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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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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  2019 년 11 월 [통권 제7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33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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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 자유기고가

 

『삼국유사』는 전체 5권 2책으로 되어 있고, 1·2권에 해당하는 「기이편」은 고조선으로부터 후삼국까지의 단편적인 역사를 57항목으로 서술하였는데, 「기이편」의 서두에는 이 편을 설정하는 연유를 밝힌 서敍가 붙어 있다.

 

제3권의 「흥법편」에는 삼국의 불교 수용과 그 정착 과정에 관한 6항목, 「탑상편」에는 탑과 불상에 관한 31항목, 그리고 제4권의 「의해편」에는 원광서학조圓光西學條를 비롯한 신라의 고승들에 대한 전기를 중심으로 하는 14항목, 제5권의 「신주편」에는 신라의 밀교적 신이승神異僧들에 대한 3항목, 「감통편」에는 신앙의 영이감응靈異感應에 관한 10항목, 피은편에는 초탈고일超脫高逸한 인물의 행적 10항목, 「효선편」에는 부모에 대한 효도와 불교적인 선행에 대한 미담 5항목을 각각 수록하였다.

 

 


 

 

이처럼 5권 9편 144항목으로 구성된 『삼국유사』의 체재는 『삼국사기』나 『해동고승전』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중국의 세 가지 고승전高僧傳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과도 다른 체재이다. 『삼국유사』가 고려 후기의 전적에 인용된 예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선 초기 이후에 이루어진 여러 문헌에서는 이 책이 인용되는 예가 확인된다. 조선 초기 이후 이 책이 두루 유포되어 참고되었음을 알 수 있다.(주1)

 

『삼국유사』 전체 5권 가운데 특히 제3권과 4권은 불교사 측면에서 정사正史의 성격을 엿볼 수 있으며, 승려로서 일연 스님의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불교는 삼국을 연결하는 고리

 

삼국 당시 불교는 우리나라와 중국을 문화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가교일 뿐만 아니라 각국의 대조적인 역사로 인해 문화적 친근성보다는 이질성이 두드러진 삼국을 묶어주는 하나의 고리였다.
불교는 특히 왕실에 의해서 환영받았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각 나라에서는 무당들이 나라의 길흉화복을 점쳤고, 귀족세력과 연합하여 왕권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어 신라에는 소도가 있고, 고구려에서도 주술가가 나라의 큰일을 점쳤다. 하지만 갈수록 복잡해지는 정세 속에 국가 간 전쟁은 치열해지고 왕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지 않으면 그 나라는 존립이 위태롭게 되었다. 그리하여 왕을 중심으로 한 통치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기존의 토속신앙을 뛰어넘는 고등종교가 필요했고, 이미 중국에서는 그 자리에 불교가 퍼져 있었던 것이다.

 

삼국시대의 불교는 국가번영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호국적인 성격이 강했고, 또한 왕실과 귀족이 중심이 되어 수용하였기에 왕실・귀족불교적인 성격이 강하게 되었다. 일단 공인된 불교는 종교로서의 구실과 함께 서역과 중국의 문화를 우리나라에 전달하였기 때문에 고대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인간사회의 갈등이나 모순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깨닫고 그것을 해소하려 하였다. 하나의 불법에 귀의하는 같은 신도라는 믿음은 국왕을 받드는 신민이라는 생각과 함께 왕즉불사상王卽佛思想에 기초함으로써 중앙집권화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삼국의 나라들은 중국을 벤치마킹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순으로 불교를 들여왔다. 그런데 고구려, 백제에서 불교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국가의 공인을 받았지만 신라에서는 불교가 공인되기까지 100여년의 시간이 더 걸린다. 학계에서는 지형도 소백산맥에 가려져 있고, 왕이 주도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힘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때는 법흥왕 때로 서기 530년경인 반면 고구려와 백제는 380년경에 공인을 받았다.

 

「흥법편」은 그러한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순서는 저본으로 삼은 『삼국사기』가 본기의 순서를 신라, 고구려, 백제 순으로 한 데 비해 고구려, 백제, 신라의 불교 유입시기 순으로 하였으며 『해동고승전』의 기록도 함께 인용하고 있다. 「흥법편」의 편수는 6편으로 삼국 공히 2편씩 수록하였으나 내용상 상세함에 있어서는 단연 신라에 치우치는데, 이는 저본이 제공하는 정보의 양 자체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 「흥법편」의 공헌은 불교 유입이라는 키워드로 삼국의 불교 유입 경로와 정착 과정을 한데 모아 보다 자세하게 정리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경로와 안착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삼국유사』 중에서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 「탑상편」을 들 수 있다. “「탑상편」은 우리나라의 탑과 불상에 관한 ‘족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전편이 전국 곳곳에 산재한 탑과 불상에 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만일 『삼국유사』 「탑상편」의 기록 내지 언급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탑과 불상이 그 유래를 찾지 못해 학술적으로 고아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을지 모른다. 그만큼 현존한 많은 유적들이 『삼국유사』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단연코 일연 스님의 현장답사가 한몫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의 현장들 중 많은 부분을 직접 답사하여 확인함으로써 『삼국유사』 기록에 대한 신빙성을 높였던 것으로 보인다.”(주2)

