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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법상종의 교판과 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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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9 년 10 월 [통권 제78호]  /     /  작성일20-05-29 10:15  /   조회5,20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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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성균관대 초빙교수 

 

중국불교는 교판敎判이 확립되면서 종파불교의 토대가 확립된다. 교판이 완성된 체계로 정리된 것은 수나라 때 천태지의에 의해서다. 지의는 당시 남삼북칠南三北七로 불리던 10개의 교판을 종합해 오시팔교로 완성했다. 이렇게 확립한 천태교판은 경전과 불교사상을 체계화하여 종파불교의 토대를 확립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삼시교판

 

여기에 더해 천태교판은 중국불교의 통합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지의가 참조한 남삼북칠에서 남과 북이 의미하는 것은 남조와 북조를 말한다. 당시 중국은 호족들이 지배하는 북조와 한족이 지배하는 남조로 분리되어 있었다. 불교 역시 정치적 상황에 의해 남북조로 갈라져 있었다. 천태교판은 서로 다른 분위기로 발전하던 중국불교를 통합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처럼 수대에 천태교판이 성립되었지만 법상종은 자신들의 교학에 부합하는 삼시교판을 새로 확립한다. 교판의 1차적 의의는 경전을 분석하여 교상敎相을 분류하고 깊이를 나누는 것이지만 최종 목적은 자파의 종지가 되는 경전이 최고의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법상종은 『해심밀경』을 근간으로 하는 종파이므로 삼시교판은 유식의 관점에서 경전을 분류하고, 『해심밀경』을 최고의 경전으로 분류하는 교리체계라고 할 수 있다.

 

삼시교판은 『해심밀경』의 내용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 경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 시기로 구분한다. 제1시는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설하는 것으로 나[我]라는 주체는 없지만 객관 대상인 법法은 존재한다고 설한 시기다. 비록 자아의 공은 알았지만 법의 실재를 인정하기 때문에 유론有論에 해당한다. 제2시는 자아[我]는 물론 법法까지 공空하다는 내용이다. 아와 법이 모두 공하다고 보기 때문에 무無에 해당한다. 끝으로 제3시는 법의 실체가 있다는 유有도 아니고 모든 것이 텅 비었다는 공空도 아닌 중도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삼시교판은 이와 같은 삼시설에 근거해 법상종 사상을 중도교中道敎로 분류한다. 법상종은 유무라는 극단에 빠지지 않고 부처님의 정법인 중도를 바르게 계승했다는 것이 삼시교판의 요지인 셈이다. 따라서 삼시교판을 살펴보면 법상종의 중도설을 파악할 수 있는데, 성철스님은 규기窺基의 『성유식론술기』를 토대로 삼시교판에 나타난 중도사상을 조명한다.

 

제1시 유교有敎의 아공법유

 

“부처님이 가르침을 시설할 때에 근기에 따라서 베푸셨으니, 근기에 세 종류가 있어 같지 않다. 그러므로 가르침도 세 시기를 따라 또한 다르다. 모든 중생의 무리가 무명에 눈이 멀어 미혹을 일으켜 업을 지어서 자아가 있다고 집착한다〔迷執有我〕. … 정각을 이루고서 선인녹원에서 사제의 법륜을 굴려 아함경을 설하셨다. 그리하여 아유의 집착을 제거해서〔除我有執〕 소승의 근기들이 점차적으로 성인의 자리에 오르게 하시니, 저들이 사제법문을 듣고 비록 내가 있다는 어리석음은 끊었으나〔雖斷我愚〕, 모든 법에는 미혹되어 실유라고 집착한다〔迷執實有〕.” - 『성유식론술기』

 

규기의 설명에 따르면 법상종은 중생의 근기를 세 등급으로 나눈다. 부처님은 그런 중생의 근기에 맞춰 세 시기로 나누어 깊이를 달리하는 법을 설했다. 그 중에 제1시는 하근 중생들을 위한 법문이다. 하근 중생들은 자아[我]의 실체가 있다는 아집에 매몰되어 생사윤회의 고통을 받는다. 부처님은 그들을 위해 초전법륜에서 『아함경』을 설하여 아집에서 벗어나게 하고, 점차적으로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한 것이 제1시의 내용에 해당한다.

