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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새해를 백팔배로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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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7 년 3 월 [통권 제4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46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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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을 수행삼아 해본 적이 없다. 대학 때 수련회 갔다가 일정에 따라 백팔배를 몇 번 해보았으나 그때마다 별로였다. 절보다 재밌는 게 많았던 때라 그런지, 몸은 괴롭고 시간은 아까웠다. 그 뒤로 어쩌다 절에 가서 예불할 때 말고는 절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신년벽두를 백팔배로 시작하여 작심삼일을 훌쩍 넘기고 한 달 반이 지났다. 이제는 아침마다 절하는 시간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한다. 절을 시작하고 나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나도 옛날에 백련암에서 무려 삼천배를 한 적이 있다는 사실. 딱 한번이었다.

 

1987년쯤으로 기억된다. 경상도 친구와 여행계획을 잡고 우선 해인사 큰법당 마당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바람맞았다. 서울에서 떠나 해인사에 도착하고 보니 벌써 늦은 오후였다. 한참 기다린 터라 해는 점점 기울어 가는데 만나기로 한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 집에 전화를 해보고서야 급한 일이 생겨 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집으로 돌아가기는 늦었고 그렇다고 혼자 아무데서나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감했다. 머리를 굴려 도움청할 사람을 생각해 보았으나 해인사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원택 스님 뿐이었다. 그러나 원영 스님 소개로 인사한 지 얼마 안 된 사이라, 무턱대고 찾아가면 실례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망설이는 동안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내고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자 저절로 용기가 나서 팻말을 보고 백련암을 찾아갔다.

 


 

 

마당을 지나는 한 스님께 원택 스님을 찾아왔다고 하자 안내해주었다. 스님께선 예고 없이 찾아간 불청객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일 없이 찾아간 터라 무슨 일로 왔느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까, 올라가는 동안 궁리를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이실직고 했다. “지나가는 과객이온데 하룻밤만….” 스님은 여자들 방으로 데려다주며, “그럼 편히 쉬십시오.” 하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사라지셨다. 그러나 그날 밤, 편히 쉬지 못했다. 목례를 하고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 어쩐지 긴장감이 돌았다. 절을 하러 온 신도들이 채비를 하고 있었는데 말없는 동작에서 느껴지는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절하러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선을 방바닥에 꽂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차츰차츰 분위기에 압도되어 삼천배를 꼭 해야만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대열에 끼자니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남들 다 절하는 수행처에 와서 잠만 퍼 자고 가자니 원택 스님께 누가 될까하여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갈등 때리는 채로 고행이 시작되었다. 인정사정없는 죽비소리를 원망하며 삼천 수를 채우는 동안, “내가 미쳤지, 그냥 숙박료 내고 마을에서 하룻밤 묵어갈 걸” 하는 후회가 제일 컸다. 천오백 배를 한꺼번에 하고 그 다음은 오백 배씩 끊어서 일곱 시간쯤 걸려 끝이 났다. 몰골은 짐승이었지만 마음에선 환희의 송가가 들려왔다. 자신감이 상승하여 곧 철인삼종경기라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해냈다’는 뿌듯함에 도취된 기분도 잠시, 곧이어 뭔가 빠졌다는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절하는 게 단순히 극기훈련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급 이상해졌다. 뭐가 빠졌는지 알 수 없는 채 다음 날 휘청거리는 다리로 암자를 내려왔고 그 뒤로는 관심을 끊고 지냈다.

 

주위에 절을 수행으로 삼는 친구들이 있어서 가끔 권유를 받기도 했다. 그들이 절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 간절함이 무얼까, 진심일까, 진심이라면 항상 그 마음이 유지될까 궁금했다. 내게는 잠깐 동안의 간절함은 있었어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몇몇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한 친구는 하심을 위해서 절을 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하심할 만큼 니가 잘났냐?”고 되물었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또 한 친구는 애가 아파서라고 했다. 아프면 병원 가서 고치든지 고치지 못하면 보듬고 사는 수밖에 없는 일이지, 절하는 시간 아껴서 애랑 놀아주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다. 다른 사람들도 아마 남편 승진이나 자녀 합격 등등에 간절할 것이라 마음대로 짐작했다. 그리고는 그런 게 다 분별심을 쓰는 일이고 세속의 욕심이나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수행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지난 연말에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무리하는 바람에 허리가 아팠다. 앉았다 일어나는 순간 비명이 나오며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며칠, 몸을 펴지도 못하고 굽히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음걸음 통증을 느끼며 가라앉길 바랐다. 그러나 돌아누울 때도 절로 신음이 날 정도가 되자 겁이 덜컥 났다. 평생 아프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이 정도에 충분히 겁먹을 만하다. 꼼짝없이 이제는 병원 가서 찍어봐야겠다 하는 차에 절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동안 번번이 무시해왔었는데 이번에는 귀가 솔깃했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자 매우 기뻐하면서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마스터급 절 수행자가 하는 이야기라 그런지, 없던 믿음이 절로 생겨나서 아픔을 참고 시작했다. 무릎 꿇은 영험은 바로 나타났다. 시작한 지 며칠 만에 허리가 말끔히 나은 것이다. 좋기는 매우 좋으나 자존심이 좀 상했다. 요리 빼고 조리 빼며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피해왔는데, 허리 ‘따위’로 무릎을 꿇다니 말이다.

 

허리가 다 나았으니 이제 어쩐다. 그만 할까. 그만두기에는 어쩐지 아까운데, 계속 한다면 뭘 가지고 절을 하나. 절 마스터에게 물어보니 계속 하란다. 아무 목적 없이 그냥 하란다. 왕초보이니 부처님 얼굴에 집중해도 좋고 호흡에 집중해도 좋다고 한다. 절을 하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며 설탕을 뿌리기도 한다. 하라는 대로 한달 남짓 해보니, 아주 신나는 일은 아니어도 전처럼 의심이 일거나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처음엔 분위기 잡으려고 매일 법당을 찾아서 절을 했는데 재가자에게는 그게 쉽지가 않았다. 집에서 하려니 부처님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는데, 마침 설에 차례 지내러 정심사에 갔다가 손바닥만한 관세음보살 사진을 얻어 왔다. 뉴욕 보리사 관세음보살이라는데, 늘씬한 팔등신 몸매에 수승하게 생겼다. 그분이 분명 잡념을 막아주시리라 굳게 믿고 아침마다 대면하여 몸을 숙인다. 계속 하다보면 백련암에서 극기훈련으로 삼천배하고 허전했던 마음의 정체도 알게 되는 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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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봉선사 월운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선림고경총서>편집위원을 역임했고 『승만경』, 『금강경오가해설의』, 『송고백칙』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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