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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림고경총서로 만나는 스님 이야기]
선종의 시작 보리달마(菩提達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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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  2018 년 1 월 [통권 제5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65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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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림고경총서로 만나는 스님 이야기

 

선림고경총서는 성철 큰스님께서 선종의 가치를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선 문헌을 골라 한글로 번역하게 하신 책입니다. 이번 호부터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선림고경총서를 읽어보려고 합니다. 단편적으로 여러 스님의 이야기를 전하는 선 문헌에서 특정 스님의 일화를 모아서 읽어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선사들의 일화가 어떻게 전승되는지를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시작은 중국에 선종을 일으킨 보리달마 스님입니다.

 

대사는 남인도 향지왕(香至王)의 아들이며, 속성은 찰제리(刹帝利, 관리계급), 본명은 보리다라(菩提多羅)이다. 어느 날 제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가 걸식을 나갔다가 향지국에 이르렀는데, 향지왕이 존자에게 값진 보배구슬을 보시하였다. 당시 향지왕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존자는 그들의 경지를 시험하고자 보시받은 보배구슬을 가지고 세 왕자에게 물었다.

 

 


 

 

“이 구슬은 둥글고 밝은데 이것과 맞먹을 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이에 왕자(대사)가 말하였다.
“이는 세상의 보배이므로 최상의 보배라 할 수 없으니 보배 가운데 법보(法寶)가 으뜸이오며, 이는 세상의 빛이므로 최상의 빛이라 할 수 없으니 빛 가운데 지혜의 빛이 으뜸입니다. 또한 세상의 밝음이라 최상의 밝음이라 할 수 없으니 밝음 가운데 마음의 밝음이 으뜸입니다. 이 구슬의 빛과 밝음으로는 스스로를 비출 수 없고 지혜의 빛을 빌려야 빛인 줄로 판명됩니다. 그렇게 판명되고 나서야 구슬인 줄 알게 되고, 구슬인 줄 안 다음에야 그것이 보배임이 밝혀집니다. 이것이 보배로 밝혀지면 보배는 그 자체가 보배가 아니며, 그것이 구슬로 판명되면 구슬은 그 자체가 구슬이 아닙니다. 구슬을 구슬이라 하지 않는 것은 지혜 구슬을 빌려야 세상의 구슬인 줄 알 수 있기 때문이며, 보배를 보배라 하지 않는 것은 지혜 보배를 빌려야 법보인 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존자께 도가 있다면 그 보배는 그대로 나타날 것이며, 중생에게 도가 있다면 마음의 보배 역시 나타날 것입니다.”
존자는 왕자의 논변과 지혜에 감탄하여 이름을 ‘보리달마’라 바꿔 부르게 되었고, 왕자(대사)는 향지왕이 세상을 떠난 후 드디어 출가하였다.(주1)

 

그 후 이견왕(異見王)이 삼보를 가볍게 여기고 훼손하자 종승(宗勝)이 남몰래 왕의 처소를 찾아가 불법의 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이리저리 따져 물었다. 대사는 멀리서 종승의 논리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급히 바라제(婆羅提)에게 말하였다.

 

“네가 속히 종승을 구하도록 하라.”
바라제가 “신통력을 빌려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하니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발아래 구름이 피어오르고, 그는 구름을 타고 왕 앞에 가서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왕은 때마침 종승에게 질문을 하다가 갑자기 구름을 타고 오는 바라제를 보고 깜짝 놀라 문답마저 잊고서 이렇게 물었다.

 

“공중에 날아오는 이는 정도(正道)인가, 사도(邪道)인가?”
“나는 바른 것을 삿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삿된 것을 바르게 하러 왔소만 왕의 마음이 바르다면 나에겐 삿됨도 바름도 없을 것이오.”
왕은 그의 말에 놀라면서도 자만심이 타올라 종승을 쫓아버렸다. 그러자 바라제가 말하였다.
“왕에게 도가 있다면 어찌하여 사문(沙門)을 쫓아내시오? 내 비록 아는 것은 없지만 왕은 무엇이든 물어보시오.”
이에 왕은 화를 내며 물었다.

