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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마당]
가을비도 막지 못한 성철 큰스님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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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주  /  2016 년 11 월 [통권 제4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06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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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23주기 추모참회법회 현장을 가다 

 


 

 

부처님오신날에 만나는 등(燈)은 환희롭다. 정성이 가득 담긴 등을 통해 불자들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을 되새기곤 한다. 등은 나눔과 기쁨을 상징한다.

 

가을에 만나는 등은 거룩하다. 만나지 못했을 인연을 만난 것처럼 반갑기도 하다. 봄이 아닌 가을에 등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해인사 백련암이다. 평소 같았으면 해가 밝을 때 백련암에 도착했겠지만 성철 스님 열반 23주기 추모참회법회를 앞두고는 저녁에서야 백련암에 닿을 수 있었다. 하남에서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정심사(주지 원영 스님)에서 ‘검단산 불교문화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빛을 찾기 어려운 깊은 산중이어서 현저히 느린 속도로 가야산길을 달렸다. 긴장 끝에 백련암을 장엄한 등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을 보름달과 어울린 등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문구가 적힌 등은 역시 백련암과 잘 어울렸다. 적광전과 고심원을 참배하고 경내를 둘러봤다. 성철 스님 열반일을 앞둬서인지 열반송이 더 밝게 눈에 들어온다.

 

生平欺狂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
活陷阿鼻恨萬端
一輪吐紅掛碧山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백련암에는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추모참회법회를 준비하기 위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부산 고심정사에서 온 70여명의 불자들은 전각 곳곳에서 절을 하고 또 기도를 했다. 틈만 나면 정진하는 불자들의 모습이 이제 낯설지 않다.

 


백련 불자들이 관음전에서 삼천배를 하고 있다 

 

다만 절에 미리 도착해 실무를 챙기던 불자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았다. 10월 16일 예정된 삼천배가 비로 인해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긴장 속에 첫날밤을 보냈다.

 

10월 16일은 아침부터 잔뜩 흐렸다. 오전 8시경이 되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성철 스님 사리탑에 도착해 있던 불자들이 서둘러 백련암에 오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백련암 전각 곳곳에 짐을 풀기 시작했다. 삼천배는 백련암에서 해야 했다.

 

비는 오다 말다 했다.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했다. 비가 본격적으로 오기 전에 삼천배 시작을 앞두고 아비라 카페 회원들이 마당에 모였다. 모두가 축하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련암의 대표적 신행 단체인 ‘아비라’ 회원 중 두 명이 제3회 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에서 대상인 총무원장상과 바라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영예의 주인공은 황성희(법명 혜안월) 보살님과 정정희(법명 정명심) 보살님이다. 황성희 보살님은 ‘기적의 또다른 이름, 사랑’으로, 정정희 보살님은 ‘내 안의 무한한 힘’을 주제로 한 글을 각각 썼다. ‘경사’를 접하고 원택 스님은 백련암 불자들과 함께 영광을 나누고자 두 불자를 다시 한 번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우리 아비라 회원님들께서는 수행만 열심히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에서도 좋은 상을 받아 제가 더 기쁩니다. 두 보살님을 비롯해 아비라 회원님들은 물론 백련암 불자님들 모두가 기뻐할 일입니다. 오늘 날씨가 조금 흐리긴 하지만 여기 모인 여러분 모두가 삼천배를 잘 회향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비라 회원들을 격려하고 있는 원택 스님 

 

황성희 보살님은 예산 수덕사에서 열린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다가 절을 하기 위해 백련암에 왔다. 보살님은 “삶의 어려움을 신심으로 극복한 지금, 이제 더 이상 인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며 “아비라 회원님들과 앞으로 더 열심히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축하 자리 후 불자들은 고심원과 고심원 1층 장경각, 적광전, 관음전, 원통전, 정념당 등으로 흩어졌다. 한 사람 절하기도 좁은 천태전에도 불자들이 있었다. 자리를 구하지 못한 불자들은 백련암 마당에서 마음으로 함께 절을 올린다. 

