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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세계]
부처님 교화기 미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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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19 년 6 월 [통권 제74호]  /     /  작성일20-05-29 10:40  /   조회5,03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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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동국대 겸임교수·미술사

 

고대로부터 사찰에서는 불사佛事 할 때 보시布施를 권하는 권선문勸善文을 가지고 시주자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으로 길을 나섰다. 권선문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야기는 코살라국의 제일가는 부자였던 급고독 장자가 기원정사를 부처님께 보시한 에피소드와 어린 아이가 부처님께 흙을 보시한 인연으로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급고독 장자와 어린 아이가 훌륭한 스승인 부처님을 만나 보시를 행한 에피소드는 후세인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오랜 전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강가로 나아가셨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주먹만한 돌을 집어 물 속에 던지면 떠오르겠느냐, 가라앉겠느냐?”

제자들이 대답했다.

“돌은 가라앉아서 물 밑에 닿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좋은 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사방 세 자씩 되는 어떤 돌이 있는데, 그것은 물 위에 바짝 닿아서 강을 건너도 물에 젖지 않으니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

제자들은 그 뜻을 알지 못해 부처님께 여쭈었다.

“왜 물에 젖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인연 때문이다.”

어떤 것이 훌륭한 인연의 배[船]인지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비유로써 말씀하신 것이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이는 온갖 고통을 피할 수가 있지만, 그릇된 스승을 만나는 이는 악한 일을 익혀 온갖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후세 사람들에게 말씀을 보인 것이니 깊이 사유해야 할 것이다(『천존설아육왕비유경天尊說阿育王譬喩經』).

 

불교 최초의 절은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보시한 죽림정사와 코살라국의 급고독 장자가 기증한 기원정사이다. 사위성의 부자 상인 급고독 장자[Sudatta, 수달다須達多]는 우기에 3개월 내지 4개월 동안 한 곳에 머물러 수행하는 우안거雨安居에 부처님께서 머물 수 있도록 승원을 보시했다. 부처님은 30여 회의 우안거 중 기원정사에서 19회를 보냈다고 전한다.

 

기원정사를 보시한 급고독 장자

 

왕사성에서 부처님을 초대하고 식사 준비에 분주한 처남으로부터 부처님 이야기를 들은 급고독 장자는 다음 날 부처님을 뵙고 귀의했다. 사위성으로 돌아온 그는 부처님께서 머물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드디어 찾아낸 곳이 코살라국의 태자인 제타Jeta가 소유한 동산이었다. 제따 태자에게 동산을 팔 것을 간청하자 그는 황금으로 동산을 덮는다면 팔겠노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사위성 최고의 부자 상인 급고독 장자가 황금을 가져다 동산에 깔기 시작하자 제따 태자는 그 이유를 물었다. 급고독 장자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위해 절을 짓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제따 태자는 급고독장자에게 동산을 주기로 약속하고, 동산의 입구는 자신이 문을 세우고 기원정사[제따와나라마, Jetavanārāma]라는 이름을 새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 사위성 사람들은 급고독 장자를 고독한 이들에게 물자를 공급해주는 사람 즉 아나타삔다까[Anāthapiṇḍika, 급고독給孤獨] 장자라 하고, 제따 태자의 동산에 세운 절을 기수급고독원祈樹給孤獨園 또는 기원정사라 불렀다(사진 1). 

 

급고독 장자가 기원정사를 부처님께 보시한 이야기는 기원전 1세기 경에 제작된 성도지 보드가야 대탑(사진 2)과 바르훗 대탑의 난간에 잘 표현되어 있다(사진 3-1, 2). <사진 2>는 보드가야 대탑을 보호하는 울타리에 표현된 것으로 네 그루의 나무는 제타 태자가 소유한 동산을 상징한다. 두 명은 동산에 황금을 깔고 있으며 황금을 운반하는 인물은 황금 바구니를 어깨에 맨 채 힘겨운지 왼손을 허리에 대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사진 3-2>는 바르훗 대탑 난간에 표현된 것으로 오른쪽에는 제따 태자의 동산을 암시하는 세 그루의 나무와 급고독 장자의 황금을 실은 수레를 끌고 왔던 두 마리의 소가 주저앉아 있다. 황금을 동산에 깔고 있는 두 명의 인물은 서로 마주보며 앉아 있고, 두 명은 수레에 실린 황금을 동산으로 운반하고 있다. 주인공인 급고독 장자는 화면 중앙에 두 번 표현되었다. 소 뒤에 선 채로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있는 인물과 보시를 상징하는 황금주전자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이 급고독 장자이다. 왼쪽의 아치형 건물과 나무는 부처님을 상징으로 나타낸 것이며, 아치형 건물 뒤에는 6명의 천신들이 급고독 장자의 보시를 찬탄하고 있다. 

 

 

사진 1. 기수급고독원祈樹給孤獨園 또는 기원정사.
 

 

사진 2. 기원정사의 보시, 기원전 1세기, 보드가야 출토, 인도 보드가 야고고박물관. 

