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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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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8 년 1 월 [통권 제5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68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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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것들은 언젠간 죽는다. 태어나면 죽는다. 태어나니까 죽는다. 반면 태어나지 않는 것들은 언제든 죽지 않는다. 태어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태어나지 않으니까 죽지도 않는다. 산 위에는 꽃이 피고 물 아래에는 민물장어가 간다. 다들 태어나 있다. 꽃이 지는 골짜기에서 그물을 든 사람들이 희희낙락하다. 누군들 죽고 싶겠느냐마는, 누구든 죽어야 또 누구든 산다.

 

그래도 새봄이 오면 새로운 꽃이 다시 일어선다. 나아가 새봄이 이어지면 새로운 꽃들은 새로웠던 꽃으로 으깨진다. 지나간 풀들은 켜켜이 쌓이는 바람 밑에 깔려 늙고, 부지런히 똥을 누던 이들은 똥이 된다. 용가리통뼈가 아닌 나 역시 태어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이 돌아갈 때 같이 돌아주지 않으면, 돌아버린다. 다행히 이제는 밥 대신 욕만 먹어도 배가 조금은 부르다. 똥이 되길 기다리면서, 먹이가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날을 향하면서, 산을 오르고 물을 마신다.  

 

#1.

 

계룡산 동학사에서 수행하던 학명(學明) 스님이 마을에 내려갔다가 이 씨 성을 가진 진사(進士)를 만났다.

= 한가한 농부가 산보를 나선다.
“대사(大師)는 요새 중노릇 어떻게 하시오?”
= 소를 만나서 고삐를 건다.
“아, 소승이야 그저 경전 보고 계율 지키고 부처님 시봉(侍奉)하고 절 가꾸고 살지요. 뭐 이런 게 중노릇 아니겠소?”
= 고삐는 저렴해서 누구나 사갈 수 있다.
이에 이 진사는 혀를 찼다. “허허, 대사. 그렇게 중노릇하면 소밖에 더 되겠소.”
= 고삐가 단단히 잘 걸렸는지 점검한다.
스님도 그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처사님, 그러면 어떻게 해야 소가 안 되겠습니까?”
= 아무리 착한 개라도 낯선 행인이 주는 밥에는 머뭇거리게 마련이다.
“명색이 선승(禪僧)이란 사람의 대답이 그래서야….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고 해야지!”
= 기분이 상한 행인이 밥그릇을 부숴버렸다.
한겨울 냉방에 틀어박혀 24시간 화두만 파던 경허는 밖에서 들리는 이 얘기에 크게 깨달았다.

 

= 맹수가 되기로 작심한 개가 스스로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코에 고삐가 걸린 소들은 주인의 말을 잘 듣는다. 그래야 잘 산다. 고삐의 주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줘야만, 목숨과 안전을 장담할 수 있다. 인간의 탈을 쓴 소들도 집소들의 법칙을 따른다. 열심히 일하고, 착한 일도 열심히 하고, 자식 잘 키우고, 살림도 늘리면서, 건실한 마소가 되어간다. 산마루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떼와 펜션 앞마당에서 오순도순 식사를 즐기는 중산층 가족은, 등가(等價)다.

 

고삐 풀린 망아지들은 머지않아 굶어죽거나 잡아먹힌다. 당장에만 즐겁거나 혼자서만 즐겁다. 공동선은 다수가 공동체의 규약과 관습에 묵묵히 휘말려 들어가는 일에서 달성된다. 집단이 원하지 않는 개인의 재능은 죄악이거나 무능이다. 자기다움을 포기하고 감춘 대가로써만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세상의 존경을 두루 받는다는 건, 세상의 억압을 일정하게 받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억압한 만큼 권리와 명예가 따라온다. ‘자기관리’라는 가치는 아름답지만 피곤하다. 그래서 이목(耳目)의 노예들일수록, 잔소리와 ‘갑질’이 심하다.

 

그러나 제아무리 튼실하고 유능한 소라 하여도, 소로서의 삶의 끝은 끝내 주검이거나 쇠고기다. 최고의 학승으로 이름을 날리던 경허가 돌연 책들을 죄다 불태우고 폐관에 든 까닭은, 고작 소나 되려고 했던 자신에 대한 모멸감 때문으로 유추된다. 염병이 도는 마을에서 시체더미를 목격한 그는, 죽음의 게걸스러운 전지전능성에 압도됐다. 죽음은 몹시 청렴해서, 억만금을 쥐어줘도 발길을 되돌릴 수 없다. 하물며 언변과 학식으로는 저승사자를 구워삶지는 못한다. 그는 뇌물로 오로지 쇠고기만 받는다.

