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참새가 불상머리에 똥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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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6 년 2 월 [통권 제3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097회 / 댓글0건본문
붓다가 샴푸회사 광고 모델?
인도문화권 남자들은 머리카락을 위로 거둬 모아 상투를 틀고 그것을 그루터기로 삼아 터번을 둘렀다. 높다란 상투와 터번은 신분적 권위와 부귀의 또 다른 표현이다.
터번이 제대로 폼이 나려면 머리카락의 숱이 많고 길어야만 한다. 인도의 상남(上男 : 다른 말로 바꾸면 大雄이다)인 붓다도 그랬다.
“머리카락이 아름답고 검다. 가늘고 부드럽다. 가지런하다. 향기롭고 깨끗하다. 빛난다. 소라처럼 돌아 오른다.”(『방광대장엄』 권3)
이 모습 그대로 샴푸광고의 모델로 출연하셨다면 그 회사는 바로 대박이 났을 것이다.
간다라의 불상. 부처님의 머리 모양이 소라와 흡사하다
소라처럼 돌아 올라가는 머리카락 모양(나발, 螺髮)은 뒷날 불상조각에 그대로 반영된다. 하지만 그런 간다라 양식(그리이스・로마 조각 영향)의 두상은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이들의 눈에는 매우 생경하게 비쳤다. 직모가 대세인 지역에 곱슬머리 헤어스타일이 등장한 까닭이다. 문화권이 바뀌면 무엇이건 새로운 잣대로 재해석되기 마련이다. 그들의 눈에는 불상의 머리 위에 새똥이 쌓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갖가지 상상력을 동원하여 해답을 찾았다. 붓다께서 보리수 나무 밑에서 얼마나 깊은 선정에 들었던지 나무 위에 살고 있는 수십 마리의 새가 똥을 싸는 것도 모를 정도로 삼매에 들었다는 상징으로 이해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이것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참새가 불상머리에 똥을 싸다
호남성 동사(東寺)의 절 마당에 있는 불상 머리에 참새들이 똥을 싸고 있었다. 마침 그 절을 찾았던 관찰사 최군(崔郡)은 마조(馬祖) 스님의 제자인 전명여회(傳明如會, 744~823) 선사에게 물었다.
“참새들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불두(佛頭)에 똥을 쌉니까?”
“참새들은 절대로 독수리나 솔개의 대가리에는 똥을 싸지 않습니다.”
미물도 자비로움 앞에선 자연스런 행동이 나오지만 무자비한 곳에서는 조심하기 마련이라는 의미였다. 이것이 고사성어 ‘불두착분(佛頭着糞)’의 전말이다.(『전등록』 권7)
불가의 ‘불두착분’ 네 글자는 유가로 넘어가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재해석되었다. ‘불두’의 청정함과 ‘새똥’의 지저분함을 대비시켜 뛰어난 책에 모자라는 서문을 붙인다는 뜻으로 바뀌었다. 본문자체의 품질이 떨어지는 두찬(杜撰)과는 또 다른 의미였다. 송나라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은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저술한 『신오대사(新五代史)』의 서문을 읽고서 ‘뛰어난 책에 함부로 머리말을 붙였다’고 비웃으며 “어찌 부처의 머리에 똥을 싸는가(佛頭上豈可着糞)?”라고 개탄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조선 땅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의 『퇴계집』에는 서문이 아예 없다. 후학들이 문집을 엮은 후 뛰어난 제자 정구(鄭逑, 1543~1620)에게 서문을 부탁하자 “어찌 불두착분 하겠느냐.”라고 사양한 이래 어느 누구도 감히 서문을 달지 못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 속에 둥지를 틀다
철딱서니 없이 똥을 싸대는 참새와는 달리 들까치는 부드러운 머리카락(고행하느라 삭발조차 잊어버림)을 아예 둥지로 삼았고 밤에는 그 속에서 잠을 잤다. 보금자리로 안성맞춤이다.
할아버지의 상투를 당기면서 노는 손자처럼 함께 살았다. 그 공덕으로 까치는 뒷날 나제국(那提國)의 왕으로 태어난다.
“내가 선정에 들었을 때 너는 까치가 되어 내 정수리에 새 집을 짓고서 오고 가곤 했다. 네가 이렇게 왕이 된 것은 나를 가까이 한 공덕이다.”(『보림전』 권4)
이 말을 들은 추니왕(芻尼王 : 선종 21조인 바수반두의 아우)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일산(햇빛 및 새똥 방지 겸용)을 선물하면서 새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내가 옛날에 들까치가 되어(我昔爲野鵲)
세존의 정수리 위에 머물렀으니(在尊頂上止)
이 칠보로 만든 일산을 바치면서(奉此七寶蓋)
전생의 인연에 보답코자 하옵니다.(以答先世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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