 


삼천배 외호대중으로 참여한 고심정사 불교대학 출신 포교사들과 자리를 함께 한 원택 스님 

 
“지심귀명례~~~~~” 각 전각에서 절을 하며 내는 목소리가 화음을 이룬다. 절이 이어지자 외호 대중들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정덕심 보살님과 법생화 보살님은 물을 끓였다. 절을 하는 불자들이 휴식시간 틈틈이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또 생강, 대추, 배 등 6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약차’도 다시 끓인다. 소소해 보이지만 정성은 결코 작지 않았다.

 

고심정사 불자들로 구성된 포교사들은 각 전각별로 점심시간에 먹을 공양을 날랐다. 밥과 국, 김치 딱 3가지뿐이지만 손이 많이 간다. 복장을 갖춰 입은 불자들은 짝을 이뤄 각 전각을 맡았다.

 

고심정사 불교대학 출신의 정영 거사님은 “사리탑에서 삼천배를 했으면 제일 좋았겠지만 백련암에 모여 성철 큰스님을 생각하면서 하는 절도 의미가 있다.”며 “오늘은 제가 봉사를 담당하고 있으니 삼천배가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돕겠다.”며 웃었다.

 


10월 20일 아침 성철 스님 사리탑을 참배하고 있는 대중들의 모습. 

 

정념당에서 김치 배식을 담당한 고심정사 불교대학 대선행 보살님도 “보살님들과 거사님들이 절을 잘 마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비가 오지만 백련암의 분위기는 전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점심이 되자 오전 1000배의 절을 마친 불자들이 법복에 땀을 가득 안은 채 하나 둘 전각 밖으로 나왔다. 외호 대중들은 정성껏 배식을 했다. 전각 곳곳에 앉아 먹는 밥이 여느 식당의 밥보다 더 맛있는 것처럼 보인다. 땀을 닦고 배를 채운 불자들은 다시 각 전각으로 흩어졌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고심원 앞에 쳐 놓은 천막에서도 고였던 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삼천배는 가을비와 상관없이 계속됐다. 가야산은 이미 안개로 장엄이 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날씨도 점점 가을이 되어갔다. 전날까지만 해도 낮에는 제법 따뜻했지만 비와 함께 있으니 낮 날씨도 가을로 완전히 거듭났다.

 

오후 6시가 되면서 각 전각들에서는 삼천배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딸과 며느리, 8살 손녀, 5살 손자와 함께 대구에서 온 대천중 보살님은 잔뜩 고무돼 있었다. 


“성철 큰스님 계실 때부터 백련암에서 삼천배와 아비라기도를 했습니다. 오늘은 자리가 없어서 제대로 절을 못했지만 내일부터 열반일까지는 백련암에 머물며 절을 할 생각입니다. 절을 하면 ‘자기를 바로 볼 수 있어’ 좋습니다. 현재에 충실하게 되면서 제가 만든 현실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또 기도를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대천중 보살님은 대구 정혜사에서 스님들과 함께 매일 새벽예불을 올리며 108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만의 ‘일과’인 것이다. 아직 법명이 없는 며느리도 “어머님을 모시고 애들과 함께 오는 기도가 즐겁다. 어서 빨리 삼천배를 제대로 해서 법명을 받고 싶다.”며 기염을 토했다.

 


성철 스님 추모재에서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이 헌다 후 절을 올리고 있다. 

 

어둠이 깔리면서 주변을 정리한 불자들이 다시 하나둘 백련암을 떠나기 시작했다. 가야산 길을 따라 내려가는 불자들의 모습이 당당했다. 1000여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떠났지만 고심원에서의 절은 멈추지 않고 4일 4야 동안 계속됐다. 10월 20일(음력 9월 20일) 아침 추모참회법회는 마무리됐다. 서울, 부산, 대구, 마산, 하남, 제주 등에서 온 불자들은 릴레이 기도를 쉬지 않았다.

 

20일 오전 9시 사리탑 참배에 이어 10시에는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성철 스님 열반 23주기 추모 다례가 계속됐다. 해인총림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을 비롯한 대중들이 법당을 가득 메웠다. 흡사 1967년 같은 자리에서 있었던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에서처럼 대중들은 더 나은 수행과 정진을 다짐했다.

 

성철 스님이 세연을 다한 지 23년이 지났지만 백련 불자들의 신심과 원력은 이렇게 더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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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주
백련불교문화재단 부장. 현대불교신문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월간 <불광> 기자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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