 

“어떤 사람이 부처입니까?”
“성품을 보는 이가 부처입니다.”
“대사는 성품을 봅니까?”
“나는 불성을 봅니다.”
“불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불성은 작용(作用)하는 데 있습니다.”
“무슨 작용이기에 지금 나는 볼 수 없습니까?”
“막상 작용이 나타나 있는데도 왕 스스로가 보지 못할 뿐입니다.”
“나에게도 있습니까?”
“만일 왕께서 작용을 한다면 어디나 있지만 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본체(本體)도 보기 어렵습니다.”
“만일 작용을 한다면 몇 군데에서나 나타납니까?”
“나타날 때는 여덟 가지로 나타납니다.”
“나타나는 그 여덟 가지를 나에게 설법해 주시오.”
바라제는 게송으로 설명하였다.

 

모태(母胎)에 있을 땐 몸이라 하고
세간에 처하여서는 사람이라 한다
눈에 있으면 본다 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 하며
코에 있으면 냄새 맡는다 하고
입에 있으면 말한다고 한다
손에 있을 때는 잡는다 하고
발에 있을 때는 달린다 하니
나타날 때는 항하사 세계에 빠짐없이 나타나고
거둬들이면 한 티끌 속에 있다
아는 이는 이를 불성이라 하지만
모르는 자는 이를 정혼(精魂)이라 한다.

 

왕은 이 게송을 듣고 마음이 열려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고 사죄하면서 불법의 요체를 물었다.(주2)
대사가 하루는 “내, 적현신주(赤縣神州, 중국의 별칭)를 바라보니 큰 근기가 있구나.” 하고는 드디어 바다 건너 사막 넘어 법을 위하여 인재를 구하였다. 처음 중국에 와서 양무제(梁武帝)를 만나자 무제가 대사에게 물었다.

 

“부처님의 으뜸가는 법문[第一義]은 무엇입니까?”
“텅 비어 부처랄 것이 없습니다.”
“나와 마주한 그대는 누굽니까?”
“모르겠습니다.”(주3)
무제가 알아듣지 못하자 드디어 갈대를 꺾어 타고 양자강을 건너 소림사에 도착하였다. 벽을 향한 지 9년(주4) 만에 수북히 쌓인 눈 속에서 이조(二祖, 慧可)를 만나게 되었다.
한번은 이조에게 말하였다.
“밖으로는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에 헐떡거림이 없이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비로소 도에 들어갈 수 있다.”
그 후 의발을 전하면서 게를 지어 부촉하였다.

 

내 본디 이 땅에 온 것은 [吾本來玆土]
법을 전해 미혹 중생 구하기 위해서였네 [傳法救迷情]
꽃송이 하나에 다섯 꽃잎 피어나니 [一花開五葉]
그 열매 저절로 익어지리라. [結果自然成](주5)

 

보리유지(菩提流支)와 광통율사(光統律師)가 스님을 죽이려고 여러 차례 독약을 넣어 왔는데, 여섯 번째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피하려 들지 않았다. 이렇게 예언하였다.

 

강물에 작은 배는 옥빛 물결 가르고 [江槎分玉浪]
큰 횃불은 쇠사슬을 끊도다 [管炬開金鎖]
다섯 식구가 길을 함께 가노라니 [五口相共行]
마침내(九十은 卒의 破字) 너와 내가 없도다. [九十無彼我](주6)

 

대사는 인연이 다함을 알고 천축(天竺, 인도)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각자의 뜻을 말하도록 하였는데 도부(道副)는 거죽을 얻고, 총지(總持)는 살을 얻었으며, 도육(道育)은 뼈를 얻고, 이조(二祖)는 골수를 얻었다고 하였다.(주7)

 

대사가 입적하자 웅이산(態耳山)에 장례를 치렀다. 그 후 위(魏)나라 송운(宋雲)이 서역으로 사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파미르 고원[葱嶺]에서 대사를 만났는데, 한 손에 신발 한 짝을 들고서 천축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송운이 이를 황제에게 아뢰어 무덤을 파헤쳐 보니, 과연 빈 관 속엔 신발 한 짝만 남아 있었다.(주8)

 

찬하노라.

 

