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불교문화재단
진리 속에 초연히 홀로 걸어가다
1912년~1936년
성철스님은 1912년 음력 2월 19일 이영주(李英柱)라는 이름으로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서 자치통감(資治通鑑)까지 배운 뒤로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학문의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
늘 “영원에서 영원으로”라는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철학, 의학, 문학 등 동서고금의 책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그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어느 날 한 노스님이 건네준 영가대사의 증도가(證道歌)를 읽고 캄캄한 밤중에 밝은 횃불을 만난 것처럼 마음이 밝아짐을 깨달았다.
그 길로 지리산 대원사로 가서 서장(書狀)을 읽고 “개에게는 불성(佛性)이 없다”는 무(無)자 화두를 들고 불철주야로 정진하였다. 정진 40일 만에 화두가 동정일여(動靜一如)에 이르게 되었다. 1936년 봄,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에 주석하고 있던 하동산(河東山) 스님에게 출가하였다.
1912년~1936년
성철스님은 1912년 음력 2월 19일 이영주(李英柱)라는 이름으로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서 자치통감(資治通鑑)까지 배운 뒤로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학문의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
늘 “영원에서 영원으로”라는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철학, 의학, 문학 등 동서고금의 책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그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어느 날 한 노스님이 건네준 영가대사의 증도가(證道歌)를 읽고 캄캄한 밤중에 밝은 횃불을 만난 것처럼 마음이 밝아짐을 깨달았다.
그 길로 지리산 대원사로 가서 서장(書狀)을 읽고 “개에게는 불성(佛性)이 없다”는 무(無)자 화두를 들고 불철주야로 정진하였다. 정진 40일 만에 화두가 동정일여(動靜一如)에 이르게 되었다. 1936년 봄,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에 주석하고 있던 하동산(河東山) 스님에게 출가하였다.
출가무렵(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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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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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친회갑(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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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주서적기(1932년)