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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삼국유사]
벽사辟邪와 비보裨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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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  2019 년 12 월 [통권 제8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43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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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자유기고가

 

유럽에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고, 중국에 상상력의 모태가 되는 산해경 등이 있다 면 우리나라에는 단연 『삼국유사』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할 정도로 『삼국유사』에는 많은 인물과 신물神物과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예컨대 삼국통일의 명장으로 33천신이 된 김유신, 8세기 동아시아 최고의 천재 건축가 김대성, 신들도 홀린 미모의 여인 수로부인, 인연을 찾아 바다를 건너온 인도의 공주 허황옥, 신과 인간의 영역을 넘나든 비형랑과 처용, 피리 부는 시인 스님 월명, 탁월한 능력과 예지의 소유자 선덕여왕, 신비한 밀교승 진표, 신분과 국경을 초월한 선화공주와 무왕의 사랑, 꿈속에서 100년의 인생을 살아버린 조신, 호랑이 여인과 사랑을 나눈 김현 등 『삼국유사』에 수록된 이야기 전편이 모두 그 속살을 헤집어 볼수록 우리의 역사적, 문학적 상상력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대로 펼쳐 나가도록 만든다.

 

혹자는 “나는 모르는 사이에 시간을 거슬러 천 몇 백 년 전의 시대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고, 거기에서 어머니의 태 속이기나 하듯 아늑함과 포근함을 느끼곤 했다. 우리가 『삼국유사』를 읽음으로써 가 닿게 되는 그곳. 그곳은 연어들이 수만 리 바닷길을 헤엄쳐 가서 회귀하는 모천母川 같은 데가 아닐까?”(주1) 하였는데, 충분히 공감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비형랑과 처용

 

『삼국유사』는 비단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만이 아니라 신계神戒와 귀계鬼界를 넘나든다. 또한 신룡은 마치 현존하는 것처럼 자주 등장하고, 여우가 인간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여우는 삼국유사에 서너 번 등장하고 있다. 신라 진평왕 시절에는 여우로 변한 ‘길달’이란 요괴가 있고, 진성여왕 때는 용의 간을 빼먹고 힘을 축적하던 여우가 있었다. 여우는 결국 용의 부탁을 받은 명궁 ‘거타지’에 의해 퇴치 당한다. 선덕여왕 시절에는 늙은 여우가 땡중과 짜고 행패를 부리다가 밀법 승려인 밀본에 의해 제압당한다.

 

여기서 여우로 변한 길달과 관련 있는 인물이 비형랑이다. 비형랑은 전설에 따르면 귀신의 아들로서 도깨비를 부렸다고 한다. 랑郞이 호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름은 비형鼻荊이다. 비형의 출생 설화는 매우 독특하다. 신라 25대 진지왕이 도화녀桃花女라는 미인에게 반하여 대시를 하는데 그녀에게는 이미 남편이 있었다. 진지왕의 요구에 도화녀는 두 남편을 섬길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왕이 남편이 없으면 승낙하겠느냐고 물으니 그렇다면 허락하겠다고 하였다. 진지왕은 순순히 물러났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진지왕은 폐위되어 사망하였고 그로부터 3년 뒤에 도화녀도 과부가 되고 만다. 그때 귀신이 된 왕이 생시처럼 나타나 도화녀에게 옛 약속을 말했다. 결국 도화녀는 7일 동안 귀왕과 함께 지냈다. 도화녀는 임신했는데 그렇게 태어난 것이 비형랑이다. 이 말도 안 되면서 비범한 스토리를 듣고는 진평왕이 비형을 궁으로 불러 길렀다. 비형은 나이 15세에 벼슬도 얻어서 집사執事가 되었는데, 밤마다 궁성 밖으로 나가 놀았다. 이에 왕이 병사를 보내어 살펴보니, 매번 월성月城을 날아 넘어 서쪽의 황천荒川 언덕 위에서 귀신들과 놀고 있었다.

 

왕이 그를 불러 사실을 확인하고 그에게 귀신들을 부리어 신원사神元寺 북쪽 개천에 다리를 놓게 하였다. 또한 귀신 가운데 정사를 도울만한 자를 추천하라는 왕의 요구에 따라 길달吉達을 천거하였다. 길달은 각간角干 임종林宗의 아들이 되어 집사의 직무를 충직하게 수행하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여우로 변하여 도망하였으므로 비형랑이 귀신을 시켜 잡아 죽였다.

 

그러므로 귀신들이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 달아나므로,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다 비형의 집이라고 글을 붙여서 액을 물리쳤다고 한다. 이 비형설화는 뒤의 처용설화處容說話와 유를 같이하고 있다.

 

비형랑보다 세간에 익히 알려져 있는 인물이 처용이다. 『삼국유사』에서 처용은 동해 용왕의 일곱 아들 가운데 하나라 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헌강왕 5년(879년) 3월에 나라 동쪽의 주와 군을 순행巡幸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네 사람이 왕의 수레 앞에 와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다. 생김새가 해괴하고 옷차림과 두건이 괴상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산과 바다의 정령精靈이라 일컬었다.”라고 하여 삼국유사와는 차이가 있다.

