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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종경록'의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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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8 년 4 월 [통권 제60호]  /     /  작성일20-05-29 12:27  /   조회5,42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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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100권-9판은 ‘『종경록』의 이익’이라는 제목 아래 시작된다. 100권의 『종경록』을 요약한 『명추회요』 역시 제일 마지막 권에 이르렀으니, 이 책을 다 읽으면 어떤 이익이 있는지를 최종적으로 따져보는 것 같다. 그런데 제목에 나온 이익이라는 말에 필자의 마음이 잠시 솔깃해지는 것을 보면, 이 단어에 잠재된 힘의 무게가 보통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불경에 따르면, 우리는 욕계(欲界)에 살고 있다. 욕계란 욕심에 묶인 세계로서, 욕심에 사로잡혀 뭔가를 간절히 구하는 중생들이 사는 장이다. 이 세계 사람들은 이익이 없으면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아마 사람들의 이런 마음 상태를 고려해서 『종경록』을 읽을 때 생기는 이익을 마지막에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책에는 『종경록』을 읽고 이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부류에 대해 ‘도(道)를 흠모하는 이들’이라고 미리 밝혀두었다. 도는 다름 아닌 길이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가 나오기 때문에, 길은 수단과 목적을 함께 드러내는 말로 사용된다. 산 속에 난 토끼 길을 따라가면 굴속에 있는 토끼를 잡을 수 있듯, 부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최종 목적지인 해탈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길을 흠모하는 이들에게 『종경록』은 분명히 이익을 준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적인 내용이다. 다만 연수 선사는 『종경록』의 이익을 말하기에 앞서 몇 가지 문답을 더 펼쳐놓고 있는데, 이를 먼저 살펴보자.

 

진흙 소가 물 위로 간다

 

연수 선사는 선사로서는 매우 드물게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이는 그가 짊어진 시대적 사명이 컸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불법을 후대에 온전히 전해야 했기 때문에 온갖 수고로움을 무릅쓰면서도 『종경록』과 같은 긴 책을 펴냈던 것이다. 선사는 매우 친절한 분이어서 가급적 부처님과 조사들이 남긴 말씀을 통해 불법의 대의를 드러내고자 하지만, 어떤 경우는 선의 전통에 입각하여 말과 생각의 길을 딱 막아버리기도 한다. 『종경록』의 이익을 언급하는 『명추회요』 100권의 내용을 보면 짧은 문답과 게송이 연이어서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연수선사가 장치해둔 일종의 관문(關門)인 셈이다. 771쪽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보자.

 

【물음】 필경에는 어떠한가?

【답함】 필경이랄 것도 없다.

【물음】 이것으로 밝게 통달한 후에는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답함】 누구에게 실천하라고 하는가?

【물음】 단멸에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답함】 오히려 상주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단멸하겠는가.

【물음】 최후의 한 말씀을 청하노라.

【답함】 허깨비가 환사(幻士)에게 묻고

 

골짜기의 메아리가 샘물 소리에 답한다.

나의 종지를 통달하고자 하는가.

진흙 소가 물 위로 가는구나.

 

위와 같이 신속하게 이어지는 문답을 보면, 질문하는 사람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여전히 잔뜩 있음이 느껴진다. 100권의 분량 동안 계속 묻고 답을 들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것이다.

 

처음의 물음에 나온 ‘필경’이란 가장 궁극적인 것을 가리킨다. 이는 100권 마지막에 이른 상태에서 ‘가장 궁극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물어보는 것이다. 선사는 “그럴 만한 것이 없다”고 짧게 답하였다. 그러나 묻는 사람은 여전히 납득이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계속해서 그간 배운 것을 통달한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실천해야 할지를 묻는다. 이에 대해서도 선사는 “누구에게 실천하라고 하는가?”라고 되묻고 있다.

 

깊은 강물은 소리가 나지 않는 것처럼, 이치에 통한 이들은 ‘나’라는 자취 역시 털어버리는 것 같다. 하지만 묻는 자는 마치 얕은 개울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듯 여전히 ‘나’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보인다. 실천할 사람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단멸(斷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지 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선사는 자신의 입장이 상주(常住)와 단멸(斷滅)의 두 극단을 떠나 있음을 다시 부각시킨다. 아마 이런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을 테지만, 이쯤 해서 묻는 사람도 진짜로 ‘최후의 한 말씀’을 청하는 것으로 자신의 물음을 마무리하고 있다. 선사 역시 구구절절하게 말씀하는 대신, 게송 하나를 들 뿐이다.

