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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임제록』 녹취를 받아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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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6 년 8 월 [통권 제4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02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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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낮 기온이 36도를 오르내리고 있는데 8월에는 더 뜨거운 폭염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나오면서 국민들의 주의를 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저에게는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소재’가 생겨서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지난 4월인가에 상좌 일덕 스님이 프린트 한 묶음을 가져와 저에게 내밀며 사연을 설명합니다. “스님, 이 유인물은 노스님의 『임제록』 강의를 정리한 녹취록입니다. 선방을 다니면서 또 소임을 살면서 틈나는 대로 정리하였습니다. 한 1년 6개월 정도 걸려서 제 귀에 들리는 대로 노스님의 말씀을 한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저 혼자서는 작업을 마무리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 녹취록을 일엄 스님에게 넘겨 다시 정리한 시간이 또 6개월 정도 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정리한 것이니 이제 완성하는 것은 스님의 몫인 것 같습니다.” 

 


중국 임제사 

 

그 말을 듣는 순간 뒷골을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 멍해지면서 녹취록을 받아든 손이 떨리는 듯 했습니다. 저는 『백일법문』 출간과 『명추회요』 출간으로 이제 큰스님에 관한 출판일을 다 끝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기도 했습니다. 성철 큰스님께서는 『임제록』 강의를 하셨는데 끝까지 마무리 하지 못하셨습니다. 양으로 보면 전체의 1/3 정도가 될 것입니다. 전체를 강의하신 내용도 아니고 또 다른 법문 책 출판과 같이 제가 녹취록을 정리해 보려고 하니 임제 스님의 말씀에 게송을 붙이는 후대의 여러 큰스님들의 게송을 설명하시는데 제가 도저히 녹취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 『임제록』 출간을 포기한 주된 이유였습니다. 

 

‘어록의 왕’이라는 『임제록』을 강의하신 큰스님의 뜻이 있으실 텐데 그것의 출판을 포기하는 제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그 작업을 못하고 떠나는 제 마음도 큰스님께 크게 죄송한 마음이 될 것이라고 마음속에 묻고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일덕 스님에게서 제가 포기했던 큰스님의 『임제록』 법문의 녹취록을 받아들게 되니 고맙고 감사하고 무어라 기쁨을 표할수가 없었습니다.

“우째 수좌가 그런 생각을 다 하게 되었노. 정말 수고하고 큰일 했다. 잘 정리해서 출판하게 되면 나도 너거 노스님께 죄송한 마음을 덜고 내려놓게 되겠제.” 

 

그리고 일엄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한문 실력이 없으니 게송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던데 그것을 어떻게 찾아 잘 정리하게 되었노?”

“예! 요새는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어 ‘시베타’라고 하는 한문 원전을 찾아보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단어나 한 문장만으로도 검색을 하면 원문을 다 찾아볼 수 있어서 일덕 스님 녹취록에서 단어를 찾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녹취록을 받아든 기쁨에 밤낮을 잊고 읽어 나갔습니다. 일덕 스님을 거친 녹취록이 일엄 스님의 손을 거치면서 정리가 돼 제가 좀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전체 1/3은 큰스님의 자세한 평석이 있지만 나머지 2/3는 비어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압박감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큰스님 생전 1989년 12월 15일에 <선림고경총서> 37권을 발행할 때 『임제록』과 『법안록』을 묶어 총서 12번째 권으로 구성해 초판을 발행했습니다. 그때 마침 일본 암파문고(岩波文庫) 『임제록』에 이두토를 성철 스님께서 달아두셨는데 원융 스님에게 부탁하여 『임제록』 원문에 토를 달아서 번역했습니다. 『임제록』은 어떤 관점으로 읽으셨나 하는 것은 후학들에게 일러주신 만큼 앞 부분은 큰스님 말씀하신 대로 평석을 따라가고 평석이 없는 부분은 큰스님의 토를 따라 요즘 말로하면 표점을 따라서 번역문을 정리하면 큰스님의 『임제록』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중국 임제사에 모셔져 있는 임제 스님 존상 

 