 

부처님 발우에 흙을 보시하는 아이 

  

부 처 님 께 서 는 죽림정사에 계실 때 날마다 왕사성 시내로 탁발托鉢을 하러 나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흙을 가지고 놀던 두 아이를 만났다. 한 아이는 덕승德勝으로 가장 집안이 좋은 귀족의 아들이었고, 다른 한 아이는 무승無勝으로 두 번째로 집안이 좋은 귀족의 아들이었다. 이 두 아이가 흙을 가지고 노는데 흙으로 성城을 만들고 성 가운데 다시 집과 창고를 만들고는, 흙으로 만든 보릿가루를 창고 안에 쌓았다. 

 

부처님을 보자 덕승은 부모님이 보시하는 모습을 흉내내어 흙을 부처님의 발우에 넣으면서 “이것은 보릿가루다”라고 이야기했다. 덕승 동자는 흙을 보시하고는 “장차 저로 하여금 천지를 덮어 공양을 베풀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발원했다. 

덕승 동자의 행위를 보신 부처님이 미소를 짓자 아난이 그 연유를 여쭈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한 뒤 백년 후에 이 어린아이는 마땅히 전륜성왕이 되어 화씨

 

 


 

사진 3-1. 기원정사 보시가 표현된 바르훗 탑 난간. 

 

  

사진 3-2. 기원정사의 보시, 바르훗 탑, 기원전 1세기 경, 콜카다 인도박물관.

 

성[花氏城, 오늘날의 파트나]에서 법을 다스리는 아서가阿恕伽라는 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사리를 나누어 8만4천의 보탑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풍요롭고 이익 되게 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아육왕전』 제1권에 전하는 것으로, 아서가왕은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야 제국의 아소카왕을 의미한다. 

 

어린아이가 흙을 보시한 이 이야기는 중국의 운강석굴을 비롯한 여러 석굴 사원과, 불탑의 표면에 즐겨 새겨지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우리나라 『삼국유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아소카왕이 전생에 어린 아이였을 때 부처님께 바친 흙에 대한 이야기는 『아육왕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도 보인다. 특히 『아육왕경』 제2권에는 우파굽다를 만난 아소카왕이 그의 몸이 부드러움을 찬탄하자 “나는 수승한 공양으로써 불·세존께 공양했으나 왕이 흙[모래]으로 여래께 받들어 보시한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대답한 이야기가 있다. 아소카왕은 “나는 옛날에 아이의 마음으로 흙[모래]을 부처님께 바침으로써 복전福田을 만났으며 이 때문에 지금의 왕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대화는 아소카왕이 부처님께 흙[모래]을 보시한 공덕으로 현재의 왕이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간다라 불전미술 가운데 어린아이가 부처님 발우에 흙을 보시하는 에피소드를 표현한 작품은 여러 점이 남아 있는데, 아소카왕의 전생담이 아니라 쿠샨제국 카니시카왕의 전생 이야기를 표현된 것으로 추정된다. 파키스탄의 스와트박물관에 소장된 「어린아이의 흙 보시」 불전도(사진 4)는 중앙에 발우를 내민 부처님과 삼각형의 모자와 원피스를 입고 흙을 보시하는 어린 아이가 표현되었다. 

 

옷을 입지 않은 합장한 어린 아이와 아이들의 어머니로 짐작되는 여인이 부처님께 흙을 보시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의 얼굴이 깨진 금강역사는 금강저를 들고 부처님을 호위하고 있으며, 금강역사 뒤의 승려는 부처님과 함께 죽림정사를 나섰던 아난존자이다. 삼각형의 모자와 원피스를 입고 흙을 보시하는 어린 아이의 복장은 간다라 미술을 꽃피운 쿠샨인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북인도에 위치한 간다라에서는 흙을 보시하는 아이가 아소카왕이 아니라 쿠샨제국의 가장 위대한 왕인 카니시카 대왕임을 의미한다. 부처님께 시주하는 인물이 바로 카니시카임을 강조한 표현법으로 스와트박물관의 <사진 4>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스와트박물관 소장의 <사진 5>의 흙을 보시하는 어린 아이는 짧은 원피스를 입고 있고, 뒤에 서 있는 어린 아이 역시 두 손으로 흙을 들고 짧은 하의下衣를 걸치고 있다. 그 뒤에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또다른 어린 아이가 표현되어 2명이 아니라 3명의 어린 아이가 등장하고 있다. 왼손으로 금강저를 들고 오른손은 허리에 대고 서 있는 금강역사는 얼굴은 파손되었지만 단련된 근육질의 상체를 통해 헤라클레스 모습을 차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기원정사를 보시한 급고독 장자 이야기와 어린 아이였을 때 부처님께 흙을 공양올린 아소카왕의 전생 에피소드는 훌륭한 스승이신 부처님을 만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선연善緣으로 회자되고 있다. 부처님과 관련된 보시에 관한 두 에피소드는 불교미술의 주제로 또는 시주를 권하는 권선문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 불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 4. 어린아이의 흙 보시, 간다라(2~3세기), 파키스탄 스와트박물관.

 

 

 

사진 5. 어린아이의 흙 보시, 간다라(2~3세기), 파키스탄 스와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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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간다라 불전도상佛傳圖像의 연 구」로 문학박사학위 취득,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불교미술전공 초빙교수, 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 저서에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 기록 연구』, 공동 저서로 『치유하는 붓다』·『간다라에서 만난 부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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