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합니다.

 

관람을 마치고 벤츠투어라 하여 벤츠 봉고 6인승 차로 일인당 60유로의 요금을 지불하고 큰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는 구시가지를 3시간여에 걸쳐 둘러보는 상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70,000원이나 되는 비싼 돈을 요구한다고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그런데 전날 피렌체를 출발하여 로마로 들어오는 버스 안에서 그레고리 팩과 오드리 햅번이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로마의 유일”을 상영해 주었습니다. 젊은 옛날에 본 영화라 생각나는 부분도 있고 생소한 부분도 있었으나 재미있게 보면서 다음 날 로마의 관광여행에 대해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대는 벤츠봉고투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인솔자의 경보선수 걸음 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저에게 벤츠봉고투어는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명소들을 둘러보는데, 스페인 광장, 대전차 경기장, 베네치아 광장, 깜삐똘리오 광장, 포로 로마노지역의 전경, 진실의 입, 트레비 분수, 판테온 신전 등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걸어서는 이 많은 거리를 도저히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유명한 진실의 입은 사실은 원래 로마시대의 바다의 신 트리톤의 얼굴을 새긴 하수구 뚜껑이었는데 지금은 코스메딘의 성모마리아 성당의 입구 왼쪽에 있습니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등장하는 트레비 분수는 동전을 던져 로마에 다시 오기를 기원하는 장엄하고 아름답고 거대한 분수로 늘 마음에 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실지로 찾아가 본 트레비 분수는 나뽈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해 전체 한 개의 돌로 만들어 이음새가 없어 더욱 유명한 것인데 넓은 광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목 안으로 들어가서 주위의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분위기에 너무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고등학교 세계사 책에서 본 기억으로 마주한 그 유명한 빤테온의 위용과 경이로움은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높이 43.3m의 건물 안에 기둥이 하나도 없고, 반원형 지붕과 아치의 원리를 이용해 오직 벽만으로 건물을 지탱하고 있고 직경 9m의 구멍이 지붕 한가운데에 뻥 뚫려있습니다. 빤데온은 ‘모든 신의 신전’을 의미하고 기원전 27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바티칸 시국을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담을 돌아 한참을 걸어가서 줄을 서는데 대성당이 아닌 바티칸 박물관을 먼저 관람한다 하여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솔자가 지금은 비수기여서 입장이 쉬운 셈이라고 하는데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여러 곳을 지나며 무전기로 인솔자의 설명을 듣는데, 어디가 어딘지 무엇이 무엇인지, 정말 무식한 소치로 여러 미술품과 조각품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감탄만 하며 두리번거렸습니다.

 


 

 

인솔자가 “관람객이 많을 때는 사람에게 내 걸음이 아닌 밀려서 가는데 오늘은 그래도 내 걸음으로 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한가하다는데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넘쳐나고, 개인 16유로, 단체 12유로(14,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넓은 천지창조의 천정화를 바라보면서 바티칸 시대에서 오늘까지의 역사와 종교적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싼삐에뜨로 대성당 내부는 보지도 못한 채 싼삐에트로 광장으로 나오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로마의 하루는 유적과 역사를 탐방한다는 면에서 많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다음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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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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