 

천만고의 영웅호걸 북망산의 무덤이요 

부귀문장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쏘냐. …
나의 몸이 허공과 같은 줄로 진실히 생각하여
팔풍오욕 일체경계 부동한 이 마음을 태산같이 써나가세.

 


 

 

경허성우(鏡虛惺牛, 1849~1912), <참선곡(參禪曲)> 일부

견성(見性)이 발생한 때는 1879년 음력 11월 15일이다. 3년 전인 1876년에 강화도조약으로 개항이 이뤄졌다. 일본 진종(眞宗) 계열 본원사(本願寺)가 부산항 근처에 별원(別院)을 세운 게 1877년이다. 한국불교 식민지화의 효시로 본다. 물론 500년 간 이어진 숭유억불의 국시(國是)로 인해 한국불교는 모국 안에서도 식민지였다. 민간신앙 수준이었다.

 

<참선곡>의 저술 시기는 구한말로 짐작된다. 한글 가사(歌詞)는 당시 민중을 계몽할 목적으로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장르다. 견성 이후 전국을 만행하던 경허는 그곳의 승려들을 불러 모아 참선만 시켰다. 방방곡곡 세운 선원(禪院)의 숫자는 90개를 헤아린다. ‘고삐 풀린 소’들을 길러내는 일은, 충직한 소들만 길러내려는 외세에 저항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남에 의한 근대와 강요당한 근대의 와중에서, 불교가 주체적으로 개발한 근대였다.

 

파계(破戒)와 관련해 경허만큼 많은 구설수를 남긴 스님도 없다. 어쩌면 파계(破戒) 때문에 유명해졌다. 숱한 기행들은 그러나 소와의 결별을 위한 나름의 대안으로 보인다. 어머니를 위한 잔칫날, 법당에서 옷을 벌거벗은 채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아들이 큰스님이라 좋소? 이게… 나요!’ 가장 인간답지 않은 모습으로써, 아무도 규정할 수 없고 범접할 수 없는 인간다움을 성취한 것이라 본다. 고기가 질기면 남들이 싫어하고, 고무처럼 질기면 웬만해선 이용당하지 않는다.

 

열심히 달린 짐승의 고기가 육질도 좋은 법이다. 부지런하고 고분고분한 삶은 건실하고 권장된다. 한편으로 그 실상은 남에게 바칠 제 살점을 좀 더 부드럽고 먹기 좋게 숙성하는 ‘뻘짓’이라고 해석해도, 할 말이 없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고 언제든 사라지지 않는 자성(自性)을 발견하는 일은, 무엇보다 현생에 대한 욕심과 미련을 제거해준다. 문둥이 여자와 며칠을 동침했다는 풍설을 욕정의 결과라고 읽을 수 없는 이유다.

 

태생적으로 코뼈를 갖고 태어나는 포유류들이 돌파구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고삐 뚫을 구멍이 없는 비강이라면, 기본적으로 호흡에 문제가 생긴다. 그래도 ‘진흙소가 물 위를 걸어갈 수 있다면?’ 순종 이외에, 소의 또 다른 속성은 정진이다. 하루 종일 밭을 갈아도 여물 따위만 먹여주면 이튿날 또 간다. 남들보다 뒤쳐져도 그냥 가고,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가고 또 간다. 질기지만 순한 힘은 정답고 눈물겨워서 미덥다.

 

윗물이 맑기가 어려운 까닭은, 너무 많은 자들이 윗물에서 목욕을 하거나 목욕을 하려고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도전은, 몰락이다. 고개를 숙이는 날들이 많아 상심이 크다면, 고개를 더 숙여야 한다. 못 생기고 상처받은 발이 그대를 어디로든 옮겨주고 올려다주고 있다. 우무비공처(牛無鼻孔處)에는 입 없이 땀 흘리는 것들만 산다.

 

낙엽은 나무의 뿌리로 돌아간다.
낙엽도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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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조사선(祖師禪)에 관한 수업을 몇 개 들으며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다. ‘불교신문 장영섭 기자’가 그다. 본명과 필명으로 『길 위의 절(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선사들의 공부법』,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은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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