그래도 또 고마운 생각이 들어서 일덕 스님에게 “어떻게니 노스님 『임제록』을 녹취할 생각을 했느냐?”고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녹취할 생각으로 들은 것이 아니라 공부삼아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을 들어 보니까 『임제록』 내용을 확인한다는 것보다 노스님의 해석과 수좌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들이 간화선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 다른 법문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내용이어서 무심히 녹취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일엄 스님의 조력을 받아서 이만큼이나 하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저도 귀로 들은 것뿐이지 공부된 것은 없심더. 그러나 노스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이 간곡하시고 그 말씀들이 세상에 전해지면 또 다른 의미에서 노스님께서 수좌들에게 경책과 신심을 심을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두 달여 동안 우리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임제록』에 대한 책을 구해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종정을 역임하신 서옹 스님의 『임제록 연의』가 1989년 나왔고, 야나기다 세이잔의 『임제록』을 고려원에서 번역·출판(1988년 7월)하였고, 성본 스님의 역주로 『임제록』이 한국문화연구원(2003년 12월)에서, 김태완 박사의 『임제록』이 침묵의 향기(2015년 2월)에서, 동국대 종호 스님의 『임제선 연구』가 경서원(1996년 8월)에서, 종광 스님의 『임제록』 강의가 2014년 10월에 발행된 것을 참고하여 녹취록을 초고 수준으로 정리해 가고 있습니다. 

 

『백일법문 상·중·하』와 『성철스님 평석 선문정로』, 『본지풍광』과 그 평석집인 『무엇이 너의 본래 면목이냐 1, 2』권을 출판할 때와는 또 다른 어려움과 감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빈손으로 가면서 한으로 남을 한 가지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올 여름의 더위를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4년 8월에 ‘성철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찬불가 CD 2장을 내고 2015년에는 이를 다시 정리하여 CD 1장으로 낸 바 있는데, 그 중에 ‘참법문’이라는 이름의 큰스님 육성 법문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임제록』을 강의하신 첫날의 육성법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앞으로 『임제록』 연재에 앞서 그 내용을 인용해 볼까 합니다.

 


 

 

성철 스님이 상당하여 말하였다.

 

임제화상래(臨濟和尙來)라

필경여하(畢竟如何)오.

석가도퇴삼천리(釋迦倒退三千里)하고

파순웅거법왕좌(波旬雄居法王坐)라

 

임제 스님이 오신다.

 

마침내 어떠한가?

석가는 거꾸러져서 삼천리 밖으로 물러나고

마왕 파순이 법왕의 자리에 앉아 있구나.

 

억! 억!(성철 스님이 연이어 고함치셨다.)

 

예전 조사스님들이 늘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큰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나를 위해서 설파하지 않은 것을 귀하게 여긴다.”

이 말씀은 마음 깨치는 법문을 할 때는 대중들이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오직 본분사로만 제시할 뿐이지 절대로 해석을 하든가 해설을 하든가 설파를 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깨치는 화두 공부는 본시 설파할 수도 없지만 설사 해설한다고 해도 이익보다 사람들을 다 죽이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법을 거량할 때는 절대로 설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설파한다면 이것은 법문이 아니고 법을 다 부숴버리는 것입니다.

 

법문하시는 큰스님이 거룩하고 또 거룩하지만 그 도덕보다 더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직 본분사로만 사람을 상대할 뿐 한마디도 해설을 하든가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한 설파를 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조주 스님도 늘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약 근기를 보아서 법을 설한다면 저절로 삼승십이분교가 벌어진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본분사(本分事)로만 사람을 만날 뿐이다.”

본분사로만 사람을 대할 뿐이지 절대로 근기를 보아서 설파를 하든가 해설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선불교의 근본 생명입니다.

 

내가 해인총림 방장이 되어서 몇 해 동안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한다고 이런 말 저런 말을 더러 해왔는데 오늘부터는 방침을 좀 고치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몇 해를 상당법문식으로 법문을 했는데, 몇 해를 해봐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대중들이 근본법은 아니지만 우리 귀에 좀 담기게 해줬으면 어떨까 하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말이 많이 있어도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늘 얘기했는데, 오늘부터는 내가 『임제록』을 가지고 평창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임제 스님의 법문의 골수를 설파한다거나 해설을 한다거나 이러지는 않습니다. 임제 스님과 같이 확철히 깨쳐야만 임제 스님의 법문을 알 수 있는 것이지, 그냥 말만 들어서는 모르는 것입니다.

 

설사 모르지만 임제 스님이 이런 법문을 하고 저런 법문을 했다는 것을 소개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강만 좋을 것 같으면 날마다 하겠지만, 아니면 대엿새의 간격으로 했으면 좋겠지만, 나는 내 건강에 맞추어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보름마다 상당법문 시간에 『임제록』을 평창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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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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