 

그의 용모에 대한 묘사나 현존하는 처용탈을 근거로 처용이 페르시아 사람이거나 혹은 이를 모델로 한 인물이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신라까지 아랍의 상인이 찾아왔다는 기록도 많아서 역사학계에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가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일단 현존하는 기록 어디에도 처용이 외국에서 왔다는 기록은 없어서 추정 단계에만 그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대체적으로 알고 있는 처용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처용이 밤늦도록 서라벌(경주)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집에 들어가 보니 다른 남자가 아내와 동침하고 있었다. 처용은 화를 내기보다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물러 나왔다. 그러자 아내를 범하던 자가 그 본모습인 역신으로 나타나서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대범함에 감동하여 처용의 형상이 있는 곳이면 그 문안에 절대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처용의 얼굴을 대문 앞에 그려 붙여 역신의 방문을 피했다고 한다.

 

이들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비형랑은 누구인가? 또한 처용은 누구인가? 『삼국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두 인물이 역사적으로 누구인가를 밝혀내기 위해 여러 가설을 내놓고 있다. 비형랑이 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춘이라는 설, 혹은 김용춘의 형이라 일컬어지는 용수라는 설이 있고, 처용은 당시 울산지방에 있었던 호족豪族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혹은 당시 신라에 내왕하던 아라비아 상인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또는 경문왕가와 화랑의 친연성을 고려하여 화랑집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비형랑과 처용이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보다 구체적인 문헌이 나타나지 않는 한 특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여기서 실제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이 두 존재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비형랑 설화의 서사적 틀은 비형랑의 존재론적 근거와 그에 따른 신통력의 현시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죽은 왕의 혼령과 살아 있는 어머니의 결합은 저승과 이승의 결합이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비형은 두 공간의 경계표지이자 매개자이다. 비형이 이승에서 맡은 과업은 귀신들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특히 도깨비들을 부려 다리를 놓고, 성문을 세우는 등 건축신으로서의 직능을 보여 준 점은 구술전승에서 도깨비가 하는 대표적인 행위와 일치한다. 도깨비는 한국인의 무의식적 심상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존재이다. 비형 이야기는 도깨비의 존재론적 근거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편 처용이 등장한 헌강왕憲康王 대는 사치스런 왕경王京의 번영과 가무歌舞의 성행 등으로 상징된다. 더욱이 이러한 번영의 모습이 뒤이은 진성여왕眞聖女王 시기의 혼란과 분열의 모습과 이어져 있어 신라 멸망의 원인을 헌강왕 대 사회에서 찾기도 한다. 처용설화 역시 이러한 헌강왕 대 정치 사회적 정황의 한 표상으로 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 고익진 교수는 처용에 관련된 내용은 신라 상대 말기와 중대 초기의 초전기 불교의 건전한 호국룡護國龍 신앙이 신라 하대에서 타락하고 무속화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하였다.(주2)

 

벽사의 사전적 의미는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것. 또는 재앙을 불제祓除하는 일(주3)이라 하였다. 또한 비보는 풍수 용어의 일종으로, ‘부족한 것을 도와 보충한다’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위적인 시도 또는 노력을 뜻한다(주4)고 하였다. 즉 벽사는 액을 물리치는 것이고 비보는 결여된 것을 보충하여 복을 부르는 장치인 것이다. 그런데 때로 그 경계는 모호하여 벽사인 동시에 비보인 경우가 많다. 이것은 전통적 동양의 정서로 고대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또한 인간이 생존을 위하여 본능적으로 자신을 방비하는 두 가지 방편이 아닐까 한다. 재운을 위해 말발굽을 걸어놓는다든지, 아기가 태어난 집에 금줄을 쳐놓는다든지, 궁궐 문 옆의 해태상이나 무덤을 에둘러 서 있는 문·무인석이 모두 그에 해당한다.

 

경계를 넘어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개념들은 우리 문화유산으로뿐만 아니라 문화 콘텐츠로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비형랑에서 연유하는 도깨비는 유사한 많은 캐릭터를 양산하고, 처용은 노래와 춤뿐만 아니라 스토리가 함의 하고 있는 많은 비유와 상징으로 문학적 스펙트럼을 넓혀준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탄생하기 이전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은 어떠했을까? … 하는 의문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근원에 대한 의문이다.”(주5)라고 한 누군가의 질문은 바로 우리의 상상력이 발동하는 시작점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상상력의 문을 여는 귀중한 텍스트가 바로 『삼국유사』인 것이다.

 

 


 

 

주)
(주1) 김대식 지음, 『처용이 있는 풍경』, 대원사, 2002.
(주2) 고익진. 『한국 고대 불교 사상사』, 동국대학교출판부, 1989.
(주3) 한국고전용어사전
(주4) 문화원형 용어사전
(주5) 김대식 지음, 『처용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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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오세연
대학 졸업 이후로 줄곧 불교출판계에서 일해 왔으며, 현재 나라연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2012년 남인도 법회에서 달라이라마를 친견한 후 티베트불교를 공부하고 있으며, 닝마파의 수행법인 『보현밀의총집전행』을 공동으로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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