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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산책]
누가 세월 밖의 노래를 따라 부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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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2019 년 6 월 [통권 제74호]  /     /  작성일20-05-29 10:41  /   조회4,89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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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문학평론가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비롯하여 2,200여 수의 많은 시를 남겼다. 그는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보위에 오른 수양대군(세조)의 계유정란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통곡하고 유서를 모두 불태운 뒤,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법명을 ‘높고 눈 덮인 산’이라는 의미의 설잠雪岑이라 하였다. 이후 그는 전국을 유랑하고 은거하면서 잘못된 시대적 상황에 대해 울분을 토하고 그것을 시문학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삶을 산 설잠의 시론의 핵심은 선심禪心이 곧 시심詩心이고, 시심詩心이 곧 선심禪心이다. 다음의 시는 설잠의 이러한 선심의 시적 변용을 가장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시구는 언제나 한가로움 속에서 얻고 시구매인한리득詩句每因閑裏得

선심은 거의 다 고요함 속에서 끌리네. 선심다향정중견禪心多向靜中牽

청산은 억지로 어리석은 이를 보고 웃고 청산강대치연소靑山强對癡然笑

명월은 누가 나누어 작은 샘에 떨어졌나? 명월수분낙소천明月誰分落小泉 

 

시심과 선심은 모두 한가롭고 고요한 속에서 얻어 질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때문에 설잠의 시가 지향하는 근원적인 경지도 바로 선이 추구하는 세계와 다르지 않다. 청산은 항상 여전히 말없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억지로 어리석은 자를 보고 웃을 뿐이다. 그리고 밝은 달을 누군가가 나누어 작은 우물에 떨어뜨린 것으로 보고 있는 화자에게 시와 자연은 또 다른 자아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한가로움과 고요 속에서 배태되고 형성된 설잠의 선심의 시심화詩心化는 다음의 시에서 한결 도드라져 보인다. 

 

그대 푸른 등평상을 두들기게 여격녹등상汝擊綠藤床

나는 노래 한 곡조 지으리라. 아작가일장我作歌一章

그대와 나 각기 보전하니 이여각보도爾余各保到

신세가 모두 별빛 같네. 신세여성망身世如星芒

 

별빛처럼 영롱한 선심을 시로 담아내고 싶다는 소망이 담지되어 있다. 화자는 나와 상대가 모두 진솔한 마음을 가질 때 모두 별빛 신세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 세상 만물은 저마다 지켜야 할 질서를 무너뜨리거나 서로 침해하지 않으며 상생하고 어울리며 살아간다. 그러니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간격도 없고, 각자의 위치에서 상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즉상입’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설잠은 두두물물마다 본 모습을 지니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사사무애의 화엄세계를 거기에서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의 경지요 ‘상즉상입’의 화엄적 인식이다.

 

매화는 봄의 전령사로 불린다. 황벽희운(814~850)은 “뼈 속에 스며드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 /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 얻을 수 있으리오[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番寒徹骨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라며 매서운 추위 속에 피어난 매화 향기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차가운 이른 봄, 그 추위에 오히려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를 찾아 나서는 일은 매화의 모습을 닮고자 하는 설잠의 심경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눈길로 그대 찾아 홀로 지팡이 끌고 가니 

설로심군독장려雪路尋君獨杖藜

그 속의 참된 뜻 있어 깨달았다 도로 매혹되네. 

개중진취오환미箇中眞趣悟還迷

유심이 도리어 무심의 부림을 당하여 

유심각피무심사有心却被無心事

세 별 지고 달이 질 때 까지 배회하였네. 

직도참횡월재서直到參橫月在西

 

자신의 호를 ‘매월당’이라고 했던 설잠에게 매화와 달은 중요한 시적 소재였다. 실로, 그에게 달빛이 없는 매화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매화는 어린 시절 그 자신이 추구했던 현실이었고, 달빛은 매화를 한층 고상하게 만드는 일종의 빛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는 탐매행探梅行을 즐겨하고 많은 탐매 시를 지었다. 눈 덮인 매화나무 가지에 처음 피는 매화를 찾아 나선 화자는 자신을 유심有心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마음속에 근심이 꽉 찬 상황을 그렇게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비해 매화는 무심無心의 존재, 즉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데 화자는 그 무심한 존재(매화)에게 부림을 당하여 저녁별이 지고 서녘에 달이 질 때 까지 배회하고 말았다. 무심한 존재에게 부림을 당했다고 했는데, 이는 실제로 부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심한 존재에게 매혹되어 자신도 모르게 무심의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어지러운 시대 상황에서 취하는 설잠의 ‘자기 확인’의 지난至難한 구도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설잠은 매화의 한결같은 높은 지조에 어느 꽃도 감히 넘나 볼 수 없는, 맑고 그윽한 자태를 이렇게 찬탄하고 있다. 