 

그런데 중생들은 비록 자아가 있다는 어리석음은 끊었지만〔雖斷我愚〕, 여전히 대상에 미혹되어 법法은 실재한다는 법집法執에 사로잡혀 있다. 아공我空은 깨달았지만 법공法空을 깨닫지 못하고 아공법유我空法有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1시의 가르침을 받은 중생들은 여전히 유견有見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철스님은 이와 같은 법상종의 삼시교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부처님은 초전법륜에서 아공만 설한 것이 아니라 법공까지 설하여 중도를 일깨웠다는 것이다. 법상종은 삼시라는 도식적 인식에 사로잡혀 초전법륜을 수준 낮은 가르침으로 분류한 것이다. 성철스님은 불법에 대한 이런 이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공법유라는 유견은 초전법륜의 오류가 아니라 부파불교 시대에 나타난 왜곡된 교설일 뿐이라는 것이다. 부파불교의 논사들이 유견에 입각해 사제법문을 해석하면서 부처님의 본지를 왜곡한 것인데 그것을 아함의 허물로 인식한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제2시 공교空敎의 유무변견

 

“세존께서 법유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기 위하여 다음으로 영축산에서 모든 법이 공하다는 것을 설하시니〔說諸法空〕, 이른바 『마하반야경』 등이다. 중근기의 중생이 소승을 버리고 대승으로 들어가게 한 것이다. 저들은 세존이 비밀한 뜻으로 무를 설하여 유를 타파하는 것〔說無破有〕을 듣고는 이제二諦를 뽑아 없애서 성과 상이 모두 공하다는 것〔性相皆空〕으로 위없는 도리를 삼았다. 이로 말미암아 이승二乘의 성현들이 서로 유와 공에 집착〔互執有空〕하여 그릇됨이 다투어 중도에 계합되지 못하였다〔未契中道〕.”  - 『성유식론술기』

 

제2시는 중근기 중생에 대한 가르침에 속한다. 부처님은 제1시의 가르침을 통해 아집은 끊었지만 여전히 법집에 사로잡혀 있는 견해를 타파하기 위해 영축산에서 마하반야경을 설하신다. 이를 통해 소승적 유견을 버리고 대승의 공견으로 들어오게 했다. 하지만 그들은 부처님께서 무無를 통해 유有를 타파하는 법문의 의미를 곡해하여 제법의 성性과 상相이 모두 공하다는 변견에 매몰되고 만 것이다.

 

반야경을 듣고 법이 실재한다는 유견에서 벗어났지만 이번에는 공견에 매몰되는 또 다른 극단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승적 유견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대승적 공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서로 유와 무에 집착하여 논쟁을 일삼으며 중도의 진리에 계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성철스님은 제1시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의 비판을 제기한다. 경전을 도식적으로 구분하면서 초전법륜과 반야경을 모두 변견으로 곡해했다는 것이다. 불교사의 흐름은 그렇게 나타날 수 있지만 부처님의 법 자체에는 그런 한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부파교단에서 나타난 역사적 담론을 부처님의 설법으로 곡해하면서 생긴 오류라는 지적이다.

 

제3시 중도교의 만법유식

 

“여래가 공과 유의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 세 번째 시기에 요의교인 『해심밀경』 등을 연설하여 모든 법이 오직 식〔唯有識〕뿐이라는 것을 설하셨다. 그리하여 마음 밖에 법이 없다는 것〔心外法無〕으로 첫째의 유집을 부수고〔破初有執〕, 안으로 식이 없지 않다는 것〔非無內識〕으로 모든 것이 공하다는 집착도 버리게 하였다. 이리하여 유・무 양변을 벗어나〔離有無邊〕 바르게 중도에 머무르게 하셨다.”    - 『성유식론술기』

 

세 번째 시기는 가장 수승한 중생들을 위한 중도교설을 설한 때이다. 제3시에서 부처님은 유와 공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 『해심밀경』을 설하여 중도사상을 천명했다. 『해심밀경』은 ‘모든 것이 오직 식만 있을 뿐 객관적인 경계는 없다’는 유식무경唯識無境을 설파한다. 모든 존재는 식의 소산일 뿐 객관세계는 없다고 보기 때문에 유식종唯識宗이라고도 한다.

 

법상종은 유식무경이라는 명제를 통해 아집과 법집이라는 두 가지 유집有執 모두 부정한다. 첫째 심외법무心外法無로 대상에 대한 유집을 타파한다. 마음만 있고 객관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비무내식非無內識으로 아무 것도 없다는 공집空執을 타파한다. 모든 대상은 공하지만 안으로 식이 존재함으로 아무것도 없다는 공도 부정된다.

 

결론적으로 법상종은 소승의 유견과 대승의 무견을 동시에 타파하는 중도의 가르침이 된다. 그리고 그런 중도의 진리를 설한 경전이 『해심밀경』이므로 법상종이 가장 수승한 종파라는 결론에 도달함을 알 수 있다.

 

성철스님은 규기의 『성유식론술기』를 통해 법상종 사상을 소개하지만 법상종의 한계도 분명하게 지적한다. 법상종 사상은 도식화된 상相에 집착하는 교설이라는 것이다. 천태종이나 화엄종과 같이 유와 공이 상즉상입相即相入하는 원융무애한 내용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완전한 중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법상종은 화엄종의 현수법장 등에게 비판을 받으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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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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