 

게송의 전반부에 나오는 허깨비나 환사(幻士) 모두 실체가 없는 존재를 가리키고, 골짜기의 메아리 역시 샘물 소리에 응해서 소리를 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후반부에서 선사는 자신의 종지를 통달하고자 하려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하나의 관문을 펼쳤다. “진흙 소가 물 위로 가는구나.” 생각의 길도 막히고 말의 길도 막힌 이 관문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꽉 막힌 데서 활로(活路)를 모색해 보라는 데 선사의 의중이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진흙 소가 나오는 이 구절은 조선의 서산 대사의 임종게에도 똑같이 나온다. 대사는 입적에 앞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겼는데, 마치 연수 선사의 게송에 답을 하는 듯하다.

 

1천 계책 1만 사량이 千計萬思量

화로 위의 한 점 눈발이로다. 紅爐一點雪

진흙 소가 물 위로 가니 泥牛水上行

대지와 허공이 찢어지도다. 大地虛空裂

 

『종경록』의 두 가지 이익

언어와 생각의 길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게송을 남긴 다음 연수 선사는 다시 친절한 모습으로 『종경록』을 읽었을 때 생기는 이익을 두 가지로 정리해주고 있다. 772쪽의 내용을 읽어보자.

 

【물음】 이 『종경록』은 미세한 부분까지 망라하여 이(理)와 사(事)가 원만하고 뚜렷한데, 도를 흠모하는 이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겠는가?

 

【답함】 제일의(第一義)에서는 이익도 없고 공덕도 없지만 세속의 문에 나아가면 칭탄할 만한 것이 있는 듯하다. 총괄하면 두 갈래가 있어 초학자를 도울 수 있다. 첫째는 아직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바른 믿음을 성취하게 하니, 일체를 거두어 일념으로 귀결시키고 바깥으로 치달려 구하지 않게 한다. 둘째는 이미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관조하는 힘을 성취하도록 도와 이치와 수행을 견고하게 하고 빨리 보리를 증득하게 한다.

 

질문에 나오는 이(理)와 사(事)는 주로 이치와 현상으로 풀이된다. 즉 이치에 대해서도 원만하게 드러내고 현상적인 측면도 뚜렷하게 보여주는 『종경록』을 읽으면 어떤 이익이 있게 되는 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 중에 나오는 제일의(第一義)란 궁극적인 진리의 세계를 가리킨다. 궁극적 차원에서 본다면, 이익을 추구하는 ‘나’라는 것이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이익을 받거나 공덕을 세운다는 말도 성립하지 않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속의 차원에서 말한다면 『종경록』은 두 가지 측면에서 초학자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이익 중 첫째는 아직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바른 믿음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다. 불교는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는 종교가 아니다. 이치에 맞는 길을 걷다 보면 그것이 바른 길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고, 이해가 되면 믿음은 저절로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바른 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마치 복잡한 통신망들을 연결시키기 위해 기지국이 필요하듯, 세상의 온갖 사태들이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연결 지점에 바로 사람의 ‘마음’이 놓여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마음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다양한 것들과 입체적으로 얽혀 있는 연결망과 같다. 따라서 마음의 상태가 환히 열리거나 어둡게 닫히는 정도에 따라 그것과 연결된 세계 역시 그만큼 현현하거나 은폐된다. 대승불교의 거의 모든 불전에서 ‘마음’의 역할을 강조하듯, 『종경록』에서도 그 마음의 중요성을 누누이 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종경록』 혹은 이 책을 요약한 『명추회요』를 읽다 보면,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마음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된 만큼 믿어질 것은 분명하다.

 

둘째는 이미 믿음을 지닌 사람에 대해서는 관조하는 힘을 성취하여 수행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이익이다. 『종경록』은 대략 300여 가지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만법과 마음의 관계를 논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만법의 근원임을 이해한 사람의 경우, 그 생각의 범위를 자꾸 확대하는 데 이 책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마음이 부처라면, 법당에 모셔져 있는 불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아미타불을 염하는 것과 같은 염불은 왜 하는 것이며, 석가모니불이나 관세음보살 등의 불보살의 존재는 내 마음과 어떤 관계인가 하는 등등의 의문에 대해 이 책은 그것을 풀어갈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300여 가지 문제를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외의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연수 선사는 『종경록』을 읽는 이익을 두 가지로 자상하게 설해주었지만, 바로 앞에서는 언어와 생각의 길이 끊어진 선의 관문(關門)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진정으로 큰 이익은 앞서 말한 그 관문을 뚫고 나가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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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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