 

이는 또한 관찬 사서로서 고려 건국 후 200년이 지난 시점에 전 시대의 역사를 정리하여 고려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로 서술된 『삼국사기』와 확연히 다른 『삼국유사』의 특질 중 하나면서 승려이기에 더욱 가능했던 강점이라고도 하겠다. 즉 일연 스님은 무신란 이후 고려 후기 사회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통해 당시 사회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기준을 불교에서 찾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고대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삼국사기』에서 제외된 고대문화, 특히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기, 사지, 금석문, 고문서, 사서, 승전, 문집 등으로 광범하게 수집함은 물론, 민간전승의 설화와 전설들도 직접 채록하여 종합 사서를 편찬한 것이다. 삼국 시기와 고려조를 통틀어 정치, 사상, 문화의 주류를 차지했던 불교의 꽃이 이 「탑상편」으로 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탑상편」에 전하는 많은 탑과 사찰의 유래와 연기緣起는 문학적 함의含意가 풍부하여 오늘날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상상력의 폭을 확장시키며 자료적 근거로서도 다양하게 연구 활용되고 있다.

 

이것을 불교가 귀의처로 삼는 삼보三寶에 대비해 본다면 불법의 유입이라는 면에서 「흥법편」은 법보에 배치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탑상편」은 불보에 배대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 「의해편」은 곧 승보에 해당한다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탑과 불상에 관한 족보”

 

과연 「의해편」은 우리에게 세속오계로 유명한 원광 법사를 비롯한 고승들의 일화와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사서史書의 측면에서 본다면 열전列傳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고승전』의 문체를 따르고 있는 듯하다. 첫 편 원광서학으로부터 마지막의 현유가・해화엄까지 총 13편이다. 등장인물로는 주연으로 원광, 보양, 양지, 혜숙과 혜공, 자장, 원효, 의상, 사복, 진표, 승전, 심지, 대현과 법해이지만 각 편 안에서 또한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승전류답게 전기적 행장과 맞물려 신이한 행적과 기행들이 펼쳐지는데, 이를 위해 신神, 동물, 용왕의 아들, 문수보살, 지장보살, 우물물 등 다양한 기제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뒤의 「신주편」이 그러하듯 어느 한 곳에서 죽었는데 다른 곳에 문득 나타난다거나, 자기 다리의 살을 베어 소반에 놓아 보이거나, 깊은 곳에서 수행하는데 새들이 봉양을 한다거나 하는 이적들의 이면에는 우리의 닫힌 시각으로 해석할 수 없는 깊은 수행의 세계에 대한 여지와 시야 밖의 세계에 대한 암묵이 필요할 것 같다.

 

더구나 『삼국유사』 「의해편」에 등장하는 승려들은 거의가 진리의 탐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인도나 중국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도 학문과 수행의 깊이를 인정받은 고승들인 것이다. 현대의 불교학이 중국, 일본의 경계를 넘어 불교의 원류인 인도와 원음이 살아있는 미얀마, 티벳 등의 불교에 눈을 돌리고 연구하게 된 것이 불과 3,40년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최초의 불교로부터 누백 년을 우리는 본집이 아니라 그 옆집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7세기경에 인도불교의 꽃을 피웠던 나란타사에 머물며 율장과 논장을 공부하고, 그동안 맥이 끊어져 근세기에 이르러서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논소들을 일찍이 섭렵했던 당시의 활발발하고 심원했던 학풍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흥법」, 「탑상」, 「의해편」에 이르게 되면, 비로소 저자著者, 또는 편자編者라 해도 좋겠지만, 이 한 권의 책을 집필하고 엮어내기 위해 행간 하나하나에 갈무리하여 심어둔 일연 스님의 깊은 통찰과 세심한 배려에 대해 다시금 살펴보게 된다.

 

주)
(주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주2)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27 「탑상편」 ‘남월산’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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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오세연
대학 졸업 이후로 줄곧 불교출판계에서 일해 왔으며, 현재 나라연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2012년 남인도 법회에서 달라이라마를 친견한 후 티베트불교를 공부하고 있으며, 닝마파의 수행법인 『보현밀의총집전행』을 공동으로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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