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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삼매는 ‘만족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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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7 년 11 월 [통권 제5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89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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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에 찌들어 자다가 문득 손목을 베고 잔다.
맥박이 뛴다.

 

내가 나를 사는 게 아니었구나.
몸뚱이에 빌붙어 사는 거였구나.
시간이 나를 사는 거였구나. 

 

 

제98칙
동산의 항상 간절함(洞山常切, 동산상절)

 

어떤 승려가 동산양개(洞山良介)에게 물었다.
“삼신(三身) 가운데 어느 몸이 숫자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동산이 말했다.
“나는 항상 이것에 대해 간절했었다.”

 

삼신불(三身佛)은 법신불 ․ 보신불 ․ 화신불을 뭉뚱그린 말이다.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은 ‘진리’로서의 부처님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만유(萬有)의 본체를 가리키며 빛깔도 없고 형체도 없다. 보신불(報身佛)인 아미타불은 ‘수행’으로서의 부처님이다. 극락에 계신다는 아미타불은 진정한 ‘노오오오력(?)’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법장(法藏)보살이 48개의 대원(大願)을 세우고 지독한 고행과 난행으로 정진하여 마침내 아미타불이 되었다는 전언이다. 화신불(化身佛)은 교화(敎化)로서의 부처님이다. 사바세계에 몸소 내려와 입으로 가르치고 손으로 기적을 행하는 ‘실제적인’ 부처님을 일컫는다. 사람의 몸을 받았다 해서 응신불(應身佛)이 별칭이다. 불교의 교조(敎祖)인 석가모니불을 가리킨다.

 

숫자에 떨어지면 부처가 아니다. 완전무결하지 않거나 필연적으로 물질을 밝힌다. 예컨대 ‘2’는 ‘1’보다 크다. 또한 많다. 갓난아이는 1과 2와 3의 실체를 파악해가면서 그들 사이의 계급과 역학관계도 익힌다. 모략과 질투와 복마전의 근본에는 언제나 산수(算數)가 있다. 계산에 능한 자들은 대체로 함부로 말하거나 부풀려 말하면서 자신을 지지할 머릿수를 ‘모으거나’, 남들의 미움을 ‘산다.’ 숫자에 떨어진다는 건 분별에 떨어진다는 것이고 끝내는 비열하고 쩨쩨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변을 이용하지 않고 머리를 굴리지 않는 순간만큼은 부처다. 나의 정직과 성실이 법신불이요, 더 나은 정직과 성실을 쌓으려 하는 자세가 보신불이요, 그간의 정직과 성실로 이웃을 대하는 내가 화신불이다. 간절한 마음은 ‘1’과 ‘2’를 따지지 않는다. ‘2’가 있으면 ‘2’를 주고, ‘1’밖에 없으면 ‘1’을 준다. 내가 본 부처님은 생각이 깊고 따뜻한 사람, 생각이 깊어서 따뜻한 사람일 뿐이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솔직하고 진실하게 대하는 것이 붓다의 삶이다. 모든 공덕은 열심히 살아온 내가,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

 

 

제99칙
운문의 발우와 통(雲門鉢桶, 운문발통)

 

어떤 승려가 운문문언(雲門文偃)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티끌마다에 나타나는 삼매입니까?”
운문이 답했다.
“발우 안의 밥이요, 통 속의 물이다.”

 

속세의 다른 이름이 진토(塵土)다. 티끌과 먼지가 뒤덮은 땅, 더럽고 혼곤한 땅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예토(穢土)라 한다. ‘똥 예’ 자를 쓴다. ‘사람냄새’는 정답다지만 돈 냄새와 섞이면 필시 코를 틀어쥐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면 피가 튀거나 애가 튀어나온다. 싸움은 싸움대로 연애는 연애대로 업(業)을 낳는다. 이렇듯 사람이 많으면 피곤한데 정작 사람이 없으면 외로워진다. 비단 감정적인 고독감을 일컫는 것만은 아니다. 사람을 만나야 일거리를 얻고, 싫은 사람 앞에서 웃어준 만큼 더 많은 돈이 생기는 법이다. 시련도 모함도 사람이 만들어서 준다. 사람은 사람에게 공손하면서 사람대접을 받고 사람에게 짓밟히면서 사람으로 커간다.

 

미운 자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간악하고 비열함에도, 너무 잘 살고 있다는 괘씸함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세상은 합리적이지도 자비롭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반면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증오하는 누군가에게는 합리적이고 자비롭지 않은가. 그러므로 세상은 나에게만 합리적이고 자비롭지 않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세상이 합리적이고 자비로우리란 믿음은, 기본적으로 욕심에 젖어있는 마음이다. ‘티끌마다에 나타나는 삼매’란 ‘일상 속의 깨달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밥 한 술과 물 한 모금에서 고기반찬을 바라거나 술 한 부대를 바라는 나를 본다. 내가 나의 적(敵)이었던 것이다. 밥만 먹어도 졸고 물만 마셔도 좋은 마음이라면, 어디를 가도 비굴하지 않을 것이요 어디에서도 삼매를 얻을 것이다. 혹자들은 신비를 말하고 초탈을 말하지만, 최고의 삼매는 만족감이겠다.  

 

 

제100칙
낭야의 산하(郎耶山河, 낭야산하)

 

어떤 승려가 낭야혜각(郎耶慧覺)에게 물었다.
“본래 청정하다면 어찌하여 산하대지가 생겼습니까?”
낭야가 말했다.
“본래 청정하거늘 어찌하여 산하대지가 생기는가?”

 

세상만사가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을 쓰면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 살면서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고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나고 일어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 김치찌개를 먹지 않았다 해서 영원히 김치찌개를 먹지 않을까? 오늘 상처를 입었다 해서 내일도 상처를 입을 것인가? 일체유심조. 내 마음에 비친 산하대지는 그저 내 마음일 뿐이다. 내가 생각한 만큼이 현실이다. 오랜 생각은 현실을 설명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바꾸지는 못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현실이 사라지고 생각을 바꾸면 현실도 바뀐다.

 

스트레스는 사람을 괴롭게만 하는 것 같지만,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만큼 강인해져 있다. 흐렸다 개였다 반복하는 게 하늘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고 있지 않기에, 비도 내리고 햇살도 내려쬐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도 티 없이 깨끗하고 텅 비어있기에, 번뇌도 생긴다. 행복은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긍정하는 데서 온다고, 다수의 행복학자들은 말한다. 이 전제부터 긍정하기로 했다. 지금 괴롭다면, 내가 심성이 아름다운 부처이기에 그만큼 괴로운 것이라는 여유가 필요하다. 마음은 청정해서, 아무 거나 들어왔다가 나간다. 결국엔 나간다. 심란할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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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조사선(祖師禪)에 관한 수업을 몇 개 들으며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다. ‘불교신문 장영섭 기자’가 그다. 본명과 필명으로 『길 위의 절(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선사들의 공부법』,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은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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