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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좀 더 하심(下心)할 수 있기를…절 수행으로 새해 여는 백련 불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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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주  /  2017 년 2 월 [통권 제4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21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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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유철주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로 상징되는 2016년이 마무리될 즈음, 해인사 백련암에는 80여 명의 불자들이 모여 들었다.

 


 

 

“가족과 함께”라는 말이 어울릴 ‘세밑’에 적지 않은 불자들이 각자 짐을 챙겨 백련암에 도착한 것이다. 서울, 부산, 대구 등에서 온 많은 불자들이 백련암에 모인 이유는 자명했다. 정진을 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백련암에 오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수행과 정진뿐이다.

 

12월 30일 백련암에 도착한 불자들은 경내를 정리했다. 묵은 기운을 날려 보내고 새해의 기운을 맞이하는 시간이다. 12월 31일 새벽 3시, 적광전을 가득 메운 불자들은 예불을 올린 뒤 너무도 자연스럽게 절을 시작했다. 이날 불자들이 시작한 절은 108배도 아니었고 1000배도 아니었고 삼천배도 아니었다. “무려” 1만배였다. 

 

용맹정진(勇猛精進)의 1만배 

 

일정표에서 뭔가 모를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1500배를 시작으로 1500배, 1000배, 1300배, 1200배, 1000배, 800배, 700배, 500배, 500배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이다. 중간의 휴식과 공양시간이 있지만 정말 ‘살인적인 일정’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유가 있었다. 정성도 있었다. 첫 1500배를 마치고 공양을 하러 가는 부부를 만났다. 청봉 거사님과 종담화 보살님이다. 300배의 일과 수행을 하고 있다는 청봉 거사님이 먼저 운을 뗐다. “저는 일단 삼천배를 목표로 왔습니다. 우리 보살은 1만배를 다 한다고 하고요. 1년 만에 삼천배를 하려니 쉽지 않습니다. 힘들어요. 하하… 2017년에는 좀더 마음을 비우고자 다짐하고 있습니다. 삼천배를 마치면 능엄주 독송을 할 예정입니다. 다들 정말 대단한 신심으로 정진하고 계시는데,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종담화 보살님은 일과로 삼천배를 1300일 동안 했다. 지금은 1000배의 일과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보살님은 “하던 대로 열심히 해야죠.”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적광전에서 1만배를 하고 있는 불자들

 

백련암 공양간은 바빴다. 이른 새벽부터 100여 대중의 공양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얼굴도 보인다. 고심정사 신도회장 법호윤 보살님과 지호륜 보살님이다. 세밑을 ‘외호대중’으로 보내고 있다며 웃었다. “절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러 왔습니다. 하하.”

 

부산 장금선원에서 온 불이월 보살님은 “5년째 일과 1000배를 하면서 발원하고 있는 내용을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다 불자로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것뿐이 네요.”라며 웃었다.

 

하남 정심사에서 1만배를 하고 다시 백련암 1만배를 하고 있는 견덕화 보살님은 마당에 나와 불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원택 스님에게 “스님! 힘들어요. 힘 좀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공양 후 다시 적광전에 모인 불자들은 절을 이어갔다. 절을 시작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 적광전의 문을 열었다. 보온을 위해 설치한 비닐이 비를 맞은 것처럼 축 늘어져 있다. 적광전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는 상징이었다.

 

시간은 어느새 점심을 지나 저녁으로 향했다. 경내를 둘러 보는데 고심원 1층 법당에서도 절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살짝 열었다. 10명이 조금 넘는 불자들이 절을 하고 있다.

 


적광적 1만배

 

백련암에서 1년에 네 번 삼천배를 한다는 이들은 처음에는 직장의 극기훈련으로 삼천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40명이 첫 삼천배를 한 후 지금은 10여 명이 완전한 불자가 되어 함께 정진한다.

 

수미향 보살님과 대본인 보살님은 “가족들이 놀러 가자고 했지만 함께 절을 하러 왔다.”고 밝혔다. 이 동료 모임을 이끌고 있는 법해 거사님은 “우리 모두가 처음에는 불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삼천배를 하면서 절의 신묘한 매력을 알게 됐다. ‘절의 성지’ 백련암에서 하는 삼천배는 정말 신심을 솟구치게 한다.”고 전했다.