우뚝한 콧날은 임금의 얼굴이요
푸른 눈동자는 천자의 모습이로다.
금수레를 버리고 불도 위해 출가하셨고
보배구슬 논변으로 스승과 맞섰도다.
발아래 구름을 일으켜
제자를 보내 이견왕의 사견을 없애고
혓바닥이 파도를 뒤집으니
온 나라에 일어난 육종(六宗)의 비방소리 들었도다.
신주적현에서 대승 인물 맞이하니
동토 서천에서 납승의 본모습을 보여주셨네.
텅 비어 부처랄 것도 없다 하여
왕의 마음을 거슬려 한 줄기 갈대 타고 큰 강을 건너시고
고요히 마음을 관하며
귀신 끓는 굴속에 앉아 9년 동안 코끼리를 더듬었네.
꽃송이 하나에 다섯 꽃잎 피어남이여
마당에 쌓인 눈 허리까지 묻히도록 내버려두고
독약을 제호로 만듦이여
웃으며 떠나는 강나루 배에 옥빛 물결 부서지도다.
담장 같은 마음이여
언제 교외별전 만난 적이 있던가
골수를 나누고 살가죽을 나눔이여
손에 든 뼈아픈 몽둥이맛을 보기에 딱 알맞구나.
죽은 척하고 한 쪽 신발 들고서 바삐 돌아가심이여
안타깝구나. 그때 온 중국 사람들이
오랑캐의 속임수에 눈뜨고 넘어가다니.
<희수소담(希叟紹曇),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보리 달마스님이 과거 양(梁)나라에서 위(魏)나라로 가는 도중에 숭산(嵩山) 아래를 지나다가 소림사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주장자를 기대어 놓고 벽을 향하여 앉아 있었을 뿐이지 참선을 익힌 것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사람들은 그 까닭을 까마득히 모르고서 이 일을 가지고 달마스님이 참선을 하였다고 말들 한다. 선(禪)이란 여러 수행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어떻게 참선으로 성인의 도를 다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였고, 역사를 쓰는 자도 덩달아 선승의 전기를 쓸 때면 마른 나무나 꺼진 재와 같은 무리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고 성인의 도가 선(禪)에 그치는 것도 아니지만 한편 선을 어기는 것도 아니다. 이는 마치 역(易)이 음양에서 나온 것이지만 또한 음양을 떠날 수 없는 것과 같은 예이다.
<혜홍각범(慧洪覺範), 『임간록(林間錄)』>

 

주)
(주1) 반야다라존자와 보리달마대사의 인연담과 출가 이야기는 『종경록(宗鏡錄)』을 비롯하여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등 오등록(五燈錄)에서 먼저 전해지고 있다. 다만 『종경록』과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에서는 이 이야기가 보리달마대사 전기에 포함되어 있는 반면, 나머지 대부분의 전등록류에서는 반야다라존자의 전기에 포함되어 있다.
(주2) 이견왕과의 이야기와 게송의 경우 『종경록』 권97에는 반야다라존자전기로 되어 있다.(T48-p.939ab) 그러나 이 이야기는 『경덕전등록』에 이르러서 보리달마대사의 전기에 포함되어 있다.(T51-p.218ab) 이후의 전등록류에는 대부분 달마대사의 전기에 포함되어 있다. 『선문염송(禪門拈頌)』 제104칙 견성(見性).
(주3) 달마대사와 양무제의 문답은 많은 어록이나 전등록류에 나타나 있다. 『오가정종찬』의 경우 많은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경덕전등록』에 자세한 내용이 있다(T51-p.219ab). 『선문염송』 제98칙 성제(聖諦).
(주4) 소림사(少林寺)에서의 9년 면벽의 내용이다. 『선문염송』 제99칙 면벽(面壁).
(주5) 달마대사의 전법게(傳法偈)이다. 『종경록』 권97 (T48-p.939c), 『경덕전등록』 권3 (T51-p.219c). 『선문염송』 제102칙 오본(吾本).
(주6) ‘강물에 작은 배는 옥빛 물결 가르고’는 보리유지(菩提流支)를, ‘큰 횃불은 쇠사슬을 끊도다’는 광통율사(光統律師)를, ‘다섯 식구(五口)’는 나(吾)라는 뜻이다. 『경덕전등록』(T51-p.220a)에 자세한 이야기가 전하는데 다음과 같다. 우문(禹門) 천성사(天聖寺)에 달마대사가 머물던 중, 그 고을의 태수 양현지(楊衒之)의 방문이 있었다. 양현지와의 불법에 대한 문답 가운데, 양현지는 달마대사께 세간에 오래 머물기를 청하였으나 달마대사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여 거절하였다. 이에 양현지는 예언을 부탁한다. 이때 달마대사가 예언을 하는데 이것이 본문의 게송이다. 『경덕전등록』에는 이후 보리유지(菩提流支)와 광통율사(光統律師)의 독약 이야기를 자세하게 싣고 있다.
(주7) 자세한 이야기는 『선문염송』 제101칙 득수(得髓)에 나타나 있다.
(주8) 『경덕전등록』 권3 T51-p.220b. 『선문염송』 제103칙 척리(隻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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