 

꽃필 때 높은 품격 꽃 중에 빼어나고 화시고격수군방花時高格秀郡芳

열매 맺어 조화이루면 음식 맛 향기롭네. 결자조하정미향結子調和鼎味香 

한결 같은 큰 절개를 지니고 있어 직도시종존대절直到始終存大節

꽃들이 어찌 감히 그의 곁을 엿보리오. 중방나감규기방衆芳那敢竅其傍 

 

매화는 청빈하고도 깐깐한 선비의 기상을 표상한다. 설혹 매화는 가난하여도 일생 동안 그 향기를 돈과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설잠은 매화의 일생에 자신의 청빈한 정신을 비유하고 있다. 매화꽃이 필 때 그 품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꽃향기가 지고 난 다음에 그곳에 열매가 자라 익으면서 꽃향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그 열매[매실梅實]로 간을 맞추면 음식 맛이 한결 향기롭다는 것이다. 매실로 음식 맛을 조화롭게 하는 것은 원숙한 경지에 이른 재상이 원융圓融의 관계를 이끌어 내는 모습을 말한다. 이는 곧 설잠이 지향하고자 했던 원융의 이상적인 삶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설잠은 자신의 방랑을 스스로 ‘탕유蕩遊’라고 했지만 그것은 엄연히 자신의 본래성을 찾는 고독한 방랑길이었다. 설잠이 운수행각을 하면서 좋은 경치를 만나는 대로 시를 읊고 구경도 하고자 했던 것은, 현실의 구속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시정詩情과 선적 사유의 절묘한 결합은 운수시의 아름다움을 낳는다. 설잠의 이러한 자연친화적 선적 사유는 그가 금오산 용장사에 머문 지 1년쯤 되는 어느 날, 선정에 드는 모습에서 잘 표출되고 있다. 

 

창에 가득 비친 붉은 햇살 사람마음 허락하니 

만창홍일가인심滿窓紅日可人心

방장의 유마 거사 도력이 심오하구나. 

방장유마도력심方丈維摩道力深

말하지 않고 옷깃 여며 엄히 꿇어앉는데 

불어정금위좌처不語正襟危坐處

뜰에 가득한 솔 소리 이것이 진정한 벗이라네. 

일정송성시지음一庭松聲是知音 

 

유마거사의 ‘침묵’의 고사를 인용하여 깨달음을 소나무 소리에 의탁하여 지은 백미의 시이다. 첫 행에서는 화자는 창에 가득 비친 붉은 해를 바라보고 마음의 평상심을 느낀다. 2행에서 ‘유마거사의 도력이 심오하다’고 한 것은 유마거사가 수보리존자의 물음에 ‘침묵’한 것이 천둥보다 큰 울림이었다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고사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곧 깨달음이란 언어로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한계성을 말한다. 3행의 ‘말하지 않고 옷깃 여미어 꿇어앉는다’는 것은 무설설無說說의 가르침, 곧 교외별전 敎外別傳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 화자는 선정에 들어 있던 중 불어오는 솔바람 소리가 뜰에 가득하고, 이는 곧 친구의 소리라고 언급하고 있다. ‘솔 소리’를 벗이라고 여기는 것은 자연과 하나 되는 친연성을 말해준다. 참으로 선심과 시심이 멋진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시이다.

 

깨달음의 경지에서 보면, 일체의 분별과 망상이 없고, 구속 또한 없으며, 진속일여의 경지 그대로이다. 그래서 여여한 삼라만상은 모두 서로 조응하며 하나로 된다. 설잠의 시 세계에서도 자연은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연과 조화로움을 지향하는 이상이다. 이처럼 탈속하여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설잠의 세외지심世外之心의 선심은 다음의 시에서 한결 깊어진다. 

 

달이 밝아 그림 같은 산사의 밤 월명여화산가야月明如畵山家夜

홀로 앉은 이 마음 맑은 물 같네. 독좌징심만뢰공獨坐澄心萬籟空

누가 세월 밖의 노래를 따라 부르나? 수화무생가일곡誰和無生歌一曲 

물소리가 길게 솔바람에 섞이네. 수성장시잡송풍水聲長是雜松風

 

달 밝은 산사의 맑고 그윽한 공적空寂함이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되고 있다. 텅 빈 고요 속에 외로이 선정에 든 산승의 마음은 물처럼 맑고, 세월 밖의 노래 소리인 겁외가劫外歌가 들려온다. 그야말로 성률도 없는 무생곡無生曲이다. 그런데 산승은 세월 밖에서 들려오는 솔바람 소리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담아내는 무정설법을 듣고 있다. 참으로 자연과의 일체감을 이룬 시정화의詩情畵意가 풍부하고 선지가 잘 내재되어 있는 시이다. 이와 같이 자연과 하나 되는 탈속한 정신은 깨달음을 지향하는 선의 세계에서는 ‘평상심이 곧 도’라는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든 성색과 사물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고 탈속무애하게 살아가는 설잠의 삶은 불이선不二禪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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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전 국제포교사회 회장. 전 한국동서비교문학회 부회장, 저서로 <선시의이해와 마음치유>, <불교 설화와 마음치유>, ><숲 명상시의 이해와 마음치유>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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