 

시간이 흘러 새벽이 찾아왔다. 1만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백련암 대중스님들도 같이 절을 했다. 1만배가 끝나고 대중들은 적광전 주변을 정리한 뒤 잠시 휴식을 취했다.

 


백련암 1만배 동참 대중 모습. 일부 대중만 촬영에 임했다.

 

그리고 새해 첫 공양을 떡국으로 해결했다. 따뜻한 떡국에는 가야산과 백련암의 기운이 듬뿍 담겨 있었다.

“신심(信心)으로 1만배를 성취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 1만배를 계기로 정유년 새해도 힘차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깨달음을 상징하는 닭처럼 모두가 공부에도 진전이 있으시고 또 원하시는 모든 일들이 잘 이루어 지기를 희망합니다.” 원택 스님의 새해 덕담을 끝으로 1만배 참석 대중은 만 24시간의 정진을 마무리했다.

 

가행정진(加行精進)의 삼천배

 

1만배 정진 불자들이 자리를 정리할 즈음, 부산 고심정사 앞에서는 대형버스 1대와 미니버스 1대가 백련암으로 출발했다. 70여 명의 고심정사 불교대학 불자들은 매년 그래왔듯 새해 첫날을 삼천배를 하며 보낼 예정이다.

 

가야산에 내린 불자들은 백련암으로 올랐다. 오랜만의 참배에 고심원부터 백련암 곳곳을 살펴보고 관음전에 짐을 풀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삼천배 준비를 시작한다.

 

오전 9시 30분이 되자 모든 대중들이 관음전에 모였다. 1만배를 한 적광전과는 확연히 다른 긴장감이 법당에 가득했다.

 

명각화 보살님의 당부가 이어졌다.
“처음 하시는 분들은 조금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절하다 쓰러지겠다는 마음으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옆 사람과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해 주시면 좋습니다. 내가 주저앉으면 옆 사람도 힘들어집니다. 어렵겠지만 모든 분들이 삼천배를 꼭 해내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대중들이 죽비에 맞춰 절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긴장감은 비장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삼천배에 처음 도전한 불교대학 기초교리반 박시흥 거사님은 “몸도 힘들고 여러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오늘은 삼천배의 분위기를 느껴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학과반 부회장 법인 거사님은 “1년에 두 번 세 번 하면 힘들고 재미없을 텐데, 딱 한 번 하니 재밌다.”며 웃는다.

 

이날 삼천배에는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적지 않았다. 엄마 정음화 보살님을 따라 온 아들 김동현 군은 “하다 보니 익숙 해진다.”며 땀을 닦아냈다.

 

진효길 보살님(박순옥)은 두 명의 언니와 동생 한 명과 함께 왔다.
“생전 어머니가 독실한 불자셨습니다. ‘문수행’이라는 법명을 가지고 신심 있게 기도하셨습니다. 어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네 자매가 모두 같이 왔습니다.” 진효길 보살님의 맏언니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절이 낯설지 않았다. 세 명의 동생들이 열심히 절에 다니고 있어 가끔 절에 간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삼천배는 세 번째입니다. 혼자 하면 힘들 것인데 자매들과 같이 하니 더 힘이 납니다. 하하.” 진효길 보살님은 “힘든 줄 모르고 한다.”고 덧붙였다. 불교 대학 불자들의 삼천배도 여법(如法)하게 마무리됐다.

 

절을 하는 대중들로 가득했던 백련암은 따뜻한 세밑을 보냈다. 날씨가 따뜻해서라기보다 대중들의 정진 열기가 가야산의 겨울바람을 밀어냈다.

 

삼천배 대중들까지 모두 백련암을 내려간 뒤 적광전 앞에 서서 주련을 다시 보았다. 성철 스님의 오도송이다.

黃河西流崑崙頂이여 日月無光大地沈이라
遽然一笑回首立하니 靑山依舊白雲中이로다.

황하수 서쪽으로 거슬러 흘러 곤륜산 정상에 치솟아 올랐으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도다.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섰네.

많은 대중들이 오간 백련암은 말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1만배에 동참한 한 불자가 던진 말이 귓전을 맴돈다.

 

“108배든 삼천배든 1만배든 절을 하는 심정으로 정치를 했다면 작년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좀더 하심(下心)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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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주
백련불교문화재단 부장. 현대불교신문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월간 <불광> 기자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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